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아직, 시인이 있다
이 세상에 아직, 시인이 있다
  • 글 이수연 사진 송주홍
  • 승인 2014.04.0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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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가 만난 사람_ 손미 시인

계속 껍질을 벗겨 내는 양파, 그녀에게 시가 그랬다. ‘시마(詩魔)’를 만난 것 같다고, 시 귀신이 붙은 것 같다고, 그래서 시를 쓰지 않을 수가 없다고, 시인은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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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는 기차에서 이방의 골목을 팔고, 다른 살을 팔고, 아름다운 피 모양을 판다. 나는 창 밑에 숨어 있다가 플랫폼에 서 있는 존 레논을 쐈다. 내가 그랬다. 세상은 속았다. 세상을 속이는 법을 에밀리에게 샀다. -「상자가 되고 싶은 나무를 회전하는 기차」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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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그녀에게 시인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2009년부터였다. 2009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에 당선된 때부터 사람들이 그녀를 시인이라고‘도’ 불렀다. 그래도 세상은 그녀가 시인으로만 살게 하지는 않았다. ‘직장인 코스프레’를 하며, 낮에는 세상 사람인척하며 살다 밤이면, 쉬는 날이면, 시인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써온 시 47편이 2013년 제32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ㅡ‘시인’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좀 긴장했어요. 세상 모든 것에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잖아요. 많은 예술가가 그렇겠지만, 시인 앞에서는 더 조심스럽게 말해야 할 것 같아요.

글쎄요(웃음). 시인이 모두 어려운 사람은 아니에요. 물론 예민한…. 그런 건 조금 있어요. 시인들은 하나의 사건을 다른 사람보다 몇 겹으로 느끼는 것 같아요. 온몸에 눈이 있어서 모든 것을 관찰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온몸으로 기운을 느끼고 그것을 시로 표현하죠.

세상의 모든 감정을 느끼는 사람, 또 그걸 다시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 그래서인지 시가 소설보다 어려워요. 더 많은 감정을 함축하잖아요. 시집 <양파공동체>도 어려웠어요. ‘이건 어떤 의미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포털사이트에 <양파공동체>나 손미를 검색하면, 어떤 분이 제 시집을 읽고 ‘최악’이라고 평한 게시물이 떠요. 그분이 그렇게 평했던 이유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속상했죠. 모든 사람이 내 시를 읽고 좋아할 수는 없는데, 그걸 아는데도 처음엔 속상했어요. 이제 좀 나아졌지만, 아직도 속상하죠. 사람들이 시를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시를 보고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시를 보고 시인이 느낀 감정을 공감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윤동주 시인의「또 다른 고향」이라는 시를 보면서 ‘좋다. 내게도 또 다른 고향이 있지.’라며 ‘나의 또 다른 고향’을 상상하는 것과 ‘또 다른 고향? 그게 어디지?’라고 해석하려 하는 것은 다르거든요. 해석하려고 하는 순간 어려워지죠.

ㅡ시를 접할 때, 그렇게 교육받은 것 같아요. 한용운 시인의「님의 침묵」에서 ‘님’은 사랑하는 님이기도 하고, 국가이기도 하다고 배우잖아요. 시 자체로 나와 대입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시에도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맞추려고 하니까요. 「상자를 되고 싶은 나무를 회전하는 기차」라는 시를 보면서도 습관적으로 ‘‘에밀리’가 누구지?’ 했어요.

에밀리는 그냥, 에밀리에요. 낯선 이방인이었으면 했고, 어딘가에 있지만, 없을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모두 세상을 속이고 살잖아요. 뉴스에서도 매일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요. 돈이 많으면 세상을 속이는 방법을 살 수 있을까? 그렇다면 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파는 사람이 있으면 어떨까 했고, 그게 에밀리인 거죠.

