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보다 코로나가 더 무서워...100년 역사 전통시장들도 흔들
IMF보다 코로나가 더 무서워...100년 역사 전통시장들도 흔들
  • 최형순 기자
  • 승인 2020.06.29 0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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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이승우 이호영, 천안아산 전통시장 코로나로 유례없는 침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온양온천시장에서 가장 오래된 상가들이 밀집된 온양상설시장 거리. 이 거리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54개 점포 가운데 손님이 있는 가게는 소머리국밥집과 중화요리집 두 곳이 전부였다.

텅 빈 온양온천 상설시장 골목

손님들을 대신해 이 골목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말린 고추 자루 옆에 주저앉은 상인 두 명뿐이었다.
 
천안중앙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 시장 내에서 가장 큰 골목인 수선정길은 동문입구부터 시작되는 폭 7m, 길이 97m의 넓은 골목에 마스크를 쓴 노부부 한 쌍이 손님의 전부였다.

천안중앙시장은 총 길이 428m, 높이 15m, 폭 15m 규모 대형 아케이드로 중앙시장길 사이사이마다 개나리길, 국민은행길, 하모니마트길 등 총 7개의 골목들이 양 갈래로 뻗어있다. 다른 골목들도 사정은 수선정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올해 1월 20일 국내에서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천안아산지역의 100년 전통시장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하루 평균 7,000여명이 찾던 천안중앙시장은 코로나가 가장 성행했던 지난 3월에는 약 700명까지 줄어들었다.

옆 도시인 아산시 온양온천전통시장 상인들도 평소 하루 열 명이 넘던 손님이 지금은 한두 명으로 줄어들어 “IMF 때보다 더 큰” 타격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장사가 아예 안돼서 이번 2, 3월은 그냥 통째로 쉬었어.”
천안중앙시장에서 50년 동안 신발장사를 해온 육일자(78) 할머니는 손님이 신어보고 떠난 신발을 닦으면서 “내가 여기서 50년째 신발장사 하고 있는데 지금처럼 장사 안되는 건 처음이야”라고 말했다.

육일자 할머니가 운영하는 천안중앙시장 신발가게

육씨는 오래간만에 찾아온 손님마저 빈손으로 가게를 떠나자 아무 말 없이 손님이 신어보고 간 신발을 새것처럼 닦아 놓았다. 육씨는 가끔 들리는 손님은 있지만 정작 구매하는 사람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집 온지 3년 만에 남편을 잃고 신발장사로 두 아들을 대학교수와 공무원으로 키워낸 육씨는 신발가게를 전부 태웠던 화재도 이겨냈지만 코로나는 불보다 무서웠다.

천안중앙시장 동문 입구 바로 옆에 있는 을지앵글. 텅 빈 가게에는 김윤응(68) 사장만이 마스크를 쓴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루에 손님 1~2명 받을까 말까...1명도 못 받고 집에 가는 날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하루를 보냈던 김씨의 인상 좋은 얼굴은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다. 다단계에 빠진 아들의 빚까지 갚아줄 수 있었던 김씨는 이제 가게를 접을 생각까지도 하고 있다. 김씨는 텅 빈 가게 앉아서 “코로나가 IMF보다 더하다”고 말했다.

이 시장에서 15년째 이불집을 운영하는 이한복(74)씨도 “원래 하루에 못해도 10명은 왔는데 지금은 1~2명 올까 말까야”라며 “가겟세만 안 내도 살만하겠는데...”라고 말했다.

천안중앙시장보다 3년 앞선 지난 1915년에 개장한 온양온천전통시장 상인들도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온양온천시장에서 20년째 타올집을 운영하는 곽인숙(74,여)씨는 “사장님”하고 부르는 소리를 두 번 듣고 나서야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20년째 장사하는 동안 가게에서 누워있어 본 적이 없는데 허리도 아프고 손님도 없어서 잠깐 허리 좀 핀다고 한 게 잠이 들었나 봐.”

곽씨는 “한두 명 들렀다 가기만 하고 아예 안 올 때도 많아”라며 “오늘은 많이 팔았지. 그래서 2만원 벌었어”라고 말했다. “우리 집이 타올집인데 200개짜리 커피믹스 통만 한 달에 두 개가 나가. 가게가 친구들과 수다나 떠는 사랑방이 됐어”라며 곽씨는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지역화폐 대규모 발행 불구, 전통시장에서 외면당해

코로나로 침체된 지역상권을 살리기 위해 천안시와 아산시는 지역화폐인 천안사랑카드와 아산사랑상품권을 발행했으나 전통시장 상인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천안시는 지난 4월 7일 충남 최초 IC카드형 지역화폐인 천안사랑카드를 일반발행 1만8천200장, 정책발행 2만170장 등 3만8천370장 발행했다.

아산시는 기존 8억 규모로 발행하던 아산사랑상품권을 지난 2월 27일 100억 규모로 확대, 지난 4월 2일 전액 조기판매에 성공했다.

그러나 지역화폐가 성공했다는 언론보도와 달리 전통시장에서는 지역화폐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산시청에서 아산사랑상품권 발행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지역경제과 김진민 주무관은 “아산사랑 상품권 발행규모가 100억원을 넘어섰고 가입 점포 역시 3000여곳에 달한다”고 말했다. 

김 주무관은 “지금까지는 전통시장 점포들이 시청의 권유로 가입했지만 이제는 상인분들이 먼저 신청하려고 한다”고 말했으나 전통시장 상인들의 반응은 달랐다.

 “그냥 다 하는 거니까 붙여놓은 거지.” 온양온천시장에서 타올집을 운영하는 곽인숙(74)씨는 가게 문에 아산사랑상품권 가맹 스티커를 붙여놨지만 “아직 지역화폐로 구매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시장에서 30년 넘게 인테리어 일을 해온 박한철(69)씨도 “국가에서 돈 준다고 하면 먹을 곳에 쓰지 우리 같은 업종은 상품권 발행하나 마나다”고 지적했다.

성은경(여) 천안중앙시장 상인회 사무장은 천안사랑카드가 시행된 지 얼마 안 됐을 뿐더러 천안 시민들은 물론 시장 상인들조차도 대부분 모른다고 말했다. “언론 플레이로 인해 부풀려진 것뿐이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앞으로도 유효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5월 11일부터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도 전통시장 상인들에게는 남의 얘기였다.

“늘긴 뭘 늘어 하나도 소용이 없어” 온양온천시장 타올집 곽씨는 말했다. 천안중앙시장 을지앵글 김씨도 “사람들이 생필품 쪽에만 쓰고 우리 가게에는 들어오는 게 거의 없다. 손님이 평소에 비해 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역 전문가들은 지역화폐의 문제점으로 범용성과 접근성의 부족, 전통시장의 신뢰 상실 등을 지적했다.

순천향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김민수 교수는 “지역화폐의 첫 번째 문제점은 범용성 부족”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천안 아산의 경우 사람들의 생활권도 겹치고 두 도시가 사실상 통합된 거라고 봐도 되는데 두 도시의 지역화폐를 보면 천안사랑카드는 천안에서밖에 못 쓰고 아산사랑상품권은 아산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이게 지역화폐의 현실이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지역화폐가 전통시장에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지역화폐가 어려운 절차 없이 충전이나 이체가 가능해야 한다. 사람들이 지급수단을 다양하게 갖고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요즘에는 핸드폰 뒤에다가 카드 하나만 들고 다니는 것을 선호하고 지폐도 들고 다니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지불방법을 복잡하게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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