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문화스토리] 연극배우 성용수 인터뷰
[토마토문화스토리] 연극배우 성용수 인터뷰
  • 이수연 기자
  • 승인 2015.09.02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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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숨 고르기,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배우의 삶

바닥에 위치를 알리는 형광 불빛에 의존해 몸을 움직이고, 다음을 기다리는 시간. 연극 무대가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까만 어둠 뒤에 빛이 있기 때문이다.

환하게 불이 켜지고, 배우는 몸과 마음으로 자기 안에 수없이 들여놓은 인물이 되어 이야기를 건넨다. 무대 위에서 이야기를 꺼내놓기까지 연극무대처럼 배우의 삶에도 빛과 어둠이 공존했다.

▲ 연극배우 성용수
자기 안에 수없이 버무린 사람을 어떻게 꺼내놓느냐를 계속 배우는 사람. 20여 년, 연극배우 성용수가 어두운 무대 위에서 숨을 고른 시간이다.

무대에서 숨 고르기

자전거 타는 취미 하나를 더해 한여름 뙤약볕에서 도시를 달렸다. 안 그래도 까만 살을 더 까맣게 태웠다. 곱슬기가 있는 머리에 까맣게 탄 얼굴, 새까만 선글라스까지 더하니 강한 인상이 도드라진다.

“제가 별로 할 말이 없는데...”라며 멋쩍은 듯 표정을 달리하는 그에게, 자전거를 타고 어디를 달리느냐고 물었다. 집에서 대청호까지, 강변따라 달리는 동그랗게 그려진 자전거 코스를 보여주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Q. 처음 연극을 시작한 것부터 따지면 무대에 선 지 20년 가까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스무 살 여름이었던 같아요. 운전면허 시험에 떨어져서 땡볕을 걷는데, 삼천동에 있던 사무실 문에 워크숍 단원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어요. 그걸 보고 가니까 이력서 가지고 왔느냐고 묻더라고요. 멀뚱히 서서 안 가지고 왔다고 하니까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저를 한참 쳐다보더니 밥 먹었느냐고 묻더라고요.

칼국숫집에 가서 밥을 먹다가 다음날 나오라는 말에 나갔어요. 그때 군대 6개월 남은 때였는데 공연 준비하다가 결국 작품을 못 올렸어요. 끝내 무대에 못 서고 입대했고, 제대하고 다시 무대에 섰죠.

Q. 제대 후에는 좀 더 비장한 마음으로 시작했을 것 같아요. 남자들은 군대에서 고민이 더 깊어진다고 하잖아요.

그때 고민이 가장 많았죠. 제대하자마자 아버지 일 도와드리고, 선배들 공연하는 거 찾아서 보고 그랬어요.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여행 다니면서 결정을 했던 것 같아요. 그때 서울역에 있던 노숙자들이 느닷없이 일어나서 싸우는 거예요. 낯선 풍경이었어요.

거기에서는 그렇게 사람들이 누더기를 입고 싸우고, 버스를 타고 여의도에 가니까 대기업 빌딩 앞에서 양복 군단이 줄지어서 빌딩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이것도, 저것도, 참 재미있는 삶처럼 느껴졌어요. 내가 노숙을 할 수도 없고, 대기업에서 저 자리까지 올라가는 것도 어려울 것 같고, 다양한 삶을 사는 데 가장 좋은 게 배우가 아닐까.

처음 들어갔던 극단에서는 계속 스텝만 했어요. 그러다 처음 무대에 선 게 정복근 작가의 <숨은 물>이라는 작품이에요. 그때만큼 열심히 했던 적이 있나 싶어요. 아직도 그때 에너지가 기억에 남아요. 선배들보다 잘하고 싶어서, 못한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Q. 충북 영동에 자계예술촌 처음 구성원이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2001년 겨울에 들어갔던 것 같아요. 극단이 보통 소음 문제 때문에 지하실을 쓰는데 우리 보증금 빼서 다 같이 살 공간을 찾아보자고 해서 영동에 있는 폐교 하나를 구했죠. 살 만한 곳으로 고치는 데까지 2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그 2년 동안 구성원 모두가 빚이 쌓였죠. 지금도 함께 하는 정우순 선배, 조중석 선배가 그때 함께였어요. 자계예술촌에 들어가기 전부터 둘을 정말 좋아했어요.

