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사랑시민협의회와 대전문화역사진흥회가 뜻을 모아
‘대전역사탐방’을 진행한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이번 모임은 대전 역사문화의 뿌리를 찾고 대전의 숨결이 담긴 문화재를 알며 이를 소중히 하고
아끼자는 목적에서 계획되었다. 대전을 4개 권역(동·서·남·북부지역)으로 나눠 4차례에 걸쳐 역사탐방에 나서기로 하고 4월 6일 첫 번째 코스로
대전의 동쪽인 계족산 자락을 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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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동춘당 공원 내 회덕 동춘당, 회덕 쌍청당,
송애당에서부터 남간정사(우암사적공원), 상곡사, 미륵원터와 남루, 관동모려, 효평사, 여흥민씨재실, 용호사지, 취백정 등 모두 10여 곳을
탐방했다.
이날 동춘당 공원에는 총 5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행사를 주관한 향토사학자 이규희(대전애국지사숭모회장)씨와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전오
회장, 대전사랑시민협의회 양희권 회장의 모습도 보였다.
양희권 대전사랑시민협의회장은 “계족산, 식장산, 보문산, 구봉산을 주축으로 대전의 뿌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며 “오늘
둘러볼 계족산 회덕문화권은 대전 역사 뿌리의 출발졈이라고 강조했다.
이규희 대전애국지사숭모회장은 “그동안 대전역사탐방을 했던 단체가 10여 곳은 된다”며 “그런데 하다가 중단된 곳이 많고 아직도 대전의
탄생부터 근현대사까지 의견이 분분하다”고 말했다.
이전오 대전문화역사진흥회장은 “훌륭한 조상의 일생과 그분이 어떻게 살아오신 분인가를 알고 넘어가는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시대 상류층 주택양식과 생활상우리가 제일 먼저 둘러본 곳은 회덕 동춘당. 현재 보물 제20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후기
명성 높은 문신이자 학자였던 송준길(1606~1672)의 아버지 송이창(1561~1627)이 처음 세웠던 건물을 옮겨 지은 별당이다. 송준길은
한 살 아래인 송시열과 동문수학하며 평생을 죽마고우로 지냈다고 한다. 이 둘은 효종의 각별한 신임 속에 함께 북벌계획에 참여했으나 중국의 막강한
힘에 밀려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 행사의 역사 해설을 맡은 이규희 회장은 “조선에서 이 둘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남긴 학자들”이라고
덧붙였다. 동춘(同春)이란 ‘살아 움직이는 봄과 같아라’는 뜻으로 송준길은 이곳에서 학문을 탐구하고 후진양성을 위해 힘썼다고 한다. 이 회장은
“주목해서 봐야 할 중요한 포인트는 동춘당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사람들에게 동춘당 뒤편에 있는 동춘당 고택으로 자리를 이동할 것을 권했다.
“이 건물은 조선중기 건축의 표본이다. 당시 지방의 사대부 집모양은 ‘ㄷ’자로 규격화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전국에서도 거의 볼 수 없는
희귀적인 기와가 하나 있다”는 이 회장의 해설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이 회장에 따르면, 보통 획일적으로 만드는 다른 집의 기와모양과는
달리 이곳에는 도깨비탈(망화)이라 불리는 특이한 기와장식이 있다. 이는 건물뿐만 아니라 집안 전체를 수호하는 수호신을 상징한다고 했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에 뿔이 나있다.
45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며 현존하는 것은 딱 6개 정도라고. 전라남도 장성리에서 특별히 만들어졌으며 그대로 재현해내려면 개당
50만원씩 들여야 한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렵고 가난한 자들 위해 지은 ‘행복휴게소’다음으로 답사한 곳은 미륵원터와 남루. 동구 마산동 은골 서북쪽에 있었으나 지금은 대청호에
수몰되어 남루만 옮겨 복원했다고 한다.
