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드라마 주인공을 만나다
대하드라마 주인공을 만나다
  • 월간토마토 김의경
  • 승인 2011.07.0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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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수용소 생활…덤덤해져버린 역사

노인을 일컬어 ‘살아있는 도서관’이라고 한다. 그만큼 한 사람이 살면서 기억하는 시대상과 개인사는 드라마 못지않게 풍부하고 흥미진진하다.

중구문화원을 통해 박혜경 할머니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은연중에 인생의 무용담 비슷한 걸 기대했던 것도 어쩜 같은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삼자에겐 희극이고 무용담일지 몰라도 당사자는 분명히 매 고비 비극이고 절체절명의 위기였을 터다. 할머니가 이미 오래전이라며 두 귀를 의심케 하는 과거를 덤덤하게 말할지언정, 바로 얼마 전 일인 양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처럼.

1914년생인 박혜경 할머니는 올해 98세다. 귀가 조금 어둡고, 무릎관절 통증으로 일 년 정도 병원 신세를 진 것 말고는 아주 정정하다. 하지만, 박 할머니에게 이 정도 정정함은 성이 차지 않는다. 시력이 나빠질까 봐 컴퓨터를 배우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서예수업을 들으려고 주에 한 번 월평동 자택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문화원을 찾을 만큼 여전히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 많기 때문이다.

본래 고향이 충남 당진인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신여성이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일 때엔 중국 만주로 건너가 교사생활을 했다. 그리고 만주에서 심양(당시 지명 봉천)으로 거주지를 옮겼다가 둘째아이 출산예정일에 비행기를 타고 대련에 도착했다. 상황이 위급하기도 했거니와 한국교민회 부회장이었던 부군을 둔 덕분이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아이는 출산일을 넘겨도 세상 밖으로 나올 줄 몰랐고, 어쩔 수 없이 프랑스인이 경영하던 호텔에서 며칠을 머물다 산파 동반 아래 LST(Landing ship tank; 미국 상륙 작전용 함정)를 타고 귀국했다.

그러나 감염예방 등의 이유로 귀가하지 못하고 수용소에서 3일을 더 머물러야 했다. 그렇게 세상밖에 나오지 않고 애를 태우던 아이는 귀가한 이튿날 바로 생애 첫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결혼보다는 사회사업에 더 관심 많았던 꽃띠 처녀는 그렇게 해방을 맞이하면서 늦깎이 결혼을 했고 두 번의 전쟁을 겪는 동안 아들, 딸을 낳기도, 두 아들을 잃기도 했다. 또한, 큰딸이 초등학교 4학년, 작은딸이 2학년일 때엔 급작스럽게 부군과 사별하고 딸 둘을 혼자 키워냈다.

가지에 바람 잘 날 없는 게 인생이라는데, 그녀는 평생 온몸으로 폭우와 눈보라를 맞은 셈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비바람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져 가지만 초라하게 남은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안경 너머 두 눈빛은 맑았고, 등은 고고하도록 꼿꼿했다. 민망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짓는 수줍은 미소에선 소녀다움마저 풍겼다.

같은 반 회원들도 박혜경 할머니의 흐트러짐 없는 자태와 철저한 자기관리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장성한 딸들은 일본과 미국에 각각 떨어져 살고 있고, 혼자 지내신 다기에 “외롭지 않으냐.”라는 새롭지 않은 질문에 “하루 24시간도 모자라는데 외로울 시간은 더더욱 없다.”라고 손사래 친다.

“내가 원래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걸 못합니다.”
1992년 79세에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학생을 돌보며 바삐 살았던 일상을 모두 내려놓고 대전에 내려와 한밭도서관, YMCA 등을 찾아다니며 한국화, 서예를 시작한 것도 하릴없이 TV, 신문을 보며 시간 때우는 자신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

서예를 시작한 지 올해로 17년째, 여전히 품 안 아기 다루듯 화선지를 곱게 펴서 꼿꼿하게 붓을 쥐고 한 자씩 써내려갈 정도로 조심스럽다.

병원에서 일부러 쉬엄쉬엄 걷길 권장해도 그게 잘 안 된다며 머쓱해하는 할머니가 20년 가까이 서예 때문에 40분이 넘는 거리를 찾아오는 이유가 궁금했다.

“호호. 내가 생김새는 남자 같아도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서예를 하면 마음이 편안해져 좋습니다.”

그나마 그전에는 날마다 두 시간씩 서예연습을 했으나 무릎수술을 받은 뒤로는 “수업 전날 3~4시간 쓰는 게 전부.”라며 “햇수는 갈수록 느는데 실력은 자꾸 주는 것 같다.”라고 속상해하는 눈치다.

하지만, 이내 “아유, 서예는 죽을 때까지 해야죠. 천사 같은 주변 사람 괴롭히려면.”이라는 농을 던지며 환하게 웃었다. 순간 글쟁이는 계절이 바뀌면 나무가 또다시 꽃을 피워내듯 할머니 얼굴에서 절대 지지 않을, 만발한 한 떨기 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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