[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문화강국을 말하는 시대지만, 지역의 미술 생태계는 조용히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충청남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술관 건립과 전시 사업은 늘어나고 있지만, 창작과 연구, 비평이 축적되는 구조는 여전히 취약하다.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생태계의 기반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충청남도 미술계의 문제는 단순히 지역 시장이 작다는 데 있지 않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창작생태계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는 점과, 동시대 예술을 해석하고 논의하는 담론이 제대로 축적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전시는 이어지지만 그것이 연구와 비평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작가의 작업 역시 개별 활동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창작은 존재하지만 생태계는 약하고, 활동은 있지만 축적은 부족하다.
한국 미술계의 시스템 붕괴는 단순히 미술시장의 고질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미술 생태계를 구성해 온 여러 축이 동시에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평론과 비평은 작품과 시대를 연결하는 공적 언어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으며, 미술시장에서는 작품의 진위와 유통 이력을 둘러싼 인증 체계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작품의 의미와 맥락보다 가격과 투자 가치가 먼저 논의되는 환경 속에서 미술의 가치는 점점 자본의 언어로 환원되고 있다. 여기에 미술계 내부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중첩되면서 전시, 지원, 기관 운영의 기준 역시 흔들리고 있다. 결국 문제는 시장 하나가 아니라, 비평·시장·제도·권력 구조가 동시에 신뢰를 잃었다는 데 있다.
지역 미술계에서는 종종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작가가 성장하기 어렵다”는 말이 반복된다. 실제로 수도권에 비해 지역 미술시장의 자본 규모와 유통 구조가 제한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질문해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는 지역 예술가들의 작업이 지닌 예술적 가치에 충분히 집중해 왔는가 하는 점이다. 시장의 확장성을 말하기 전에, 작품을 해석하고 평가하며 축적하는 비평과 연구의 구조가 존재했는지를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 미술계 전반에서 나타나는 비평 기능의 약화는 지역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작품의 의미와 맥락을 검증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이 약한 상황에서 전시와 판매는 반복되지만, 예술적 판단의 기준은 충분히 형성되지 않는다. 그 결과 미술시장은 작품의 가치가 축적되는 공간이라기보다 검증되지 않은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가장 먼저 약화되는 것은 창작의 시간이다. 예술은 장기적 탐색과 실패의 반복 속에서 형성되지만, 현재의 지원 구조는 단기 공모와 프로젝트 중심으로 작동한다. 레지던시와 공모사업은 창작의 지속성을 보장하기보다 단속적인 생산을 반복하게 만들고, 작가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발전시키기보다 지원 형식에 맞춰 작업을 조정하게 된다.
교육 현장 역시 이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대학의 미술교육은 사유와 실험의 축적보다 산업 구조에 적응할 수 있는 제작 역량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포트폴리오는 작업의 질문보다 유통 가능성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창작 과정은 점점 단기화된다.
기술 환경의 변화도 미술의 구조를 다시 흔들고 있다. 융합예술과 미디어아트로 확장되어 온 실험적 영역은 인공지능 기술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기술적 실험 자체는 점차 산업 영역으로 흡수되고 있다.
문제는 전시와 시장, 기술의 확장 속도에 비해 기록과 연구, 비평의 구조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의 제작 이력과 소장 변천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록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하며, 비평은 공적 담론으로서의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전시 인프라는 늘어났지만 예술을 축적하는 구조는 약하다.
지역 미술계를 위해서는 새로운 전시 사업보다 중요한 것이 창작 생태계의 복원이다. 창작과 연구를 중심으로 한 장기 레지던시의 확대, 예술가를 위한 전문적인 기획 구조, 지역 미술 연구와 아카이브 구축, 비평과 예술교육의 확산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창작·비평·교육이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지역 미술은 축적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지역 차원에서 미술 연구를 수행할 전문 기관과 인력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정책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
충남미술연구센터와 같은 연구 기반 기관의 설립은 이러한 전환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조직 신설이 아니라, 현재의 충남도립미술관 기능을 전시 중심에서 연구·아카이브·비평 생산 기능까지 확장하는 개념적 전환을 의미한다. 특히 향후 충남·대전 통합특별시와 같은 광역 행정 구조의 변화 속에서 지역 문화와 예술의 주체적 방향을 설정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일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지역 예술이 외부의 흐름을 따라가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의 맥락을 형성하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연구 기반의 구축이 필수적이다.
우리가 세계적이고 독자적인 미술관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크기, 규모에 있지않고, 몰입과 집중, 어느누구도 가지지 못하는 미술관과 센터의 기능이다. 세계적으로 보자면, 새로운 미술관들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다. 충분한 큐레이팅의 역량뿐만아니라 점점 변화하는 미술생태계에서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르는 지역예술의 현상들을 축적하고, 연구하는 기능은 점점 확산되어갈 것이다.
AI의 확산, 미디어와 복합적 예술창작의 기능이 미래지향적 예술로 지향하고 나아가는 현재에서는 이러한 미술관의 변화의 방향은 필수불가결하다. 이러한 센터는 전시와 향유만의 장이 아닌, 기업과, 학교과 연계하면서 점점 확장된 영역에서 예술, 기술, 개인과 사회를 융합하는 새로운 아트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충남 미술계가 전시 중심의 반복 구조 속에서 점차 쇠락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지금 필요한 것은 규모의 확장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이다. 창작이 지속되고, 기록이 남으며, 비평이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일 — 그것이 지역 미술의 다음 단계를 결정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