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소감〕최교진 세종시교육감 ...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 추진"
〔당선소감〕최교진 세종시교육감 ...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 추진"
  • 최형순 기자
  • 승인 2018.06.14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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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새로운 중심, 세종답게 아이 키우는 일이 행복하도록 하겠다”

“저의 당선은 우리 아이들이 미래로 가는 더 큰 길을 내라는 시민 여러분의 명령입니다. 시민 여러분의 뜻에 따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세종특별자치시교육감 당선인 최교진 / 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세종특별자치시교육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최교진 당선인은 14일 “저의 당선은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승리이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일군 세종 교육가족의 승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중심, 세종답게 아이 키우는 일이 행복하도록 하겠다”고 피력했다.

최 당선인은 “우리 아이들을 미래가 원하는 인재로 키우고, 세종에서 대한민국 교육의 새 길을 열며, 세종교육을 세계가 본받고 싶은 교육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일은 교육가족, 시민 여러분과 힘을 모아야 할 수 있다면서 따뜻하게 손잡아 주시고 응원해 주시기 바라며 자랑스러운 세종 시민, 교육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 최교진 교육감 당선인 살아온 길 >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당선인(현 교육감)은 충남 보령 미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까지 대천에서 자랐다. 서울로 유학해 중·고등학교를 진학했지만 가세가 기울면서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사립대 갈 경제적 형편이 되지 않아 공주사범대에 진학, 자신처럼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줄 수 있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마음 먹었다.

최교육감은 대학 시절 유신체제 부당함을 알리는 단식 농성을 벌였으며 '문학의 밤' 행사에서 시를 낭송하다 붙잡혀 공주사대 설립 이래 최초로 제적된 학생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최교육감은 1978년 서해안의 안면도에 있었던 누동학원에서 처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학교였다. 정식교사가 아닌 대학생 신분의 야학 교사였던 것이다.

1981년 10년이 지난 늦은 졸업을 하고 첫 발령이 난 곳이 충남 보령시 대천여자중학교였다.

1983년 이오덕선생님과 함께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창립하여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확산시키는데 노력했다.

최교육감의 교직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참교육운동에 앞장섰던 그는 1984년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첫번째 해직을 당했다. 해직 후 민주화 운동에 나서 1987년 6월 시민항쟁이 있던 당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돼 서대문교도소에 수감된다.

1988년 복직되어 강경여중에 부임하였으나 1989년 전교조 결성에 참여하여 다시 해직된다.

1992년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을 맡아 참교육 실현을 위해 헌신한다. 해직 이후 10년만인 1998년 9월말 충남 부여에 있는 세도중학교로 복직하였으나 2003년 전교조와 관련해 다시 해직됐다. 전교조 충남지부장을 지내기도 하며 독재정권과 싸우고 학생의 인권을 지켜주는 검투사가 되어 3번의 옥고를 치른다.

최교육감은 교육운동을 넘어서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 지역 운동 등 재야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6년에 토지공사 감사로 임명되어 세종시 건설 계획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2010년 노무현재단 대전·세종·충남지역위원회 공동대표 등을 맡아 일해 왔다.

최교육감은 2012년 세종시 초대 교육감 선거에 도전하였으나 근소한 차이로 낙선하였다가, 2014년 6월 교육감 선거에 다시 도전하여 당선되어 4년의 임기를 수행했다. 재임기간 동안 최교육감은 ‘새로운 학교, 행복한 아이들’이라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시 4년 더 세종교육을 이끌게 된 최교육감은 ‘학생 배움 중심의 맞춤형 교육과정을 실현하여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시인이기도 한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그에 대해 “1980년대 중반부터 교육운동을 같이 해온 최 교육감과 나의 삶에는 공통분모가 많다”면서 특히 “최 교육감은 나보다 먼저 민주화운동을 시작했고 나보다 더 많이 유치장을 들락거렸으며 나는 한 번 해직됐지만 그는 세 번 해직됐다”고 말하고 있다.

이어 “나는 들판의 풀처럼 여리지만 그는 굴참나무처럼 우뚝했다”며 “내가 물처럼 흐르면 그는 불처럼 뜨거웠고 내가 흙 같을 때 그는 쇠처럼 단단했으며 그는 폭이 넓고 품이 큰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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