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주택 단지로 남아 있어줘
개인 주택 단지로 남아 있어줘
  • 글·사진 이용원
  • 승인 2012.11.1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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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구 옥계동 ‘옥계초등학교’ 주변

‘4 X 6’ 옥계초등학교 주변 마을 블록이다. 24개 상자가 있고 그 사이사이에 골목이 나 있다. 상자 하나에 스무 채 안팎의 개인 주택이나 빌라형 공동주택이 들어가 있다. 옥계동 전체가 이 블록 안에 모두 들어오는 건 아니다. 이번에 답사한 구역이 그렇다는 얘기다.

정확하게 반듯하지 않지만 레고로 만든 블록 마을 같다. 금산군에서 대전광역시로 들어오는 대종로 좌측편이고 보문산 자락 아래다. 옥계초등학교를 기점으로 남/동쪽 방향으로 답사를 진행했다.

1982년 12월 석교초등학교에서 분리한 옥계초등학교는 ‘옥동자를 키우는’ 학교다. 담장을 없앴고 정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육중한 철문 대신 ‘히말라야 시다’ 한 그루가 멋지게 자란다. 나무 주변에 둥글게 쉼터를 만들고 그 주변에 돌로 만든 의자를 두어 아이들과 동네 주민이 함께 앉아 따사로운 햇볕을 쬔다.

시골마을처럼 노인 인구가 많은데, 여전히 학교 앞에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와 골목을 뛰어다니는 소리가 있어 정겹다. 학교 옆으로는 보문산 자락이 남북방향으로 길게 이어진다. 4X 6 중 ‘6’에 해당한다. 보문산 자락에 구조물이라 할만한 건 뜬금없는 골프 연습장, 한산 이씨 시조인 이색 영정을 모신 영당과 관리 사택이 전부다. 알뜰하게 일군 산비탈 텃밭을 제외하면 그렇다.

보문산자락에서 내려온 가을이 오후 들면서 그늘이 지기 시작한 보문산 산밑 도로를 가득 채웠다. 상대적으로 지대가 높은 그곳에서 대전천 건너 가오동 아파트 단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 대전천 건너 그곳엔 햇살이 가득하다. 도로는 한쪽에 차를 주차하고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 폭이다. 주민 몇을 만났지만 모두 이사 온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사람 뿐이다. 하긴, 원주민이라고 해봐야 이곳에 거주한지 40년이 채 안 되었을 게다.

길이 보문산 자락에 막혀 동쪽으로 급하게 꺾이는 지점에 ‘목은 이색 영정’을 모신 영당과 관리사택이 보문산쪽으로 붙어 있다. 또 그 지점 건너편으로 굴삭기 삽날로 긁어낸 자국으로 보이는 상처를 가진, 제법 큰 바위가 놓여 있다. 그 바위 한쪽 끝은 건물을 부순 후 임시로 흙을 부어 놓은 나대지가 이어져 이 바위 실제 크기가 얼마나 큰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규모와 위치로 보아 사연이나 전설, 이름 쯤은 갖고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마을에서 확인할 수는 없었다.

골 목 에 는 강 아 지 와 고 양 이 , 그 리 고 아 이 들

대전 중구 옥계동은 행정동으로 이웃 석교동에 속한다. ‘4 X 6’ 이라는 수식에서 눈치 챘겠지만 이번 답사 구역은 철저하게 구획을 정리해 의도적으로 만든 주택 단지다. 1980년을 전후에 주민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근대 주택 단지다.

마을 이름 유래를 물을래야 물을 사람이 없었다. 대전역사박물관 자료실에는 “대전천 물이 용머리를 적시는데 이것이 옥계수(옥처럼 맑은 물)와 같다고 하여 옥계라고 한다.”라고 지명 유래를 설명한다. 용머리는 또 무엇인가 싶어 찾아보니 같은 자료에 “옥계동 천주교회 서쪽 산밑 부근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뒷산이 튀어나와 둠벙에 이어진 모양이 용이 물을 먹는 모습 같다고 하여 용머리라 하게 되었다.”라고 적혀 있다.

마을 뒷산이면 보문산인데, 현재 모습에서 산자락이 대전천에 닿으려면 금산 방면으로 더 내려가 옥계교 근방까지 가야 한다. 옥천천주교회하고는 많이 떨어진 지점이다. 대전천 옛 물길이 지금보다 서쪽으로 훨씬 붙어 흘렀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용머리 마을이 이번 답사구역이 아닌 것은 거의 확실하다.

