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장항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 글 이수연 사진 이용원
  • 승인 2012.08.2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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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소리가 끊이지 않는 희망의 도시', '밤새 노랫소리로 흥청거리는 장항'

다 허물어진 집 담장에 붙어 있는 ‘폐업대처분’ 포스터가 장항 전체를 말하는 것 같다. 폐업 혹은 휴업한 도시, 장항이다.  

◇ 장항은 이런 곳이었지요

충남 서천군 장항읍은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장항선 종착역으로 충청남도 끝자락이다. 1929년 갈대숲을 메워만든 도시다. 그때 언론보도를 보면, 장항은 장항선 유치, 장항항구축, 장항제련소 설립 등으로 '기적 소리가 끊이지 않는 희망의 도시', '밤새 노랫소리로 흥청거리는 장항'이었다.

당시 장항은 충청남북도 물자를 오사카로 운송하기 위해 일본인이 투자해 만든 항구도시였다. 식민지 정책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조성한 일제강점기 수탈 도구로 활용한 도시인 것이다. 군산항을 통해 쌀을 나르던 일본 이 시간, 임금 문제로 장항을 개발해 또 다른 수탈 기지로 삼았다. 어찌 됐든 1930년대 장항은 서천의 경제적 중심지로 변모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각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장항지역은 항만과 제련산업을 통한 산업도시, 미곡 집산지로 지역경제 번창을 맞았다.

해방 후 1960년대까지만 해도 장항항은 충남 유일의  l 종항이었으며 이후 지정항으로 지정, 무역을 위해 개방한 제한 지역인 ‘개항장’으로 명성을 이어갔다. 그러나 1990년 금강하굿둑 완공으로 장항, 군산을 오가던 승객이 하나 둘 끊기고 전반적인 산업구조 변화를 맞으며 쇠락했다. 이에 장항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국가산업단지 착공과 장항 소도읍 가꾸기 사업, 재래시장 활성화 등이 그것이다. 이와 더불어 관광객 유치에 대한 고민도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발버둥에도 별 성과가 없어 장항은 유령도시라는 말을 듣곤 했다.

◇ 장항은 이런 곳이지요

서천군은 장항을 ‘사람이 있는 도시, 사람이 오는 도시’로 만들려고 끊임없이 고민했다. 정부와 함께 1989년부터 서천 장항 앞바다 374만 평을 메워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생태계 훼손 논란 등으로 사업을 본격화하지 못하고 주민의 불만과 논란만 남긴 채 국가산업단지 조성 사업은 갈 길을 잃고 둥둥 떠다녔다.

15년이 넘도록 정책만 나오고 실행이 없자 장항 주민은 거세게 반발했고, ‘충청권 차별’이라는 논란이 지속해서 일었다. 2007년 성난 민심은 극에 달했다. 나소열 서천군수가 열흘 넘게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단식했는가 하면, 군민은 집회를 열어 시위했다. 이에 정부는 갯벌 매립 대신 서천 내륙에 산업단지를 만들고, 생태공원과 해양생물자원관을 세우는 대안사업을 서천군에 제안했다. 갯벌보존과 지역발전을 병행,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국가산업단지조성사업 이야기가 나온 지 18년 만인 지난 2007년 6월 대안사업을 결정했다. 이후 토지매입과 실시계획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대안사업을 ‘장항국가생태산업단지’로 명명했다.

◇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어요

정부대안사업이 진행되면서 서천군은 장항국가생태산업단지를 보러 온 관광객이 하루나 이틀 정도 더 머물며 체류형 관광을 즐길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자 고민했다. 젊은이의 마음을 끌고, 교육 목적으로 생태산업단지를 찾을 학생과 부모가 체험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어야 했다. 도시재생 전문가와 건축가, 외국 도시재생 성공사례 등을 연구했다. 그 중에서도 ‘예술’, 다른 지역과 차별화를 두면서 체험활동을 즐길 수 있는 ‘미디어 아트’를 생각해냈다. 미디어문화센터를 건립할 공간으로 서천군은 (옛)장항역사터를 선택했다. 철도공사와 협의하는 과정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긴 설득 끝에 (옛) 장항역사 터에 2013년 개관을 목표로 미디어문화센터를 착공했다.

그러나 채워 넣을 콘텐츠도 인적자원도 없었다. 인근에 거주하는 미디어 아트 작가도 없고, 장항이라는 도시 자체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에 서천군은 장항을 알리고 예술인과 교류하기 위한 행사를 기획한다. 일몰이 유명한 장항을 상징하기 위해 ‘선셋장항페스티벌’이라고 명했다.