고려 말에서 조선조 초기에 걸쳐 회덕 지방의 호족이었던 회덕황씨 댁에서 자비와 인심을 베풀며 운영했던 지금의 여관 비슷한 숙박소였다.
이들은 당시 은골 마을을 지나던 나그네뿐 아니라 주변일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안식처와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남루’를 지었다고 한다.
배고픈 이들을 먹이기 위해 매일 아침저녁으로 쌀을 씻어 그 물이 냇가에 하얀 구름이 피듯 다리 아래로 흘러가 ‘구름다리’라고 불렀으며 30여개의
큰 솥을 걸어놨던 곳은 ‘솥티실’이라고 할 정도였다니, 얼마나 대단한 부자였을까 싶기도 하고 요즘 우리 사회에도 그런 부자들이 제발 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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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은 미공개 문화재, 파주 염씨 사당 자리를 옮겨 찾은 곳은 동구 효평동에 위치한 효평사.
이규희 회장은 이곳을 “오늘 역사탐방의 하이라이트”라고 소개했다. 고려말 문신 충경공 염제신을 봉안한 사당으로 강원도 영월에 모셔져 있던
것을 6.25때 훼손될까 우려해 자손이 위패를 모시고 걸어서 옮겨왔다고 한다. 염제신은 서원(지금의 파주) 염씨 가문으로 고려 충숙왕 이래
우왕까지 6대 왕에 걸쳐 60여년 동안 관직생활을 한 고려 말의 문신이다. 일반적으로 영정이 있는 곳엔 위패가 없는데 반해 이곳엔 영정과 위패가
모두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회장은 “미공개 문화재로서 아직까지 언론이나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적이 없는 귀한 문화재”라고 강조했다.
짧은 답사 뒤에 남는 긴 여운·감동 이번 답사에 참가한 이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대전사랑시민협의회 자원봉사관리 박순자(여·66) 대표는 “유적들이 있다는 것만 알았는데 우리 조상의 뿌리를
찾아 직접 이렇게 답사하며 설명을 들으니 감회가 너무 새롭다”며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모범운전자 연합회 이대식(남·56) 대전지부장은 “대전에서 36년간 택시운전을 해왔지만 오늘 봤던 곳 중 80%는 잘 모르는 곳 이었다”며
“앞으로는 손님을 태우고 가면서 우리고장을 알리고 홍보하는 일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의회를 사랑하는 사람들 윤점숙 사무국장은 “대전에 유적지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면서 “주말을 이용해 우리 청소년들과 꼭 함께 답사했으면
좋겠다. 대전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대전시민이라면 대전역사와 뿌리에 대해 하루 속히 알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소년 사회봉사 활동 단체(G.C.M) 조창연 차장은 “대전역사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고 대전에서 이렇게 큰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 놀랍다. 대전이란 곳이 대단한 곳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또 한국 SGI 대전문화회관 이용남 대전권장은 “오늘 역사탐방을 통해 대덕구 회덕이 소중한 대전의 발원지였다는 것을 알았고 마음에 더욱
정겹고 친근감 있게 와 닿았다”며 “애향심을 갖게 해준 우리 대전을 정말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답사의 또 한가지 묘미는 바로 향토사학자 이규희 회장의 자세하고 생생한 역사해설과 일화 소개 등이었는데 이 회장은 답사 내내 “우리
대전의 문화유산을 되찾고 복원시키며 문화재로 등록하는데 있어 시당국의 관심과 협조가 아직도 더욱 많이 필요하다”며 안타까워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번 대전역사탐방 참여자 50여명 중 대부분이 40~60대였다는점. 앞으로 대전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갈
청소년들과 대학생들도 함께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탐방을 하는
동안 옆에서 자상한 파트너가 돼주셨던 박순자 씨의 말이 생각난다. “공부가 우선은
아니다. 이 땅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하는데 대전문화 역사와 뿌리에 대해 우리도 이렇게 모르고 있으니 후손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