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가 ‘좋은’ 악기를 만들고 싶어요
악기가 ‘좋은’ 악기를 만들고 싶어요
  • 글 김선정 사진 노연희
  • 승인 2012.11.3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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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준 주소대로 찾아왔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하천 옆에 나 있는 길가를 돌아다녀도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고 말문을 떼려고 하자 건강원 간판이 달린 가게 안으로 바이올린이 슬며시 보인다.
이태리 작은 시골마을에서 홍성으로

현악기 제작자 권석철, 정재경 씨는 이태리 유학 후, 충남 홍성에 현악기 공방을 만들었다. 3년도 더 된 일이다. 이태리와 충남 홍성, 이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그 간극이 꽤 크다. 왜 사람들이 몰려드는 대도시가 아닌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일까.

“편하게 일하기 좋은 곳이에요. 홍성에 (정재경의)친정이 있어서 생활하는 데 불편함도 없고요. 이태리 살았을 때도 시골 마을에 있어서 적응이 어렵지 않았어요. 다만 문화적인 혜택이 전혀 없어 그게 아쉽죠. 기회가 되면 이곳에 서 작은 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주변 풍경과는 어색하게만 보였던 ‘건강원 간판’을 단 현악기 공방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곳처럼 느껴진다. 권석철 씨가 현악기 제작을 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전공도 이쪽 분야가 아니었다. 그는 학원에서 이탈리아 어를 배운 뒤, 크레모나라는 도시로 떠났다.

“우연히 ‘바이올린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어요. 처음 읽었을 때는 몰랐지만 두 번 세 번 읽다 그냥 끌려버린 거죠. 바이올린 제작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요.(웃음)”

정재경 씨는 꽃다운 나이 23살에 크레모나로 떠나 그곳에서 8년을 지냈다. “저 역시 전공이 악기 제작이 아니었어요. 지휘 공부를 하고 있었죠. 우연히 본 음악 잡지에서 현악기 제작자를 접하고 크레모나에 가게 됐어요. 악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요. 크레모나 국제 바이올린제작학교에 입학해서 공부했죠.”

두 사람이 바이올린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한국을 떠나 도착한 이탈리아 작은 도시, 크레모나. 크레모나는 최고 현악기를 만들었다고 손꼽히는 장인, 스트라디바리의 고향이다. 권석철, 정재경 이 두 사람은 크레모나에서 만났다. 이 두 사람은 부부다.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언어 장벽에 좌절도 하고 향수병의 외로움도 겪었지만, 현악기 제작을 향한 이들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들은 자신만의 악기 제작 스타일을 찾아 나갔다.

“저희가 만드는 악기는 스타일이나 소리에 차이가 있어요. 오빠(정석철)의 악기는 오빠 성격처럼 차분한 편이에요. 조금 묵직하면서도 진중한 소리죠. 저는 밝고 여성스러운 분위기의 소리가 나와요.”

단순히 악기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현악기 중 하나인 바이올린. 그 겉모습은 다 비슷해 보여도 제작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섬세하게 작업하고 공을 들이냐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악기 제작을 하려면 타고난 손재주뿐만 아니라, 똑같은 과정을 오랫동안 반복하는 집중력과 인내력, 그리고 열정이 필요하다.

“유학을 다녀와 제작하면서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요. 끝이 없죠. 기술적인 면에서도 정신적인 면에서도 제작자는 수련하듯이 매달려야 합니다. 바로 좋은 악기가 나올 수 없는 법이니까요.” (권석철)

“열정 없이 하기엔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더 나은 악기를 만들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지치기도 하거든요.” (정재경)

이 두 사람이 지금까지 만든 바이올린 수는 거의 120대에 달한다. 만든 악기 중 가장 만족한 악기가 있었느냐고 물어보자 권석철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제작자는 만족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발전할 수 없어요.”

악기를 제작하려면 조각칼을 손에 쥔 채 나무를 깎아 내고 대패질을 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자연스레 두 사람의 손에 눈길이 간다. 권석철 씨 손은 두툼하고 투박했다. 상대적으로 손이 작고 힘이 약한 여성인 정재경 씨는 체력적으로 더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여자라서 더 힘들고, 뭐 그렇지는 않아요. 처음에는 손에 쥐가 나기도 하고 온몸이 쑤시기도 했는데요. 점점 기술이나 요령이 늘면 괜찮아요. 그렇게 되려면 3년 정도 시간이 필요해요.”

현악기 제작은 목공 중에서도 굉장히 정밀한 작업이다. 하나의 바이올린을 만드는 데 2~3달의 작업기간이 걸린다. 그렇게 공들여 제작한 악기가 좋은 연주자에게 전해져 연주되는 것, 이것이 이들이 악기를 제작할 때 느끼는 가장 큰 행복이다.

“좋은 악기를 제작해서 좋은 연주자가 가져가면 보람을 느껴요. 이번에 저희가 만든 악기로 연주해서 상을 탄 학생도 있어요. 이럴 때 기분이 정말 좋죠.” 그들이 운영하는 공방에선 악기 제작뿐 아니라 취미반, 전문반 수업도 한다. 한 아버지는 딸에게 선물하려고 이곳에서 하나뿐인 바이올린 제작을 했다. 인터뷰한 당시에는 크레모나 유학을 앞둔 은퇴한 학교 선생님이 공방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권석철 씨는 수업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악기 제작을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악기 제작은 쉽지 않은 분야예요, 아무래도 현악기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은 악기이다 보니 제작과 관련된 것을 잘 모르는 분도 많죠. (권석철)

좋은 악기를 만들고 싶다

같은 공간에서 부부가 만드는 악기라 하더라도 분명 그 느낌은 다르다. 아무래도 악기를 만드는 사람의 성격과 분위기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악기를 제작하는 스타일, 선호하는 제작 방식 등이 전혀 다른 두 사람. 하지만 악기 제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같다. 바로 좋은 소리가 나오는 좋은 악기를 만드는 것이다.

“바이올린은 역사가 깊어요. 굉장히 오래됐죠. 저는 공부하는 제작자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해야 좋은 악기를 만들 수 있고요. 또 다른 제작자들과 대화를 통해 더 나은 악기 제작을 하고 싶어요. 가장 큰 인생의 목표는 음악가한테 인정을 받는 제작가가 되는 겁니다.” (권석철)

“저는 음악가가 원하는 걸 들어줄 수 있는 제작자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이런 부분, 저런 부분을 음악가에게 맞출 수 있는 제작자요. 좋은 악기는 무엇보다 소리가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서 연주자와 많은 대화를 하고 싶어요. 연주가의 지적은 제작자에게 좋은 거름이 되거든요.” (정재경)

흔히 말하는 현악기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는 4현이다. 활을 이용하여 마찰로 소리를 내며 현악기 모습을 갖춘 것은 대략 1,500년 전이라고 한다. 현악기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예전 모습 그 형태로 사람들을 통해 제작되고 연주된다. 좋은 현악기 제작자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하는 권석철, 정재경 씨. 이 두 사람 같은 현악기 제작자가 있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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