선셋장항페스티벌은 장항이 가진 고유한 자산인 건축물, 자연을 활용하면서 젊은이들이 매력을 느끼는 홍대 앞 문화를 장항에 녹일 수 있도록 기획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버려진 공장터 등에서 젊은 작가들이 공동으로 펼치는 ‘공장미술제’, 홍대 앞 음악가와 예술가가 대거 참여하는 ‘True colors Music Festa’, 어린이 동반 가족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스쿨’, 바닷가 송림을 배경으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캠프’, 장르융합 공연인 ‘M.A.ZIK(Media+Art+muZIK) Mix Show’, 세계적 권위의 미디어 콘텐츠 기관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가 참여하는 ‘ARS 워크숍’ 등이다.

◇ 알고 보니 많이 있더라고요

선셋장항페스티벌 기간이었던 7월 17일 장항을 찾았다. 비 오는 장항도선장에 방치된 듯 보이는 ‘금강호’와 녹슨 배가 맥없이 누워 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허물어진 건물 사이에서 끈적끈적하게 느껴진다.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 한 채 한 채가 ‘떨이’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공장미술제와 미디어 아트스쿨을 볼 수 있었다. 공장미술제는 장항 읍내에 있는 금강중공업 창고, 어망공장 창고, 미곡 창고에서 열렸다.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며 돌아볼 수 있는 넓지 않은 거리였다. 미곡 창고, 어망공장 창고, 금강중공업 창고 순으로 공장미술제를 둘러보고 장항화물역에 도착했다. 장항화물역은 2008년부터 화물역사로만 이용해 사람을 볼 수 없는 역이었다. 그런데 이번 페스티벌을 위해 특별히 여객역사로 개방하여 손님을 맞았다. 또 미디어 아트스쿨로 탈바꿈해 갖가지 교육, 놀이, 체험 행사를 경험하게 했다.

서천군청 서천발전전략사업단의 성근미 주무관(42)은 “가족단위로 온 관광객이 역에서부터 체험을 시작해 동네 한 바퀴 산책하며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서천발전전략사업단은 서천군이 이번 ‘대안사업’과 ‘도시재생사업’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지를 보여주는 예였다.

장항에서 나고 자라 장항이 익숙한 성근미 주무관은 행사를 준비하며 많은 사람이 장항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페스티벌에 필요한 물품을 빌리려고 서울에 있는 사무국에 전화해 장항이라고 하면, 듣는 사람이 다른 나라이야기처럼 듣곤 했다. 낯선 고장 이름으로 불신까지 사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본인에게는 익숙한 ‘불 꺼진 도시 장항’의 현실을 꼼꼼히 보기 시작했다.

“‘정부 대안사업’은 확정했는데, 정작 장항에 머물면서 놀다갈 곳이 없더라고요. 해양생물자원관에 온 관광객이 거기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온 김에 장항을 한번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에 공모를 통해 군비 5억 원만으로 콘텐츠를 기획할 단체를 선정, 선정한 단체에서 제안하고 지금 페스티벌이 오기까지가 2년이 넘게 걸렸다.

“주민이나 의회가 왜 저 쓰러져 가는 건물을, 왜 저 땅을 사들여 이용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군에서 매입을 해 보존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의회를 먼저 설득해야 하거든요. 그렇게 터를 사들이려고 설득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죠. 지금 공장미술제를 하는 폐공장도 미곡창고밖에 사지 못했어요.”

◇ 장항, 지금 모습이 경쟁력이에요

장항을 둘러보며 장항이 가진 유일한 경쟁력은 현재 장항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남아 있는, 대부분은 허물어져 가지만, 그 건축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이 역사의 산 증인인 아까운 건물은 군이 사들이지 않는 한 누군가 언제, 헐어버릴지 모르는 불안한 공간이었다. 실제로 옛 금강중공업 옆 가구점 주인은 “조만간 이 건물은 주인이 없앤다고 하더라.”라며 “어차피 장사도 안 되는데, 없애면 나가야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성근미 주무관은 “군에서도 인식은 하고 있으나 설득이 어렵다.”라고 말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성근미 주무관의 표현대로 장항은 도시 자체가 ‘빈티지’였다. 시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벗겨지고 세월이 입혀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누군가는 ‘폐건물’로 치부할지도 모르겠으나 그 ‘폐건물’에 이야기를 입히고 건물을 조금만 다듬는다면 놀라운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장항읍 한가운데에 있는 ‘동원 여인숙’ 건물이다. 지금은 손만 가져다 대도 쓰러질 것 같은 그 여인숙 건물은 한때 장항항을 이용하는 외국인과 내국인, 그리고 떠나는 물건과 돌아오는 물건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인숙 건물을 보며 수많은 상상을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장항항을 통해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선교사와 여인숙 딸의 연정이 오갔을 수도, 쌀을 수탈해 가려던 일본인이 여인숙 주인에게 빠져 그 쌀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밤도망을 쳤을 수도 있는 일이다. 서천군이 사들여 여인숙의 역사와 사건을 담아 게스트하우스를 만든다면, 장항에 관광을 온 사람은 누구나 이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려 들 것이다. 이것이 장항이 가진 힘이며 경쟁력이었다.