함께라서 무대가 좋다

자계예술촌에는 5년 정도 있었다. 5년 후 자계예술촌을 나오면서 연극을 그만해야겠다고 결심했다. 2년 정도 다른 일을 했다. 그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서른다섯 즘이었던 것 같다.

마음이 힘들 때였다. 결혼하기 전에 모두 정리하고, 다시 무대에 서고 싶었다. 자계예술촌을 나오면서도 인연을 놓지 않았던 조중석, 정우순 배우에게 다시 연락했다.

Q. 나무시어터 처음부터 같이 하셨던 거네요.

선배들이랑 같이 극단 활동하다가 2010년에 나무시어터라는 이름으로 극단 만들면서 지금까지 죽 함께 한 거죠. 돌고 돌았는데, 결국 다시 만난 거예요. 끌림이라고 해야 할까요. 인연이 참 무서운 거예요.

두 선배는 제가 굉장히 존경하는 사람들이에요. 서로 싸우고, 얼굴 붉히는 때도 잦죠. 그래도 절대 믿음이 있어요. 평생 같이해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믿음이 있어요.

서로 단단하게 의지하는 거죠. 두 분뿐만 아니라 지금은 우리 나무시어터 단원 모두가 제게는 그래요.

Q.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시어터에서 함께 활동하는 사람이 계속 느는 것 같아요.

상근 단원 세 명이었다가 지금은 조합원이 열일곱 명까지 늘어난 상태니까요. 공연할 수 사람이 열다섯 명 정도고요. 공연만을 위해 만나는 게 아니고요.

나무시어터는 처음 생긴 것부터 대표가 뭔가를 이끄는 시스템이 아니라 단원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설득하고, 타협하면서 가요. 지금은 쉬는 식구들도 있죠. 연극만으로 먹고 사는 게 정말 어려워요. 어느 연극인이라도 오롯이 연극이나 공연으로만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모두 생활 때문에 힘들고,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무대에 설 수 없지만 그러면서 단단해지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인간의 아픔이나 고통, 불편함을 무대에 서는 사람 모두가 생활에서 겪기 마련이거든요.

“저래 보여도 백 년 된 극단이야.”

성용수 배우 역시 무대에 서는 것 말고, 많은 일을 한다. 점점 자라는 두 아이를 보며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미안하기도 하고, 힘들어도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아내를 보며 고맙기도 하다. 가끔 먹먹해질 때가 있지만, 해가 지면 나무시어터 사무실에 모여 9월 16일 무대에 오를 연극 연습을 한다. 아직은 연극배우로 살고 싶다.

Q. 9월에 하는 연극은 어떤 작품인가요.

정우순 연출이 연출을 맡고 9월 16일부터 20일까지 드림아트홀에서 하는 <개천의 용간지>라는 작품이고요. 청소년 시각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 그때 가질 만한 고민을 보여주는 연극이에요. 2014년에 대전문화재단 차세대 아티스타에 선정되면서 준비한 작품인데, 열심히 하고 있어요.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어리지만 어리지 않은, 그런 연극이에요.

Q. 20여 년 넘도록 연극 무대에 서는 이유, 어디에서 원동력을 얻는지, 궁금해요.

어릴 때는 작품 생각하면 늘 아쉬워요. 지금도 역시 아쉬운데 어릴 때보다는 표현하지 않을 수 있고, 무뎌질 수 있는 거죠. 아쉬움은 늘 똑같은 것 같아요.

 지금은 꼭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고, 어떻게든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나 희망 사항도 크지 않아요. 적당히 자신에게 단호해질 필요가 있어요.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인정하면 돼요. 결국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후회도 덜한 거고요.

 힘든 시간을 참다 보니까 시간이 이만큼 흘러온 것 같아요. 무엇보다 같은 곳을 보는 사람들과 함께라는 게 가장 큰 힘이고요. 그게 오래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런 꿈을 꿔요.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저 팀이 저래 보여도 백 년 된 극단이야.”라고 말하는 거예요. 뭐든 한 가지 일을 계속하다 보면 냄새가 난다고 하잖아요. 아직 배울 게 많지만, 그렇게 냄새나고 깊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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