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명상음악가 平山 신기용
치유 명상음악가 平山 신기용
  • 점필정(사진 김의경)
  • 승인 2011.06.0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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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前 대전시 복지여성국 신숙용 국장 남동생

4월 11일 오후였다. 신기용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고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자기 강연을 들어보란다.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며 말이다. 그래서 갔다.

그의 강연은 대전시청 세미나실에서 진행됐다. 대전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강의였다. 강의가 예정된 오후 4시가 지났는데도 자리가 많이 비었다. 공무원들이 쭈뼛쭈뼛하며 들어온다. 눈치를 보아하니 자리 채우라고 동원된 모양이다. 몇몇 공무원은 귀찮은 표정이 역력했다.

갑자기, 그리고 뜬금없이 신기용 씨가 랩톱 컴퓨터 조작을 맡아달란다. ‘잉?’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기 강연 보조를 부탁하다니…. 분명히 범상치 않은 사람이다. 그는 “기자님을 딱 보니까 나하고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아서 부탁한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신기용 씨가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시청사에서 공연하고 싶었는데, 개인 자격으로 공연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이렇게 강연을 핑계 삼아 여러분을 만나러 왔다.”라면서 ‘소리’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경 구절에서 말씀은 곧 ‘소리’였으며, 소리는 파동으로 전해져 사물은 물론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 신기용 씨의 얘기였다.

와인 한 잔을 따라두고 아름답고 좋은 말을 풀어놓고 나서 마실 때와 욕설을 풀어놓고 마실 때 와인은 전혀 다른 맛을 내는데, 그것은 소리가 가진 파동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신기용 씨는 설명한다. 그래서 좋은 소리를 들어야 하며, 그 좋은 소리는 자연과 가까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 자연과 가까운 소리 가운데 영적인 영감까지 불러일으키는 음악을 들려주었다. 더불어 자신이 가져온 악기를 직접 연주하기도 했다. 한 20여 분 지났을까? 참석자들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온전히 신기용 씨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조는 사람이 있었지만…. 신기용 씨가 기타로 ‘거지를 위한 시나위’라는 자신이 만든 곡을 연주할 때 참석자들의 집중도는 최고조에 달했다.

이 곡은 신기용 씨가 예전에 어느 잡지에서 읽은 내용을 곡으로 쓴 것이다. 한겨울 다리 밑에서 어린 아들에게 옷을 벗어 덮어주고 얼어 죽은 어미, 그리고 외국으로 입양 갔다가 그 다리 밑에 찾아와 눈물 흘리는 아들. 마치 한 음, 한 음이 만든 울림에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듯했다.

강연이 끝나고 담당 공무원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양반(과장급이었던 것 같다.)이 처음의 뻣뻣한 자세는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신기용 씨에게 강의가 유익했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한다. 또 신기용 씨 주변으로 몇몇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음악만 잘 들어도 건강할 수 있다는 신기용 씨 얘기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기행, 그리고 깨달음

다음날 대전 중구청 맞은편에 있는 음악작업실 ‘드림뮤직센터’에서 신기용 씨를 만났다. 신기용 씨는 여기를 운영하는 정진채 씨가 자신이 아끼는 후배이자, 뛰어난 음악인이라고 소개했다. 무엇보다 악기가 다양해 사진 촬영하기가 수월할 거라며 신기용 씨가 선택한 인터뷰 장소였다.

얼굴을 마주하고 앉자마자 신기용 씨는 음악을 들려주겠다며기타를 집었다. 전날 강의에서도 그랬고, 인터뷰 역시 신기용 씨는 공연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연주자가 있고, 한 명이든 두 명이든 그걸 듣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곧 공연이니 말이다.

질문하려 하는데, 연주가 이어진다. 생각해보면, 그에게 음악은 언어이자 감정이며, 표현수단일 터. 그걸 이해하고 해석해내지 못하는 글쟁이의 무지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연주가 끝나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평산 신기용’이란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부터 최근 어떻게 지내는지까지 이것저것 두서없이 묻기 시작했다.

“우리 형님이 기타리스트였어요. 그래서 일찌감치 음악과 친해졌죠. 그런데 집안 형편 때문에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죠. 그래서 책상에 피아노 건반을 그려놓고 연습하거나, 스케치북에 기타 지판을 그려서 코드 연습을 했어요. FM라디오 안테나를 뜯어서 실로폰 채로 쓰기도 했고요. 당시에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지만, 계속 음악을 갈구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신기용 씨는 연주자로서 살았다고 했다. 하다못해 양동이를 뒤집어 놓고 그걸 북처럼 두들기며 친구들 앞에서 공연했단다. 틈만 나면 악기 연주법을 익혔고, 20대를 전후해 짧은 기간 밴드생활도 했다. 여러 악기에 손을 댔지만, 밴드에서는 드럼 주자로 활약했다.