오는 사람은 많은데, 사는 사람이 없어요
오랜 시간 장항의 역사를 보아왔던 주민을 찾고, 소통하며 자세한 이야기를 입히는 작업이 있었더라면 힘이며 경쟁력이었다.

◇ 오는 사람은 많은데, 사는 사람이 없어요

오랜 시간 장항의 역사를 보아왔던 주민을 찾고, 소통하며 자세한 이야기를 입히는 작업이 있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아니 사실은 지금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조금 오래 걸릴지 모르겠지만, 꼭 필요한 작업이다. 도시재생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도시에 사는 ‘주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선셋페스티벌이 열리는 현장에서 장항 주민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장항에 거주한 지 12년이 다 되어가는 주민 김정숙 씨(62)는 “들어가는 데 돈 내는 줄 알았다.”라며 “돈 안 내는 거면 한 번 들어가 볼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7월 14일 물양장 터에서 열렸던 유료행사 ‘트루컬러스 뮤직페스타’와 혼동한 듯 보였다.

그러나 현장에서 관람객을 안내하는 봉사활동을 하던 대학생 이연화 씨는 “주민도 많이 와서 즐겼다.”라며 “호기심을 보이고 이것저것 묻는 어르신들이 와서 보고 가곤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전시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어렵다며 돌아가는 분도 있곤 했다.”라고 말했다. 일반인에게도 생소한 단어인 ‘미디어 아트’가 오랜 시간 변화를 모르고 살았던 거주민에게는 낯설고 무서운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주민 대부분이 “잘은 모르지만, 행사가 열리는 것이 나쁘지 않다.”라고 말했다. 김성순 씨(54)는 “뭐라도 하려고 하고 외지사람이 와서 북적거리니 좋다.”라고 말했고, 금강중공업 근방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손수영 씨(70)는 “객지서 사람이 오니 않는 것 보담은 낫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주민 반응에 성근미 주무관은 “주민 관심이 높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홍보를 안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주민 조직이나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인적자원이 없다.”라고 말했다.

◇ 이벤트성 공간 임대는 안 돼요

그러나 도시재생에서 주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왜 폐건물을 보존해야 하는지, 그 건물을 유지함으로 장항이 어떤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지, 주민과 군이 함께 이해해야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탄탄하게 다져질 수 있다. 또 이곳에 스토리를 입히는 과정에서 핵심도 주민이다. 조금 더디더라도 참여식 재생방식은 쌍방향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며 오랜 시간을 두고 진행해 실패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처음 장항을 재생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부터 그 방향성에 대해 주민과 함께 논의해야 했다. 선셋장항페스티벌 추진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젊은 사람은 거의 없고 노인이 대부분인 도시라고 포기한다면 이는 도시 재생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주민을 배제한 채 이벤트성 행사를 벌이는 것은 ‘재생’이라기 보다는 ‘공간 임대’에 가깝다.

쇠락해가는 도시라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지레짐작하고 페스티벌에 주민을 배제한 것은 큰 실수다. 과연 누구를 위한 도시재생인가를 가장 먼저 떠올려 봐야 한다. 장항이 도시재생을 하는 이유가 단순히 전시할 공간이 없는 작가에게 전시 공간을 제공하고 그 전시를 소비할 관광객유치를 위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최근 도시재생사업은 과거 하드웨어 측면인 재건축, 재개발에 초점이 맞춰 있는 것이 아니다. 소프트웨어를 강조하며 감성, 참여를 키워드로 삼고 있다. 주민의 참여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그 이야기를 입힌 것을 생산, 판매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주민이 객(客)이 되었다. 처음부터 주민 교육이 어려웠다면, 문화, 예술이 낯선 주민에게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다가가 주민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작가들이 다가가는 프로그램이 있더라도 좋았겠다.

◇ 그곳엔 주민이 있어야 해요

이러한 문제 제기에도 우리가 보고 온 장항은 분명히 발전 가능성과 함께 가치 있는 도시였다. 그들이 사는 지역의 차별성을 인식하고 시행한 페스티벌은 분명히 재미있고, 발랄했다. 또 담당 공무원의 지역에 대한 애정과 고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보통 이런 행사를 한 번 치르려면 수십억 원이 든다. 그런데 군 예산으로는 큰 결단인 오억 원을 가지고 이 행사를 집행하기까지는 우리가 듣지 못한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선셋장항페스티벌을 발판으로 주민의 눈을 한 번씩은 돌렸으니 이제 참여를 이끌어내기만 하면 된다.

지금이라도 장항이라는 도시를 스토리 텔링하면서 주민을 객이 아닌 주인으로 끌어내고 장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크고 작은 모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외부 전문가는 이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연대하고 도움을 받고 함께 하는 존재여야지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버린다면 쌓이는 무엇인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후 장항에 갈 일이 있다면, 폐업 아닌 ‘영업’하는 동원여인숙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으면 좋겠다. 곳곳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숨겨 둔다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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