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이성현 기자] 국내 연구진이 수천만 개 이상의 방대한 화합물을 단 한 번에 탐색하고 인공지능(AI)으로 검증해내는 첨단 신약 유효물질 발굴 플랫폼을 전격 구축하고 전국의 산·학·연 연구자들을 위한 공공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국화학연구원은 델(DEL)기술연구단이 ‘유전자 암호화 라이브러리(DEL)’ 기술을 기반으로 초기 신약 후보물질 도출 전 과정을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DEL 코어뱅크 플랫폼’을 본격 개시했다고 27일 밝혔다.
신약 개발의 첫 단추는 질병을 유발하는 특정 단백질과 결합해 반응하는 유효물질(Hit)을 찾아내는 ‘스크리닝(탐색)’ 단계다.
기존의 표준 기술이었던 고속 스크리닝(HTS) 방식은 여러 개의 미세한 실험 칸(Well)에 화합물을 일일이 분리해 넣고 하나씩 시험해야 했다. 화합물 자체를 그대로 분석해 신뢰성은 높지만 탐색 화합물이 100만 개만 되어도 대량의 단백질 시료와 함께 최소 2개월 이상의 긴 물리적 시간이 소요되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다.
반면 이번에 화학연이 완성한 개선 기술(DEL)은 화합물에 고유의 DNA 서열을 바코드처럼 부착하는 방식을 취한다.
수천만 개의 화합물이 하나의 용액에 한데 섞여 있더라도 질병 단백질과 결합시킨 후 살아남은 DNA 조각들을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장비와 컴퓨터 연산으로 해독해내면 어떤 화합물이 결합에 성공했는지 한 번에 구분해낼 수 있다.
이 방식을 쓰면 화합물 종류가 수천만 개 이상으로 늘어나도 단 1개월 이내에 탐색이 완료되며 필요한 단백질 시료 역시 극소량에 불과해 HTS 대비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절감한다.
하지만 DEL 기술은 효율성이 압도적인 반면 화합물이 혼합된 상태로 실험하기 때문에 불순물에 우연히 결합하거나 특정 DNA만 과다 복제되는 등 일종의 ‘가짜 양성(오류)’이 발생할 수 있는 약점이 있었다.
이에 연구진은 이 문제를 인공지능(AI) 기계학습으로 돌파했다.
대량의 실제 실험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켜 특정 화합물의 위치와 구조 패턴에 따른 실제 결합력 플롯을 정밀 예측하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가장 신약 가능성이 높은 상위 50개의 유효물질을 정확하게 골라내 최종 보고서로 제공한다.
특히 이번 플랫폼은 단순 데이터 제공에 그치지 않고 연구자가 원할 경우 DNA 바코드를 제거한 순수 화합물 형태로 유효물질을 직접 재합성(off-DNA)해 타겟 단백질과의 실제 활성을 최종 검증해주는 ‘원스톱(One-stop) 서비스 체계’를 완전히 구축했다.
이번 플랫폼 구축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미래의료혁신 대응기술개발사업’ 일환으로 총 151억2000만 원의 사업비가 투입됐으며 화학연이 주관하고 성균관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카멜바이오사이언스가 위탁기관으로 참여했다.
정부는 국내 산·학·연의 연구 접근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제가 종료되는 2027년 12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서비스 이용 비용의 50%를 감면해주는 혜택을 제공한다. 현재 대웅제약, ㈜아이랩, 국립암센터, 이화여대,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이 우선 지원 대상자로 선정돼 초기 서비스 가동에 들어갔다. 국내 연구자들은 ‘한국화합물은행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허정녕 DEL기술연구단장은 “그간 높은 비용과 정보 유출 우려로 해외 서비스를 망설였던 국내 연구자들에게 단비가 될 것”이라며 “초기 유효물질 탐색부터 후속 물질 확보까지 국내에서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생태계를 다지겠다”고 설명했다.
신석민 원장도 “국내 순수 기술로 구축된 공공 플랫폼을 통해 암, 면역질환, 감염병 등 난치성 질환의 표적치료제 개발 속도를 끌어올려 국가 바이오 R&BD 혁신의 마중물이 되겠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