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이성현 기자] 마치 사람의 뇌처럼 필요한 정보는 오래 기억하고 불필요한 정보는 알아서 지우며 스스로 기억의 균형을 잡는 뇌 모방 반도체가 개발됐다.
한국연구재단은 성균관대 조새벽·양우석 교수와 연세대 조정호 교수 공동 연구팀이 빛의 파장(색깔)에 따라 기억의 강화와 약화를 각각 독립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광시냅스 플랫폼을 개발했다고 10일 밝혔다.
빛을 이용하는 ‘광시냅스’는 초저전력, 고속 동작이 가능해 차세대 AI 가속기의 핵심 소자로 꼽힌다.
그러나 기존의 광시냅스는 학습을 강화하는 ‘외우기’와 망각을 유도하는 ‘잊기’를 동일한 스위치(전류나 동일 광신호)로 조절해야 했다. 이 때문에 학습이 반복될수록 기억이 한쪽으로 치우쳐 네트워크가 불안정해지거나 과부하가 걸려 정보가 유실되는 한계가 있었다.
인간의 뇌가 항상성 조절을 통해 기억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연구팀은 기존 태양전지 연구 과정에서 ‘빛을 꺼도 전류가 한참 동안 남아있는 현상’에 주목했다.
일반적인 반도체나 태양전지에서는 전류 흐름을 방해해 반드시 제거해야 할 치명적인 ‘결함’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전원이 꺼져도 정보를 붙잡아 기억하는 ‘인공 시냅스’의 특성과 완벽히 부합했기 때문이다.
이에 연구팀은 차세대 광반도체 소재인 ‘은비스무트황화물(AgBiS₂)’을 활용해 원자들이 미세하게 어긋나도록 양이온 무질서도를 정밀하게 조절했다. 이를 통해 전기 신호를 붙잡아 두는 일종의 전하 창고(트랩)를 극대화한 뒤 그 위에 근적외선만 선택적으로 흡수하는 분자층을 나노미터 수준으로 얇게 쌓아 올린 이종접합 구조를 구현했다.
이렇게 완성된 광시냅스 소자는 어떤 색의 빛을 비추느냐에 따라 전자의 이동 속도와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다. 비추는 빛의 색깔이 곧 외우기와 잊기를 독립적으로 제어하는 별개의 스위치가 된 것이다.
실험 결과 소자에 근적외선을 비추면 전하 창고에 전자가 차곡차곡 쌓이며 시냅스 연결 강도가 기존보다 13배 이상 강해지는 ‘학습 가속’이 일어났다. 반면 청색광을 비추면 갇혀 있던 전자들이 순식간에 풀려나며 기억이 빠르게 약해지는 ‘망각 가속’ 현상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 과정에서 빛의 색에 따라 전하가 트랩을 채우고 비우는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1000조분의 1초 단위로 전하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펨토초 과도흡수 분광 분석’ 기법을 도입했다.
초고속 영역에서 움직이는 전자의 경로를 분리 관측함으로써, 소자의 전기적 거동과 물리적 현상을 완벽하게 규명해 낸 것이다. 추출된 측정값을 신경망 시뮬레이션에 적용한 결과 소자가 스스로 학습의 균형을 맞추는 ‘기억의 항상성’이 성공적으로 검증됐다.
이번 연구는 반도체 공정에서 반드시 배제해야 할 무질서한 결함 상태를 오히려 AI 하드웨어가 스스로 기억의 균형을 잡는 유용한 기능으로 되살려냈다는 점에서 학계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기술이 실용화되면 대규모 전력 공급 없이 빛만으로 고속 학습과 망각을 처리할 수 있어 상용 AI 가속기의 전력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 외부 카메라 없이도 빛을 직접 보고 기억하는 인공 시각, 인공 망막 등 차세대 스마트 바이오 센서 분야에도 광범위하게 응용될 전망이다.
조새벽 성균관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인공지능 하드웨어가 직면한 고질적인 학습 불안정 문제를 생물학적 뇌의 항상성 원리를 빌려 해결한 성과”라며 “향후 소자들을 촘촘히 집적한 대규모 배열을 제작하고 반복 동작에 따른 내구성과 균일성을 확보해 CMOS 공정과의 통합 및 더 다채로운 색을 인식하는 고도화된 신경모방 비전 하드웨어를 완성하겠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