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 '프린지' 형성 불가능했다
짧은 시간 '프린지' 형성 불가능했다
  • 월간토마토 김선정
  • 승인 2011.08.2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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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지' 다운 상상력의 부재…'대흥동립만세'와 차별점은 거미뿐

프린지(fringe)는 주변부를 뜻한다. 더 프린지(the fringe)라고 하면 비주류 예술을 뜻한다. 외래어를 사용해 그렇지만 할 수 없다. 프린지페스티벌의 유래 때문이다.

이제는 이 ‘프린지’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도 예술행사 또는 축전의 성격을 설명하는 어휘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대표적이다. 이 어휘를 사용하면 “우리가 진행하는 행사 혹은 축전이 어떤 성격을 띨 거예요.”라는 일종의 설명을 함축한다.

그 성격을 규정한 것은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이 처음 열렸을 때, 초청받지 못한 작은 단체들이 축제현장 주변에서 자생적으로 공연했다. 에든버러 프린지페스티벌은 예술가가 아닌 누구라도 자신이 제작한 공연과 작품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기 때문에 틀에 박힌 공연보다는 대담한 기획, 놀라운 상상력과 실험정신을 목격할 수 있는 ‘대안 문화 축제’로 자리 잡았다.

 ‘프린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바로, 스코틀랜드에서 보여주었던 불청객(?) 예술가들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지 표현이기도 하다.


‘놀라운 상상력은 없었다’

대전시도 프린지페스티벌을 기획했다. 대전시는 2011년 문화예술 관련 주요사업으로 대흥동, 은행동으로 대표하는 원도심을 대중문화예술 특화거리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대흥동, 은행동 문화 예술 거리 등에서 각종 공연 및 전시, 아트프리마켓, 프린지축제 등을 개최하기로 했다.

대전문화재단은 공모과정을 거쳐 사업 수행 주체를 결정했고 지난 7월 1일부터 7일까지 전체 계획 중 핵심 사업이라 할 수 있는 축전을 벌였다. 그 축전 이름은 ‘대전프린지페스티벌’이었다.

일주일 동안 저녁 8시만 되면 은행동 으능정이 거리와 대흥동 우리들공원에서 공연이 펼쳐졌다. 오후 2시에는 아트 스트리트라는 이름으로 같은 장소에서 네일아트, 페이스페인팅, 캐리커쳐 등 체험행사가 열렸다. 대흥동에서는 아트프리마켓이 열리기도 했다.

저녁에 열린 공연은 대흥동보다 은행동에 사람이 더 몰렸다. 힙합 공연이 무대에 올랐던 날에는 사람 사이를 비집고 지나갈 만큼 구경하는 이가 많았다. 대흥동 우리들공원은 은행동 축제현장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텅 비어 보였지만 행사가 열리는 동안 사람들이 꾸준히 공연을 보러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전프린지페스티벌이 열리는 동안 가장 많은 사람인 모인 날은 가수 ‘거미’가 나오는 개막식이었다. 아마추어에서 전문예술단체 등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는 행사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건 인기 대중가수였다. 프린지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비약하자면 프린지페스티벌이 열린 날이 아니라 ‘거미’ 온 날로 사람들은 기억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공연에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아트프리마켓이나 아트 스트리트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민망할 만큼 사람이 없었다. 으능정이 한가운데서 스프레이 프린팅을 하는 예술가가 나왔을 때는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으나 아트 스트리트에 대한 사람들의 참여도는 전반적으로 굉장히 낮았다.

‘애초부터 불가능한 기획’

축전을 평가하는데 있어 얼마나 많은 관중이 모였는지를 핵심 척도로 잡는 것은 문제가 있다. 더군다나 ‘프린지’라고 스스로 규정한 축전이라면 그 내용에 방점을 찍어 평가해야 한다. 여기서 한 참가자의 이야기는 중요한 부분을 짚어준다.

“차라리 솔직하게 동네잔치라고 하면 될걸. 프린지라고 해서 봤더니만 옛날에 했던 행사와 별다를 것 없다. 왜 괜히 프린지페스티벌이라고 해서 기대하게 했나 싶다.”

