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 폰팅사건, 서울 가다
경로당 폰팅사건, 서울 가다
  • 월간토마토 김의경
  • 승인 2011.04.1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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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사람이 쓰고 만든 연극…서울과 지방 구분 없었다

대전 사람이 쓰고 만든 연극이 서울 대학로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지금껏 지방은 서울에서 성공한 공연을 소비하는 곳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감행했다. 그것도 3개월에 걸친 장기 공연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대전은 물론 서울 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두고 보도했다. 극단 드림이 제작하는 <경로당 폰팅사건>(작 이충무, 연출 주진홍). 사람들은 작품 자체보다는 성공 여부에 주목했고, 그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사례가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이 연극 제작자이자 연출자인 극단 드림 주진홍 대표는 “지방 연극인으로서 느낀 패배의식 때문”이라고 서울 진출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어차피 지역이나 서울이나 똑같이 고생하며 연극을 하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서울과 지방이라는 거리감 때문에 적지 않은 자괴감이 들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연극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게 대학로 진출인 만큼 욕심도 났다고 주 대표는 말했다.

물론 작품성이나 흥행성에 자신이 없다면 선뜻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대전에서 진행한 여러 차례 장기공연을 통해 충분히 검증했다.

하지만, 막상 서울행을 결심했을 때 제작비 못지않게 공연할 극장과 기획 파트너를 찾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그러던 중 사람들이 모였다. 한 번 해보자고 말이다. 그렇게 첫 달 공연이 흘러갔다. 짧은 시간에도 객석 점유율과 관객 평가가 나쁘지 않다고 한다. 벌써부터 연장공연 얘기가 흘러나온다. 분위기가 좋다. 그걸 보려고 날 잡아서 서울로 갔다.

◆ “얼마나 재미있기에 여기까지 왔어?”

대학로에만 소극장이 100개 정도 있다는데, 얼핏 보기에도 정말 많았다. 그만큼 많은 작품이 무대에 오르고, 또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는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에 비례해서 임대료도 함께 올랐다고 한다. 그러니 비싼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연극인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혜화동 로터리 쪽에 속속 둥지를 틀었단다. <경로당폰팅사건> 무대가 있는 소극장 ‘모시는 사람들’ 역시 혜화동 로터리 안쪽 골목에 있었다.

어렵잖게 극장을 찾아 지하로 내려가니 무대 뒤편에서 배우들이 두 시간 뒤에 있을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배우로서 큰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죠. 이름을 알리는 기회니까요.” 김소희, 버럭 할머니 역

“대전에서는 문화에 관심이 많은 적극적인 소수가 연극을 보러 온다면, 서울에서는 연극이 조금 더 대중적인 것 같아요.” 정혜림, 형광등 할머니 역 배우 김소희, 정혜림 씨에게 이번 공연은 특별하다. 두 배우를 제외한 나머지 배역과 기획홍보인력 대부분이 서울에서 투입됐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대전을 대표하게 되었고, 오리지널 배우로서 자존심도 걸렸다. 그만큼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서울 쪽 홍보와 마케팅을 담당한 이예지 기획팀장은 ‘지방 극단’은 <경로당 폰팅사건>에 꼬리표가 아닌 플러스 요인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재미있으면 지방에서 여기까지 올라왔을까?”하는 이야깃거리가 서울 관객들의 흥미를 끌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번 대학로 공연에서 능글 할머니 역을 맡아 능청스럽게 소화한 배우 김현 씨는 역을 맡기 전부터 <경로당 폰팅사건>을 알았다고 했다. 순회공연을 위해 대전에 내려갔던 동료 배우가 우연히 보고 “대학로에서 공연해도 좋겠다. 재밌다.”라고 그녀에게 얘기한 적이 있단다. 여러모로 인연인 셈이다.

다른 배우나 스태프 모두 <경로당 폰팅사건>에 거는 기대가 더 커졌다고 한다. 예상보다 관객 반응이 빠르고 뜨겁기 때문이다. 초기 관객들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연극이 주를 이루는 현실에서 ‘폰팅’이라는 단어 때문에 선정적이고 가벼운 웃음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연극을 관람하고는 생각지도 않은 깊은 재미와 감동을 얻었다며 공식 카페에 가입해 후기를 남겼다. 이런 빠른 반응이 그리 흔한 게 아니란다.

◆ “입소문 타고 분위기가 무르익다”
저녁 8시.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관객석은 대부분 찼고 앞자리만 몇 개 남은 상태였다. 중년 부부 한 쌍을 제외하고는 20대로 보이는 젊은 관객이 대부분이다.

대전에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연극인데, 서울에서는 웃음소리가 더 컸다. 대전 관객들은 혹시나 연기를 방해할까 싶어 웃음을 참는 모습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것 상관없이 재밌으면 크게 웃어댔다. 심지어 장면이 전환되는 암전에서도 터진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이날 공연이 무사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끝났다.

관객들 평가가 궁금했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을 붙잡고 어땠는지 물었다.
관객 박다미 씨는 “공연 내내 웃었다.”라며 “<경로당 폰팅사건>에는 이전에 봤던 공연에서 느낄 수 없었던 깊이가 있는 것 같았다.”라고 평했다.

관객 김은영 씨 역시 “감동과 웃음의 연결이 어색하지 않았다.”라며 “이 때문에 배우의 연기력과 연출력이 수준급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또 김 씨는 “신기한 건 다른 사람들 반응이었다.”라며 “나도 많이 웃었는데,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난 웃는 것도 아니었다.”라고 덧붙였다.

제작진은 대전에서도 그랬듯이 서울공연 흥행 역시 ‘입소문’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서울 역시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수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일반대중을 얼마나 극장 안으로 끌어모으느냐가 중요한 관건인데, 지금 분위기라면 연극을 본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입소문을 내줄 것으로 보인다.

사실 3~4월은 새 학기가 시작하고, 꽃샘추위로 날씨가 덜 풀려 대학로 연극계에서 통상적인 비수기라고 한다. 그런데도 이런 분위기라면 출발이 아주 좋은 편이다.

배우 정혜림 씨는 “지금은 <경로당 폰팅사건>이 보고 싶은 연극을 보고 난 후 네다섯 번째에서 선택하는 연극일 수도 있다.”라며 “하지만, 앞으로는 로맨틱 뮤지컬을 제치고 제일 먼저 선택하는 공연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 작품성에 기획력 더해 전국으로!
어차피 유명한 극단이 제작하거나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이 아니고서는 결국 작품성 싸움이다. 얼마나 재미있고 감동을 주는가가 관건이다. 사실상 대학로에서 서울과 지방 구분은 의미가 없다. 지방 연극이라고 기죽을 필요도 없고, 서울 연극이라고 어깨에 힘줄 필요도 없다.

지금 이대로라면 <경로당 폰팅사건>은 연장공연까지 이어질 분위기다. 주진홍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전국 곳곳에서 이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자 한다.

“대전 연극계에 필요한 부분은 무대 바깥 부분인 것 같아요. 대학로의 조직적이고 치밀한 마케팅과 체계적인 기획·홍보 시스템 말이에요. 여기에 서울과 연계한 배우 양성 시스템까지 만든다면 대전 연극계가 더 풍성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지방 연극이 인정받는 기회의 마중물이 됐으면 좋겠다는 누군가의 바람을 들은 적이 있다. 극단 드림이 이번 서울진출에서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성과가 대전 연극계에 신선한 활력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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