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생가와 골목길을 따라간 여행
예술가들의 생가와 골목길을 따라간 여행
  • 이루리 기자
  • 승인 2006.09.08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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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 런던·비엔나·파리 <예술가의 거리> 펴낸 전원경 작가

 <예술가의 거리>. 제목만 듣고 살짝 부담스러웠다. 책을 어렵사리 손에 넣긴 했는데 워낙 문외한일 뿐더러 ‘예술’이란 단어가 주는 생경함 때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던 중 인터넷을 뒤적이다 어떤 블로그에서 ‘하룻밤 동안 단숨에 읽어 버린 책’이란 추천 글을 읽고 용기를 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덕분에 기자 또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풍부한 사진과 아기자기한 정보, 생동감 있고 탄탄한 필체 덕에 읽는 내내 배낭 멘 20대 초반으로 돌아간 듯 착각이 일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학창시절, 미술 음악 시간에 학습한(?) 예술가들이 이제야 좀 정리가 되는 것 같았고, 그들의 인생을 엿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예술 서적 치곤 드물게 베스트셀러로 꼽힌다더니 소문이 사실인 듯 했다.
<예술가의 거리>는 <객석>, <주간동아> 문화팀에서 10년간 기자 생활을 한 전원경 작가의 네 번째 책이다. 10년이라는 세월을 예술의 현장에서 살았지만 지금도 아름다운 공연이나 예술가를 만나면 여전히 두근거린다는 그녀를 만나, 그 거리의 뒷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런던·비엔나·파리를 친근하게 알고 있는 듯 하다. 이 세 도시의 ‘예술가의 거리’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런던은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살아봤기 때문에 훤히 알고 있었고, 비엔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해 신혼여행으로 다시 찾았을 정도다. 비엔나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수백 년을 이어온 대제국의 수도였고, 그만큼 문화유산 또한 넘치는 곳이다. 파리는 두말할 필요도 없는 예술가들의 도시다. 그동안 이들 세 곳을 드나들 기회가 적지 않았었고, 그만큼 잘 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유럽의 문화 수도라고 할만한 이 도시들을 다니면서 런던의 대영박물관이나 파리의 루브르, 비엔나의 미술사 박물관 등에만 주목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웠다. 런던에 살면서 이들 도시들이 작고 초라하지만 아름다운 보물들을 숱하게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예술가들의 집과 거리였다. 유럽이 좋은 점 중 하나는 과거의 유물을 징그럽도록 잘 보관한다는 사실이다. 예술가들의 집은 가재도구며 피아노는 모두 제 자리에 있는데 집주인만 잠시 집을 비운 모습이다. 그런 예술가의 집과 그들이 걸었던 거리, 작품을 썼던 카페 등을 소개하고 싶었다. 셰익스피어, 존 키츠, 베토벤, 모네, 루이스 캐럴 등을 선택한 기준은 무엇인가. 여정은 20일 정도였지만 준비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듯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예술가들을 고르는데 있어 개인적인 취향을 많이 반영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중 생가가 남아 있는 사람, 잘 아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삼았다. 나는 예술이란 ‘향수나 와인’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없어서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약간은 사치스럽고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는 존재 말이다. 예술에 대해 관심도 많고 업으로도 삼았지만, 예술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책에 실린 ‘셜록 홈즈 박물관’ 소개도 개인적인 취향의 단편을 드러낸 것이다. 예술영화TV를 보거나 예술 서적을 읽을 때, 나 역시 지루함을 떨칠 수 없다. 예술이란, 소파에서 뒹굴면서 만끽할 수 있는 정도로 대중들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때문에 나는 쇼팽과 슈베르트같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좋아한다. 이러한 기준에 맞춰 처음 서른 곳 정도를 방문하려고 계획했다가 하나씩 욕심을 버리고 구체화 시켰다. 준비하는 동안에는 철저하게 외국 서적, 사이트를 참고했다. 국내에 나온 비슷한 책들과 차별을 두기 위해서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셰익스피어의 글로브 극장이다.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떠오른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곳은 대작가의 숨결이 남아 있는 장소는 아니다. 셰익스피어 당시의 극장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고 현재의 글로브는 과거의 극장을 복원해서 1996년에 문을 연 것이다.

그럼에도 런던 기행 1번지를 글로브 극장으로 삼은 것은 영국적인 것 이면에는 거의 언제나 셰익스피어의 흔적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완고하면서도 만만치 않은 영국인의 성격은 셰익스피어 희곡에 나오는 등장인물 그대로다. 가장 세계적인 작가인 동시에 가장 영국적인 작가 셰익스피어의 발자취를 뒤쫓는 일로 여행을 시작하고 싶었다.

글로브 극장은 철저하게 셰익스피어 연극을 재현하고 연구하는 장소로 운영되고 있다. 매년 공연되는 연극 대부분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이어서 정식 명칭은 ‘셰익스피어의 글로브 극장’이다.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의 존 매든 감독은 크랭크인에 앞서 글로브 극장 안팎을 세밀하게 조사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글로브 극장은 세트지만 실제 글로브 극장과 무대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청년 셰익스피어가 글로브 극장의 배우라는 설정은 잘못된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젊은 시절에는 로즈 극장의 배우였고, 중년이 되어서야 글로브 극장에 설 수 있었다.

책장을 뒤로 넘길수록 여행을 하는 작가의 심정을 많이 엿볼 수 있었다.  덕분에 함께 배낭을 메고 있는 듯해 눈길을 뗄 수 없었다. 

여행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심리상태와 분리해서 표현하기는 힘들다. 처음 1차 원고는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많은 탓에 예술가들의 인생에 치중했고, 개인적인 이야기는 거의 쓰지 않았다. 출판사에서 좀 딱딱하다는 지적을 했고, 솔직하게 풀어 보자고 제안했다. 용기를 내어 여행 내내 느꼈던 내 심리상태를 담담하게 꺼내 보았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던 것이 뒤로 갈수록 더 진솔해졌다.  

책 서문 앞에 ‘그래, 삶은 언제나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이라고 적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 책을 쓰기 전에는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가 버렸어’라고 한숨짓곤 했다. 한달에 스무 번씩 공연장을 찾던 공연 전문지 기자 시절에 비해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많았고 두 아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런던·비엔나·파리를 돌면서 젊지 않다고 삶이 남루해 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가 들면 나이가 드는 대로 가치와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키츠처럼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언제든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함을 느꼈다. 

게다가 고즈넉한 키츠의 집과 햇살처럼 따스한 분위기가 감돌던 슈베르트의 생가, 오페라 무대와 똑같았던 카르티에 라탱 <라 보엠>의 골목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이 평생 살았던 옥스퍼드 거리에 섰을 때, 나는 팽팽한 스무 살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여행은 내게 헤이데이(Heyday)를 선물했다고 할 수 있다.

전원경 작가는 누구 …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월간 <객석>과 <주간동아> 문화팀에서 10년간 일했다. 기자 생활 중 영국으로 떠나 런던시티대학교에서 예술비평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문화비평서인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와 요절한 예술가 11인의 평전 <짧은 영광, 그래서 더 슬픈 영혼>을 선보였다. <객석> 기자 시절 만난 첼리스트 요요마와의 인연으로 그의 성장기를 담은 <내 아들 요요마>를 번역하기도 했다.
앞으로 지중해와 북유럽, 남미 등지의 ‘예술가들의 거리’를 찾아보고 싶고, 아이들을 위한 예술 책도 써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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