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흐르는 유성,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는 마법을 만나다
시(詩)가 흐르는 유성,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는 마법을 만나다
  • 최형순 기자
  • 승인 2026.05.26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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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구장애인종합복지관, 장애인 정서 회복 위한 ‘마음쉼 시낭송’ 교육 현장
-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시 구절 속 피어난 눈물과 위로
- 낭송을 타고 흐르는 위로, 심순덕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가정의 달 5월의 끝자락, 싱그러운 연록의 푸르름이 가득한 유성구장애인종합복지관(관장 이명순)의 한 강의실 문을 열자, 나지막하지만 깊은 울림을 담은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변규리 시낭송아카데미 원장(대전시낭송예술인협회 회장)

유성구와 복지관이 장애인들의 정서적 회복과 사회적 소통을 돕기 위해 마련한 ‘마음쉼 시낭송’ 교육 현장이다.

이곳에서는 문학을 기술적으로 낭독하는 법을 배우는 일반적인 강의실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서로의 삶을 보듬고 위로하는 특별한 '마음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강사로 나선 변규리 시낭송아카데미 원장(대전시낭송예술인협회 회장)의 다정한 첫인사에 강의실은 금세 화사한 웃음으로 채워졌다.

몸이 아파 지난주에 결석한 수강생의 안부를 모두가 함께 걱정하고 응원하는 모습에서, 이미 이 공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날 수업은 각자가 한 주 동안 겪었던 ‘감사의 조건’을 나누는 스피치 시간으로 문을 열었다. 늘 바쁘게 달리다 보니 나를 찾을 시간이 없었는데 시낭송을 통해 비로소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는 고백, 밤새 아픈 딸을 간호해 준 어머니에게 뒤늦게 감사의 마음과 미안함을 전하는 눈시울 붉어진 이야기까지. 수강생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는 그 자체로 가슴 뭉클한 한 편의 ‘시(詩)’였다.

강의실에 울려 퍼진 첫 시는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였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로 /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수강생들이 차례로 시를 읽어 내려갈 때마다 강의실 곳곳에서 깊은 탄식과 공감이 교차했다. 자식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면서도 배부르다, 괜찮다며 굶주림과 통증을 참아내던 우리 시대 어머니의 모습이 수강생들의 떨리는 음성을 통해 되살아났다.

마음쉼 시낭송 교육

하늘나라로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수강생도, 요양원과 병상에 계신 부모님을 떠올리는 수강생도, 저마다의 가슴 저린 사연을 시의 호흡에 담아 꾹꾹 눌러 낭송했다.

이어 진행된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 낭송은 이날 수업의 하이라이트였다. 룸비니에서 사 온 흙부처가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을 때,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인간을 향해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고,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다”라며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는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시다.

변규리 원장은 “강조하고 싶은 곳에서는 확 멈추셔야 하고, 시는 우리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대단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으며, 굳이 원상복귀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깨진 모양대로,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살아가면 된다”고 밝혔다.

변 원장의 지도에 따라 수강생들은 ‘흙으로 만든’, ‘산산조각이 났다’ 등의 표준 발음과 장단음을 체킹하며 다시 한번 숨을 고르고 낭송에 나섰다. ‘밀고 당기는’ 호흡의 완급 조절이 더해지자, 수강생들의 목소리에는 이 전보다 훨씬 단단한 리듬감과 치유의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서로의 쓰러진 마음을 시 한 구절로 다시 일으켜 세운 두 시간의 수업이 끝난 후, 수강생들의 얼굴에는 처음보다 훨씬 환하고 편안한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단순한 문학 교육을 넘어, 장애라는 마음의 벽을 허물고 내면의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 유성구의 ‘마음쉼 시낭송’ 교육. 좁은 강의실 안에서 시작된 이 작은 목소리들은, 절망 속에서도 오아시스를 찾고 얼음장 밑에서도 헤엄을 치는 물고기처럼 우리 사회에 소리 없는 희망의 향기를 넓게 퍼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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