목은 이색 영당에서 동쪽으로 꺾어 내려오면서 ‘4’에 해당하는 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기로 마음 먹는다. 답사구역을 빠짐없이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정확한 규칙은 아니었지만 보문산 자락에 붙을 수록 더 오래된 집이 눈에 많이 띈다. 대전천 쪽으로 내려 갈 수록 비교적 최근에 새로 짓거나 수리한 흔적이 역력한 개인 주택과 빌라, 원룸 등 다세대 주택이 많다.

차량 두 대, 혹은 한 대가 넉넉하게 지나갈 정도 폭을 갖춘 골목은 무척 정겹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는 아이들 재잘거림도 들리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강아지와 담벼락 아래 몸을 편안하게 뉘고 털을 고르는 고양이도 쉽게 본다. 무엇보다 형태가 다른 개인주택과 주인 성향이 드러나는 정원수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낮 시간이라 그런지 대문이 대부분 닫혀 있었지만 현예분(79) 씨 집은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이웃 박순자(70)씨가 놀러와 함께 마당에서 팥을 까는 모습이 여느 농촌마을 풍경을 닮았다.
“옛날에는 여기 마을 없었어. 맨 밭이었지. 그러다 지금처럼 집이 들어선 게 30년 정도밖에 안 되었어. 지금은 골목에 아스팔트 포장이라도 했지만 처음 들어왔을 때는 그냥 흙땅이어서 비오면 장화 신고 다녔지. 수도도 없어서 지하수 파 가지고 집집마다 먹었고.”

모 암 골 짜 기 약 수 터 유 명

금산군과 가까워서인지 마을 주민 중에 금산 출신 사람이 제법 많았다. 이번 답사구역에 새 지번 표기는 ‘모암로’다. 모암이라는 지번 이름에 영향을 준 곳은 옥계초등학교 뒤쪽 골짜기다. 그곳을 모암골짜기라 불렀고 그곳에 있는 약수터는 모암약수터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는 더 유명했던 약수터야. 밤 11시,12시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물을 떠갔다니까. 지금은 그 뭐냐 정수기가 생기면서 덜하지만.”

“그냥 샘밑에 조그만 옹달샘이었는데 지금은 지붕도 해 뒀잖아. 피부병에 걸리거나 옻 올랐을 때 좋다는 이야기도 있었지. 이 근방 사람뿐만 아니라 부사동 가오동 천동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어.”

현예분 씨와 박순자 씨가 주거니 받거니 모암약수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최근 들어 빌라 등 공동주택이 많이 들어서는 것은 영 탐탁치 않은 모양이다. 일부 구역에서는 일조권과 풍광 등 때문에 마찰도 좀 있었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골목에 차량 통행량이 많아지면서 시끄럽고 위험한 게 영 마뜩찮다. 오르락 내리락 골목을 걷다 한 공터에 마련한 밭에 물을 주고 풀을 뽑는 박우전(77)씨 부부를 만났다. 물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공터와 마주한 박 씨 집에서 길어왔다. 농약을 하지 않았더니 벌레가 많이 먹었다고 박 씨 아내가 말한다.

“1970년대 여기가 체비지로 나왔을 때 집 터하고 여기 이 공터하고 샀지. 저 집은 1981년에 지었고. 둔산동에 공군비행장 있고 그 뒤에 벽돌 공장이 있었는데. 그 공장에 가서 벽돌을 사다가 지은 집이야. 여기가 주택지로는 참 좋은데, 우리랑 같이 집짓고 이사왔던 사람은 거의 이사 나갔지. 자식 시집 장가 보내고 돈도 벌만큼 벌었으니 아파트에서 산다고 다 이사 간 거지.”

체비지는 도시개발을 위해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를 선정한 후 공공시설 설치 등 시행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지구 내 개인토지 점유 면적에 따라 감보율을 적용해 확보한 토지다. 옥계동 일대가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1970년대 토지구획정리 사업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골목 모퉁이에 서 있는 옥계침례교회 머릿돌에 건축년도를 살펴보니 1982년 6월 16일이다.

따 사 로 운 햇 살 맞 으 며 골 목 을

대종로 큰길에 닿아서는 상가다. 철물점과 지물포, 작은 가게, 가스충전소, 주유소, 정육점, 식당, 미용실 등 다양한 시설이 자리 잡았다. 한때 재개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쑥 들어갔다. 골목에서 만난 한 주민은 아무래도 보문산 때문에 고도를 제한한 결과일 거라는 추론을 내 놓았다.

이유야 어떻든, 재개발을 통해 이웃 가오동과 비슷한 형태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것보다 개성이 톡톡 넘치는 개인주택단지로 남아 있는 것이 도시 정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훨씬 좋겠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골목을 한두 시간만 걸어다니면 금방 이런 생각에 동의할 수 있다. 이곳에 예술적 상상력만 조금 더 가미한다면 말이다. 사실, 난 이 동네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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