ㅡ시인과 소설가는 모두 세상을 속이는 법을 산 사람 같아요. 모두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소설가보다는 시인이 좀 더 교묘한 거짓말쟁이 같아요. 소설가는 자신의 감정을 사람들의 언어로 이야기하지만, 시인은 더 내밀한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반대로 그래서 모든 시에는 진심이 담기는 것 아닐까요. 정말로 마음을 이야기하니까요. 모든 시에는 ‘진짜’가 담겨야 해요. 제 시집에 「컵의 회화」라는 시가 있어요. 컵이 있었던 자리에 남은 둥근 물 자국을 보면서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아프지 않은데 그렇게 쓰면 시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가 짧아서 쓰기 쉬울 것으로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긴 감정의 선을 함축해서 써야 해서 정말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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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위 젖은 발자국은 / 문고리가 된다 // 다른 몸으로 나갈 수 있겠다 -「컵의 회화」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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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시인이라고 인정하기 전부터 그녀는 시인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막연히 이야기가 좋아서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시보다는 소설 쓰고 싶다는 욕망이 더 강했다. 시 창작 수업을 듣다가 시에 빠졌다. 하나씩 시를 쓰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이 그녀가 왜 시를 쓰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쓸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맺힌 것이 하나씩 시로 나올 때면, 모든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ㅡ블로그에서 ‘보통사람인척하며 시인으로 살기’라고 쓰신 글귀를 봤어요.

시를 쓰지 않는 직장인인척하면서 시인으로 사는 거예요. 얼마 전까지 사보 만드는 회사에 다녔어요. 회사 다니면서 일간지에서 부탁받은 칼럼을 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직장에서 그걸 보고는 “앞으로 글을 발표할 때 회사의 허락을 받아라.”라는 말을 들었어요. 저는 시인 손미로 낸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듣지 않았어요. 시인 손미는 그곳에 없었죠. 얼마 전까지 다니다가 사직서를 냈어요.

ㅡ점점 ‘시’라는 매체가 설 수 없는 시대가 오는 것 같아요. 시만 써서는 생활을 꾸려나가기 어렵잖아요. 또 사람들은 상상하고 생각해야 하는 매체와는 점점 멀어져요. 지금 우리가, 이 시대에서 시가, 시인이 필요할까요?

시인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시인보다는 기술자를 원하는 시대죠. 그나마 글 쓰며 생활을 유지하는 직업은 시나 문학이 아니라 다른 유의 ‘글’이죠. 그건 시가 아니니까…. 그런데 과연 시가 필요 없을까요? 대전문학관에서 시 창작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수업 듣는 분 중 시를 전문적으로 쓰겠다고 오신 게 아니라 정년퇴직하시고, ‘예전에 내가….’라는 마음으로 시 수업을 들으러 오시는 분이 많았어요. 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지면 사람들이 시를 찾아요. 저는 누구나 가슴 속에 시를 품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사람들이 향유하고, 즐기는 모든 것의 출발이 시에요. 문학이 사라진다면, 과연 이 세상이 가치 있을까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을 잘 모르고 사는 것 같아요. 그러다 조금씩 여유가 생기면, 삶이 조금 덜 고단해지면, 시를 찾는 거예요. 마음 깊은 곳에서 시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고, 믿어요. 저는.

ㅡ등단 후에 서울로 가지 않으셨잖아요. 대전에는 활동하는 시인도 많이 없고, 시를 읽는 사람은 더 없잖아요. 왜 서울로 떠나지 않으셨어요?

등단하고, 원고 청탁이 없을 때는 대전에 있어서 그렇다고, 애먼 고향 탓을 많이 했어요. 연예인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잊히지 않는 것과 시인이 문예지에 많이 등장하는 것과 똑같아요. 나는 내 시가 자신 있는데, 대전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몇 년간 그랬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내가 왜 시를 썼지?’ 근본적인 물음을 시작한 거죠. 인기 얻으려고 시를 쓴 것은 아니었어요. 잘 나가고 싶어서 쓴 것도 아니었죠. 그냥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고, 한 사람이라도 내 시를 읽고 좋다고 이야기해주면 행복할 것 같아서였어요. 서른이 넘어서 그걸 깨달았어요. 불안함을 떨치고, 나를 단단하게 하자. 그리고 시를 쓰자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는 불안해하지 않고, 나를 채우는 일을 많이 했어요.

ㅡ시인으로만 살기란 참 힘든 일이잖아요. 얼마 전까지도 생업을 위해 직장에 다니셨고, 시만 쓰는 것이 아니라 부수적으로 다른 일도 하시고요.

