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해 보이지 않아서 특별한’ 아미미술관
‘특별해 보이지 않아서 특별한’ 아미미술관
  • 글 송주홍 사진 이용원
  • 승인 2012.10.0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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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에 어울리는, 자연과 호흡하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덩그러니 놓인 새하얀 단층건물. 건물 모퉁이에 수놓은 ‘Ami Art Museum’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에 촉촉이 젖은 나무와 풀, 그리고 흙냄새가 싱그럽다.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 당진을 향하며 상상했던 화려하고 독특한 건축양식의 미술관은 아니다. 그래서 반가웠다. 특별해 보이지 않아서 특별한 아미미술관. ‘Ami Art Museum’은 그렇게 방문객 발길을 반기고 있었다.

자연과 호흡하는 미술관
이곳은 원래 유동국민학교였다. 1967년 순성국민학교에서 분리하며 개교했다. 하지만, 줄어드는 농촌인구로 1993년, 26년이라는 짧은 추억만 남긴 채 폐교했다. 폐교 직후, 활용방안에 대한 이런저런 논의도 있었지만 모두 무산됐다.

1994년, 아무런 관심도 없던 폐교에 홍도나무, 은행나무 등이 자라기 시작했다. 계절마다 갖가지 꽃도 만발했다. 봄이면 화사한 진달래꽃과 홍도화가 교정을 덮었다. 허름한 외벽은 흰색 옷으로 새 단장했다. 비만 오면 호수가 되던 운동장엔 잔디가 깔렸다. “최소한의 불편한 것만 고치고 다듬자.”던 것이 꼬박 20년이나 걸렸다. 그리고 작년 6월, 아미미술관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식으로 개관식도 하고 전시회도 열었다.

“세상엔 돈으로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또 돈만으론 해결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이곳은 돈보단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라는 서양화가 박기호(58) 씨와 설치미술가 구현숙(51) 씨 부부.

어쩌다가 시골 마을 폐교에 미술관을 생각하게 됐을까? 1983년, 박기호 관장은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양화구상부문에서 대상을 받고 부상으로 세계여행을 다녀오게 됐다. 그때 처음으로 덴마크 루이지아나 미술관을 방문했다. 바다가 보이는 시골 마을의 자그마한 미술관이었다.

“무척 아름다웠어요. 바다라는 대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는 루이지아나 미술관은 감동 그 자체였죠. 작고 아기자기한 소박함, 사람 발길을 이끄는 편안함, 그 당시로선 상상도 할 수 없던 미술관의 모습이었죠. 대형화된 화려한 미술관이 아닌, 시골 마을의 작은 미술관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그때 결심했어요. 누구에게나 부담 없이 편안한, 자연스럽게 들어와 사색할 수 있는 그런 미술관을 만들어보자고요.”

사색의 공간

박 관장 안내를 받으며 미술관 곳곳을 돌아보았다. 야외전시를 비롯해 음악회 등 행사장으로 활용하는 잔디밭.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기대면 금방이라도 잠이 올 것 같은 포근함이다. 잔디밭을 따라 이동하면 끝자락에 작은 연못이 나온다. 특이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던 소나무가 아름다워 연못도 손수 팠다고 한다. 연못을 지나 위쪽으로 이동하면 박 관장 부부의 서재 겸 침실이 나온다.

원래는 유치원이었던 건물이다. 멀리 아미산을 볼 수 있도록 한쪽 벽에 큰 창을 냈다. “날이 좋으면 미인의 눈썹같이 아름답다는 아미산의 매력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죠.”라는 박 관장. 서재 겸 침실을 지나면 창고였던 작은 건물(지금은 비어있지만, 카페 겸 쉼터를 계획하고 있다.)이 나온다. 그리고 몇 개의 야외 테이블과 옛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한옥 한 채. 교장 사옥이었다.

박 관장 부부가 폐교에 처음 왔을 땐 한옥이 반쯤 쓰러질 듯 위태위태했었다. 어쩔 수 없이 기와도 새로 깔고, 바닥도 온돌로 교체했다. 보수하는 데만 3년이 걸렸다. 습한 날씨 탓에 아궁이에선 마침 장작이 타고 있었다. 장작 타는 냄새와 굴뚝을 타고 나온 연기에서 묘한 고취(高趣)가 느껴졌다. 한옥에선 현재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경희(31) 작가가 머물고 있다.

“7월에 처음 왔는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아주 아름다웠어요. 사색할 수 있는, 조용하고 운치 있는 분위기가 이곳의 매력이에요. 작업에 필요한 여러 가지 영감을 얻고 있어요. 특히 아무렇지 않은 듯 놓여있는 나무, 항아리, 돌담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해요. 천천히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각자의 의미가 담겨 있거든요. 지나치듯 보지 말고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여유 있게 보면 깊은 멋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실제 한옥 주변으로 다양한 모양의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모두 400여 개인데, 박 관장이 전국을 다니며 직접 모은 것들이다. 돌담도 박 관장이 직접, 하루에 1m씩 쌓았다고 한다.

옛 추억 그대로 지역과 소통

본동은 외벽 페인트칠과 부분적 보수 말고는 옛 모습 그대로다. 건물 바닥과 천장 서까래는 손도 대지 않았다. 심지어 유리창은 건축 당시 목수를 찾아 중간에 교체했던 새시를 다시 나무틀로 바꿨다. 유동국민학교의 추억을 그대로 간직한 셈이다. 8개였던 교실은 두 개씩 묶어 작업실, 작품을 보관하는 공간, 전시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옛 모습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박 관장은 지난해 열렸던 지역교사, 어린이, 그리고 그 가족과 함께 한 전시를 소개한 후, 대답을 대신했다.

“시골 학교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싶어요. 그 모습으로 지역사회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지역문화를 활성화 시키고 싶은 거죠.”

박 관장 부부는 시골 학교의 옛 모습뿐 아니라 시골 학교가 갖는 고유의 기능을 되살리고 싶은 듯했다. 시골 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리면 온 동네 주민이 모여 마을 잔치를 벌이듯, ‘종합문화복지센터’로써의 그 기능 말이다.

소통하고, 교류하고, 발굴하는 공간으로…
아미미술관은 지난해 개관했지만, 여전히 미완성이다. 다듬어가는 과정에 있다. “스스로 만족할 수 없어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라는 박 관장. 박 관장이 꿈꾸는 아미미술관은 어떤 모습일까?

“처음에는 내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미미술관’이라는 간판을 거는 순간부터 내 것이라는 생각을 버렸어요. 모두의 것인 거죠. 예술가들이 모여 소통하고, 지역 주민이 모여 교류하고, 젊은 예술가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불어로 ‘Ami'가 친구거든요. 먼지 쌓이듯 서서히 친구 같은 공간으로 나아가길 희망해요.”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유유히 사색하고 싶다면, 가보자. 옛 학교의 추억과 예술이 공존하는 아미미술관으로.

아미미술관 전시 일정
9월 22일(토)~10월 14일(일) /Here and there(당진 출신 작가 30명)
10월 20일(토)~ 레지던시 프로그램(레진던시 참여작가 6명, 지역교사 15명 등)
충남 당진시 순성면 성북리 158번지/T.041.353.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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