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도 일말의 가치가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도 일말의 가치가 있다
  • 글 박숙현 사진 송주홍
  • 승인 2012.12.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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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대전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 <키다리 아가씨> 윤모 감독

금순은 집창촌에서 일한다. 매일 밤 높은 구두를 신고 쇼윈도우에 앉아 있는 금순. 헐벗은 차림으로 손님은 기다린다. 그녀의 맞은 편, 쇼윈도우 밖에는 중학생 소녀가 앉아있다. 성병약을 파는 할머니 옆에서 딸꾹질하면서. 딸꾹딸꾹.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금순이 높은 구두에서 내려와 마시던 물을 엎드려서 마신다. 금순이 물을 다 마시자 소녀가 금순을 따라 한다. 그러자 곧 딸꾹질이 멈춘다. 잠시 뒤, 누군가 금순을 찾아온다. 금순의 등을 두드리는 누군가의 손가락. 그런데 갑자기 금순이 딸꾹질을 한다. 딸꾹딸꾹. -영화 <키다리 아가씨>-

<키다리 아가씨>는 집창촌 여성을 소재로 했다. 촬영은 세트가 아닌 실제 집창촌, 서울 영등포에서 진행했다. 임권택 감독, 김기덕 감독 등 수많은 감독이 도전했지만 못한 일을 해낸 사람은 윤모 감독이다.

Q: 이번 대전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으셨는데요. 혹시 예상하셨나요? 상 받은 소감이 어떤가요?

A: 다른 단편들하고 달라서 전혀 예상을 못 했어요. 요즘 단편들을 보면 장르성이 있잖아요. 확실하게 하려는 경향도 있고요. 독립영화제는 그런 부분서 자유롭지만 기대는 안 했어요. 상을 주셔서 고마워요. 고향에서 받은 거라 기뻐요.

Q. ‘윤모’라는 가명에 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윤모’가 의미하는 뜻이 있나요?

특별한 의미는 없는데요. 영화를 찍게 되면 관객과 소통을 하는데 그 속에서 영화 하기 전의 제 모습이 겁이 났어요. 점점 공인이 돼가는 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래서 영화할 때는 ‘윤모’이고 싶어요. 이름은 지을 때 아무 생각이 안 나서 ‘윤모’라고 했어요. ‘아무개 모’예요.

Q. 특별히 집창촌에 관심을 둔 배경이 있나요?

A. 성매매 여성들이 집회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 이미지가 굉장히 강했어요. 강한 이미지에 천착이 돼서 시나리오를 쓰게 됐어요. 그러다 2000년대 초반에 군산 개복동이라는 곳에서 불이 나서 성매매 여성 14명이 숨을 거둔 사건이 생각났어요. 그때 기억나는 게 제 옆에서 뉴스 보던 남자들이 킥킥거리면서 ‘소독됐다.’고 장난치는 거였어요. 사건을 마치 불이 나서 해충들이 사라지는 쥐불놀이처럼 생각하더라고요. 그걸 보는데 기분이 되게 묘했어요. 그분들을 사회적 해충으로 얘기하며 소독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게, 그러면서 자기들은 또 소비자로 가거든요. 그런 걸 보면서 ‘인식의 문제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성매매 여성에 관한 우리의 인식이 과연 올바른가?’에 물음을 던지고 싶었어요.

Q. 실제 집창촌에서 촬영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섭외하셨나요?

A. 다들 그걸 궁금해하시는데요. 촬영현장에 김기덕 감독님 PD분도 다녀가셨어요. ‘우리도 못한 걸 어떻게 했느냐.’면서. 근데 별건 없었어요. 운이 좋았던 거 같아요. 처음에 포주분들 만나뵀을 때는 무시하거나 겁주는 분위기였어요. 그래도 계속 만났어요. 그러면서 이빨이 맞았던 거 같아요. 제가 ‘집회 동영상에서 감동해서 그걸 재현하는 영화를 찍겠다.’라고 한 게 그분들과 교차점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렇게 얘기가 잘 돼서 3일간의 촬영 허가를 받았죠.

Q. 허가를 받았더라도 촬영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요.

A. 수월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3일간 별일이 다 있었어요. 주취자들과 손님들이 방해하고, 시비도 잦았어요. 하루 촬영하는 걸 보시더니 포주분과 거기서 일하는 여성분들이 입장이 조금 바뀌어서 분위기도 좀 살벌해졌어요.

Q. 영화 노출 수위가 높아서 배우 섭외도 만만치 않았을 거 같은데, 배우 섭외는 어떻게 했나요?

A. 노출 장면은 무조건 필요한 장면이었어요. 노출은 그 거리의 일상이었어요. 그들이 벗는다는 행위는 우리가 생각하는 행위와 같은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장면은 우리와 전혀 다른 그들의 일상, 벗는다는 행위가 유리를 통과해서 우리에게 왔을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는가?’에 관한 것이었어요. 배우를 구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가게를 통으로 막고 찍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배우 부담이 컸어요. 전에 누드 크로키 강사를 하며 아는 누드 모델분에게 부탁했더니 부담스러워 하더라고요. 그러다 촬영 전전날 삼 단계를 거쳐 알게 된 퍼포먼스 작가분이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거 같다.’라며 흔쾌히 출연해주셨어요. 덕분에 수월하게 촬영했어요.

