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귀근
낙엽귀근
  • 편집국
  • 승인 2006.11.1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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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낙엽귀근(落葉歸根)의 계절이 찾아왔다. 언제나 그렇듯 찌는 듯했던 가마솥 더위를 달고 지냈던 시간들을 소리없이 시간의 뒷켠에 묻어두고 말이다.

무성했던 잎들이 어느 순간, 처음 생명이 시작했던 그 태어남의 장소로 되돌아가는 계절의 初入에  소중한 인연을 맺고 살았던 지인의  부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죽음을 맞이할 당시에는 슬픔과 안타까움에 한없이 절망스럽기만 하지만, 살아남은 자에겐 그 죽음 또한 삶의 한 과정이기에 오래 그  안타까움 속에  머물지 못하는 것임을 안다.

모든 풀과 나무는 흙에서 자란다.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은 무엇에 의해서 계획되어지거나 누구에 의하여 조작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날 문득 우리의 현재를 인식하듯 그렇게 갑작스럽게 죽음을 알게 되는 일이다. 어떤 이는 순간(瞬間)과 찰나(刹那)에 죽음을 깨닫게 될 것이고, 다른 이는 어느 정도 자신의 죽음을 예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는 차이가 있을 뿐인 것이다.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린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대왕은 서른셋의 나이에 죽었다. 태풍처럼 휘몰아쳤던 정복자의 죽음치고는 어처구니없게도 적장의 칼이 아니라 모기에 물려 숨을 거둔 것이다. 그는 말라리아균에 감염돼 죽었다.

죽으면서 그는 “내가 죽거든 묻을 때 손을 밖으로 내놓아 사람들이 나의 빈 손을 볼 수 있게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제국을 건설했던 정복자의 손이나 보통 사람들의 손이나 다를 바 없으며, 죽을 때는 모두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그는 일깨워 주고 싶었을 것이다.
퇴계 이황 선생은 세상을 떠나는 순간 제자들에게 매화화분을 가리키며 “매화 화분에 물을 주어라”라고 당부하였다고 한다. 학문을 한다고 해서‘물을 준다’는 일상의 행위를 소홀(疎忽)히 하면 안 됨을 가르치고자 한 말일 것이다.

죽음이란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우리와  함께할 것임을 모두들 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을 것 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와 일직선상에 있는 물음이 된다.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우리는 죽은 사람들과도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말을 기억하고 그들의 웃음과 사랑을 기억하며 생활하는 한 죽은 사람들은 죽은 것이 아니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의 계절이다.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끝이 죽음이라면 한번쯤 이슬람신비주의자들인 [수피즘]의 ‘죽어라, 그대가 죽기 전엷라는 경구를 깊이 생각해 보자. 육체의 숨이 끊어지기 전에 기왕의 틀에 안주하지 말고, 죽기 전에 스스로 죽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다가자. 죽기 전에 죽는 날, 그날이 바로 다시 태어나는 날이 될 것이기에.

 

 

 유재룡 국민연금관리공단 대전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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