그런데 1993년 대전엑스포가 열릴 당시였다. 신기용 씨 자신도 모르게 아프리카 리듬이 저절로 나왔다고 한다. 그전부터 언젠가는 음악의 원형이 있는 아프리카에 꼭 가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그런 바람이 연주로 나타난 모양이었다.

신기용 씨는 어느 순간 연주를 끊었다. 오로지 듣기만 했다. 전 세계 유명 뮤지션 음반을 섭렵했다. 클래식이든 팝이든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무려 10년 동안 말이다. 그리고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을 찾아다니며 음악적 호기심과 궁금증을 풀었다. 그러더니 아프리카로 훌쩍 떠나 그곳 원주민들의 리듬과 연주를 배웠다. 또 인도와 호주, 몽골 등지를 오가며 현지 원주민 음악과 전통음악을 익혔다.

“영혼을 어루만지는 신묘한 음악을 찾고자 했어요. 사람은 누구나 신성해지고 거룩해지고 싶은 자아를 품고 있는데, 그걸 끄집어내는 것이 음악이에요. 그런데 어떤 음악이냐가 중요해요. 그걸 찾고자 그렇게 헤매고 다녔어요.”

앞서 얘기한 ‘거지를 위한 시나위’란 곡에는 아주 인상깊은 한 음이 있다. 아주 강하게 기타 줄을 뜯듯이 당겨 소리를 내는데, 기타 소리면서도 언뜻 전통 현악기 소리 같기도 한 게 묘한 음색이다.

“이 음 하나를 만들어내려고 8년을 몰입했어요. 분명히 같은 음인데,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느낌은 천차만별이죠.”

평산 신기용 씨를 아는 몇몇 사람들은 그가 어느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그 경지가 음악적일 수도 있고, 어떤 도(道)와 관련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깨달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연주하면서 사람들을 안내할 뿐이다.

인터뷰 중간 중간 그는 자리를 옮겨가며 기타와 드럼, 피아노 등 눈에 보이는 악기를 모두 연주했다. 드럼으로는 사물놀이를 연주하고, 피아노로 ‘영산회상’을 10년에 걸쳐 편곡한 ‘평산회상’이란 곡도 연주했다. 그의 연주는 물 흐르듯이 흘러갔다. 인터뷰라는 부담감만 없었어도 그의 음악에 흠뻑 취했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어쨌든 신기용 씨는 음악과 관련한 정규교육이라고는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부산에서 열렸던 APEC기념공연 음악감독도 맡아 진행했고,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문학제나 행사에 초대받아 연주하고 강연한다.

“제가 음악을 하는 것은 구도와 수행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영적인 체험의 수단으로서 음악을 생각하죠. 그래서 사람들이 저에게 ‘치유 명상음악가’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것 같아요.”

요즘 그는 책 한 권을 집필 중이다. 음악과 소리에 관한 지금까지의 경험과 공부를 풀어낼 예정이라고 했다. 또 음반도 생각하고 있다.

“자연 닮은 음악을 가까이 하세요”

‘치유 명상음악가’에게 요즘 아이돌 그룹 노래와 음악은 어떻게 들릴까 궁금했다.
“비트와 율동이 있지만, 가사와 선율에 아름다움이 없죠. 표절과 코드복사가 아주 심하고요. 진정성이 없는 음악은 금방 잊히죠. 이게 다 PD들 책임이에요. 관음주의에 빠져 있어요.”

그는 또 MP3 같은 디지털 음원 역시 좋지 않다고 얘기했다. 톱니형 파형이 뇌파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자연을 닮은 아날로그 사운드를 가까이해야 한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사실, 서양 클래식보다 우리 국악에서 오는 울림이 우리 몸과 마음에 더 좋은 영향을 주어요. 태교 때도 클래식보다는 우리 국악이 더 좋아요. 요즘 점점 국악이 대중들 관심에서 멀어지는 게 안타까워요.”

신기용 씨는 요즘 귀농을 준비하고 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텃밭을 일구며, 자신이 기른 채소로 손님에게 밥 한 끼를 대접하고, 더불어 자신이 소장한 음반 8천 장 가운데 고른 것을 함께 감상하며, 자기 연주를 들려줄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새로운 공연이라고 했다. 또 그가 말하는 ‘자연에 가깝게’를 실천하려는 것으로도 보인다.

“기자님도 초대할게요. 따뜻한 밥 한 끼 함께 들고 제 연주를 들려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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