Q. ‘실제 영업하는 집창촌’이라는 장소가 주는 느낌이 남달랐을 거 같은데요. 촬영하면서 그 안에서 받은 느낌이랄까? 그런 게 있나요?

A. 거기 처음 들어갈 때는 저뿐만이 아니라 스텝들도 위축돼 있었어요. 근데 촬영을 끝나면서 스텝들이 ‘생각했던 거와는 너무 다르다. 우리랑 다를 게 없잖나.’라고 얘기했어요. ‘자기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너무 멀게만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면서. 영화로 말하고 싶었던 걸 직접 느꼈던 거 같아요. 우리가 어떤 가치에 도달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분들은 집회하면서 소리를 내고 있어요. 근데 아무도 들으려고 안 해요. 그 사람들의 직업 때문이죠. 근데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가치가 없는 게 어디 있으며, 특히나 그들이 비합리적이라고 말하는 데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건 건강하지 못한 사회라고 봐요. 어떤 사람이 하는 얘기라도 들어주려고 해야 하는데 소통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거죠. 성숙하지 못한 사회, 인식의 문제예요.

Q. 작품을 보면 딸꾹질이 중요하게 등장하는데요. 금순과 소녀를 연결하는 것도 그렇고, 마지막 장면도 그렇고. 딸꾹질을 사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영화로 말하고 싶은 걸 단편답게 풀고 싶었어요. 하나의 은유로 풀고 싶었죠. 영화에서 금순은 성병에 걸렸어요. 근데 거기 오는 남자들은 성병에 안 걸리려고 마이신을 먹죠. 어떻게 보면 전염시키고, 전염되는 순환구조예요. 근데 그들을 병균 인자로 보고 가치를 말살하죠. 그 사람들도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큰 치유가 아닌 어떤 보편적이고 사소한 치유, 행위로 치유한다.’라고 했을 때 떠오른 게 딸꾹질이었어요. 딸꾹질 자체가 지닌 여러 가지 함축적인 의미도 있고, 엎드려 물을 마신다는 행위도 있고요. 딸꾹질을 멈추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사소한 치유 행위가 이들의 사소한 가치를 말할 수 있다고 봤어요.

Q.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으신가요?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자 스케치하면서 건진 장면은 개를 쓰다듬는 장면이에요. 이 영화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담긴 장면이에요. 그 개는 섭외한 개가 아니라 거기에 사는 개예요. 개똥이라고. 그 거리에서 가장 자유롭고 윤리적인 존재였어요. 쇼윈도우 안을 자유롭게 왔다갔다하는 개로, 모든 여성이 키웠어요. 근데 한 여성이 개를 쓰다듬는 걸 봤어요. 그 거리와는 생경한 풍경이었죠. 제 일상에서는 20대 여성이 개를 좋아하는 게 보편적인 모습이잖아요. 근데 그 여성도 그러고 있었어요. 영화에서 제일 생각나는 장면이자 제가 말하는 게 함축된 장면이에요.

Q. 원래 회화를 전공했는데, 영화로 전환한 이유가 뭔가요?

A. 저는 회화할 때도 그림에 내러티브가 강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근데 그런 것 때문에 영화를 한 거 아니었고요. 제 삶 자체가 이야기가 많았던 거 같아요.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다루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거 같아요. 처음에는 영화를 일 년만 해볼 생각이었어요. 힘들면 그만둘 생각이었죠. 그러다 찍었던 단편영화가 상을 받아서 지금처럼 인터뷰했는데 똑같은 질문을 받았어요. 그때 보니 어느새 사 년이 지나있었어요. 사 년 동안 힘든 일이 많았는데 계속해온 거죠. 그때 ‘이게 내 근성하고 맞다’는 걸 알았어요. 아직도 하는 게 즐거운 걸 보면 운명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Q. 영화 하는 게 그렇게 힘든데도 하려는 사람이 많은데요. 그런 영화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A. 소통 아닐까요. 영화는 스크린에 펼쳐지는 순간 생명체처럼 진화하고 번식하면서 관객들과 소통해요. 제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도 하고요. 그런 일렬의 소통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내가 생각한 이야기를 관객이 읽었을 때도 그렇고요. 어렵게 만든 영화가 관객과 소통하는 그 한순간이 빠져나올 수 없는 마약 같아요.

Q.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으신지요?

A. 계획하고 있는 장편이 세 개 있는데요. 모두 다 사회적 통찰을 담은 영화예요. 인간적 불균형 관계 같은 걸 유머로 감춘 블랙코미디죠. 어떻게 보면 문제의식이 강한 영화지만 그런 걸 부드러운 흙, 교묘한 함정으로 덮어 논거죠. 관객들은 재미나게 달려오다가 갑자기 빠져버리는 거죠. 계획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Q. 마지막 질문인데요. 혹시 대전 영화계에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

대전이 환경은 있는데 활성화가 안 되는 거 같아요. 대전에 세트장이 있는데 다 놀고 있어요. 조명 장비 빌리려고 갔더니 담당자가 없대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무직원이 앉아서 귀찮으니깐 장비 대여됐다고 빌려주지도 않는다는 얘기도 있어요. 대전시가 와인 축제 같은 엄한데 돈 쓰지 말고 문화예술 쪽을 잘 활성화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지역이미지와 직결되는 거거든요. 특히 문제는 대전에 영상위원회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깐 지원 프로그램도 없고 장비도 없어요. 대전 주변만 봐도 로케이션이 많거든요. 영상위원회를 만들어서 꾸려나갔으면 해요. 잘했으면 좋겠어요.

“그분들께 ‘왜 그런 신발을 신느냐?’라고 물어봤더니 비례라고 하더라고요. 신발을 신으면 비례감이 인형처럼 나와요. 쇼윈도에 진열한 인형처럼 완전히 상품화한 거죠.”

“마지막 장면에서 금순이 카메라를 응시해요. 영화를 관음적인 시선으로 지켜보는 관객을 금순이 직시하죠. 그러면서 금순이 물어보는 거예요. ‘소녀의 딸꾹질은 내가 멈추게 해줬는데 내 딸꾹질은 누가 멈추게 해 줄 거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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