이번 축전이 프린지페스티벌이 아닌 다른 이름이었다면 평가는 또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은 대전프린지페스티벌 전반에 걸쳐 ‘대담한 기획이나 자유로운 상상’을 바탕에 둔 예술행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무대를 만들고 그 위에 인지도 있는 대중가수나 대중성 강한 장르 음악을 중심으로 라인업을 만들어 한 명씩 차례대로 무대에 올리는 것은 너무 뻔하다. 여기에 간혹 낯부끄럽게 만드는 사회자의 입담에 의존하는 진행 형태는 ‘프린지’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오히려 현대 시류의 ‘프린지’가 아닌 ‘센터’라고 보는 것이 맞다.

대전프린지페스티벌은 아무런 특징도 매력도 없는, 장기적인 계획 없이 급하게 준비한 티가 나는 행사였다. 관 주도로 만든 축전의 한계일 수도 있다. ‘대중문화예술 특화거리 조성사업’이라는 큰 사업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관에서 제시했다.

공모단계부터 ‘프린지페스티벌’은 주관단체가 수행해야 할 과업이었다. 이를 기획한 단위와 핵심 인사가 누구였는지 확인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프린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진정 있었는지, 대전의 현재 판이 이를 기획한 대로 수행할 만한 자원을 확보하고 있는지에 대한 진중한 고민이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어설픈 행정 단위의 기획이 현장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좋은 사례다. 예산을 갖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전문화재단에서 이 사업 주관단체 선정 공고가 난 것이 지난 4월 15일이다. 선정 후 프린지페스티벌이 첫 사업도 아니었고 그 사이에 토요일마다 무대를 만들면서 이 사업을 준비해야 했다. 불가능하다.

자칫 ‘모욕’일 수도 있다

예산은 있으니, 무대를 세팅하고 출연진을 섭외해 출연료를 지급하고 무대에 세우는 지극히 일반적인 ‘행사’를 치르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프린지’가 담고 있는 대담한 기획과 자유로운 상상, 형식을 갖춘 무엇인가 다른 걸 해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기획의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프린지페스티벌은 그 중심에 철저하게 ‘예술’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진일보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다.

1947년 그날 변방에 모인 초청받지 못한 예술인과 그룹이 대중에게 충격을 주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그럼 그렇지, 그래서 초청받지 못했던 거야. 왜 시끄럽고 정신 사납게 주제도 모르고 여기서 지랄들이야.”라는 욕을 들어먹으며 그대로 묻혀버렸을 게다. 대중에게 가해진 ‘충격’은 기존 것에 대한 반발과 저항, 그리고 새로움이었다.

이런 ‘프린지페스티벌’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치밀한 기획이 필요할지 생각했어야 한다. 또 대전이라는 공간적 범위에서 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예술 자원이 얼마나 있는지, 그 특징은 어떠하며 어떤 형태로 판을 벌일 수 있을지도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한다.

기획은 철저하고 명확한 상황분석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 기획자의 근거 없는 예단, 혹은 욕심을 통해 시행된 사업이 얼마나 많은 예산을 낭비하며 형편없는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첫 시도였다. 시간도 부족했고, 몇 가지 오류가 있었다. 이를 바로잡아 잘하면 된다. 평가 과정에서 꼭 논의되었으면 싶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이걸 왜 하려 하는가?’다. 혹시, 원도심 대중문화예술 특화거리 조성사업이 대전광역시 정책 추진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원도심 활성화 정책’의 하나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여기서 활성화는 당연히 ‘상권 활성화’다. 그렇다면 관객 수는 사업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핵심 척도가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몰려들고 그들이 얼마나 많이 소비하느냐가 주요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이건 아니다. ‘프린지’를 관객 수로 접근한다면 애초에 글러 먹었다. 아울러 상권 활성화를 위해 예술이 복무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런 기획은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모욕이다.

대중문화예술 특화거리 조성사업은 분명 내년에도 계속할 텐데,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주었으면 좋겠다. 예술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진중하고도 진지한 자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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