처음엔 ‘내가 왜 시를 써야 하는지.’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부모님께서는 ‘공무원 하면서 남는 시간에 하면 되지 않느냐’고 수없이 말씀하셨죠. 언젠가 제가 산문을 쓴 적이 있는데, 어머니께서 그걸 보시고는 “네가 이런 생각하는 줄 몰랐다.”며 기특해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엄마. 내가 그런 생각하는 것을 함축해서 ‘시’로 표현하는 거야.”라고 말씀드렸어요. 시큰둥하세요. 시를 쓰는 것도 어렵지만, 시를 쓰면서 이해받는 것도 시만 쓰면서 살고 싶은 것도 참…. 어렵죠.

ㅡ그래도 상 받으면서 첫 시집도 나오고, 이후부터는 조금 나아지셨을 것 같아요.

예전보다는 덜 하죠. 그래도 아직 극복하는 중이에요. 목표 중 하나가 내 시로 부모님을 감동하게 하는 거예요. 시대가 자꾸 변하니까 너무 시만 고집하지 말고, 시가 다른 예술과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시를 바탕으로 연극이나 음악을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런 것 때문에 지금 대학원에서 문화콘텐츠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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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씩 뜨거운 비가 내리는 건 네가 내게 흘리는 보드라운 침. 침. 고기 한 마리를 사이에 두고 굶어 죽기로 했지. 로스. 나는 가장 높은 곳에서 우산을 접고 기다리고 있어. 모든 문을 잠가도 한 번씩 형광등이 흔들리는 건, 저쪽에서 네가 / 꽝. 꽝. 공복의 식탁을 치기 때문이지 -「물개위성」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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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사람도 시를 읽는 사람도 없는 시대다. 더 많은 사람이 시를 읽었으면, 다른 매체를 통해서라도 시를 접했으면 하는 생각에 시인은 시가 아닌 다른 공부를 한다. 시만 고집할 수 없는 시대, 시인이 다른 공부를 해야 하는 시대다. 시집 <양파 공동체>에서 시인이 뽑은 시는「물개위성2」다. QR코드로 되어 있는 시는 바코드를 인식하면, 문을 두드리고, 전화벨 울리는 소리가 이어진다. ‘꽝. 꽝. 공복의 식탁을 치기 때문이지’로 끝나는 「물개위성」에 이어 「물개위성2」에서 울리는 소리가 ‘사람’을 찾는 시인의 목소리 같다. 시인은 계속 누군가의 응답을 기다리며, 문을 두드리고, 전화를 건다. 나와 꼭 맞고,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혹시 이 세계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에 신호를 보낸다. 아직 이 세계에는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ㅡ시대가 변하면서 시도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 같아요. SNS를 통해 유명해진 하상욱 시인을 보면서 끝까지 고결하고, 견고한 틀 안에서만 움직일 것 같았던 시가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미술의 대량생산을 보는 느낌…. 하상욱 시인 어떻게 생각하세요?

보면서 저도 깜짝 놀라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곳곳에서 그의 시가 보이잖아요. 그건 사람의 감성을 건드린다는 말이거든요. 수많은 시가 외면받잖아요. 시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던 사람이 그의 시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요. 시에도 다양한 얼굴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하상욱 시인을 통해서 다른 시도 보고, 접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어요. ‘그건 시도 아니야.’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해요. 시인이나 시에 경계는 없어요. 먼지가 시가 될 수도 있고…. 그렇게 누구나 시를 쓰고, 읽고, 시인이었으면 좋겠어요.

ㅡ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으세요?

쓸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좀 더 깊이 있고, 오래 남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어요. 백 년이 지나도 남아 있는, 어느 시대에 읽어도 가슴을 울리는, 모든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어요. 시간이 진짜를 걸러낼 수 있지 않을까요.

ㅡ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이규보 시인은 시 한 편을 쓸 때 300번을 넘게 고친다고 해요. 피와 땀으로 쓴 시, 피를 짜서 쓴 한 구절이 나오는 거죠. 그런데 꼭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만 시를 읽고, 쓰는 것이 아니었으면 해요. 시를 쓰면 ‘나’를 돌아볼 수 있거든요. 현실에서 고뇌하고, 고민하는 것들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죠. 척박하고, 메마른 세상이잖아요. 그런 마음에 감성의 물길을 내어줘요. 사람들이 시를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시가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많은 분이 아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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