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다리’로 나와, 똥다리에서 만나
‘똥다리’로 나와, 똥다리에서 만나
  • 글·사진 이수연
  • 승인 2012.12.21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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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중구 문화동에는 일명 똥다리라는 굴다리가 하나 있다.

‘똥다리’로 나와, 똥다리에서 만나

대전광역시 중구 문화동에는 일명 똥다리라는 굴다리가 하나 있다. 10여 년 전 그 동네에 살았던 나는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와 그곳에서 자주 접선했다. 친구네와 우리 집 중간지점이 그 ‘똥다리’였다. 다리 위로는 기차가 지나가고, 그 밑으로는 사람이 다녔다. 그때만 해도 높이가 너무 낮아서 키가 작았던 우리도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녀야 했다. 천이 흐르고, 비가 오면 물이 넘쳤다. 그럴 때는 한참을 돌아서 다른 육교로 건너갔다. 어느 순간이 되면 지독하게 피어오르는 냄새도 똥다리의 명성을 잇게 했다.

그곳에서 자주 만났던 친구는 10년 전부터 ‘그 이름은 내가 붙여준 것’이라고 우겼다. “왜?”라고 물었더니 “냄새나잖아”라고 말했다. 그러나 친구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 근처 중학교를 나왔다는 강창우(27) 씨는 “저희 누나가 학교 다닐 때부터 똥다리라고 불렀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똥다리라고 하면 다 알았고, 친구들도 누나도 그렇게 불렀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똥다리 바로 옆에서 뻥튀기 장사를 이십 년 넘게 했다는 아저씨는 “이십 년도 더 됐지. 내가 장사할 때부터 있었으니까. 아가씨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있었을 거여. 다리가 너무 낮아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다가 고개 들면, 쿵쿵 박아서 2, 3년 쯤 전에 땅을 더 파서 이제는 곧이 서서도 잘 다니지. 그때 같이 냄새나는 물을 막아서 지금은 물이 넘치지 않아.”라며 동사무소에 가보라고 조언했다.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

문화2동사무소, 중구청, 철도청에서는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다.”라는 답변이 들려왔다. 문화2동사무소에서는 중구청 건설과를 연결했고, 건설과에서는 “일반적인 인도라면 모르겠지만, 굴다리 밑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에 관한 것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라며 “시민이 그 길 때문에 불편을 겪는다고 호소한다면 당연히 중구청에서 해결방안을 모색한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철도관리공단에서는 한국철도관리공사 충청본부 시설운영처 시설관리팀을 연결했다. 시설관리팀에서는 “철로로 사람이 다니다 안전사고가 자주 나서 한참 입체화 공사를 했다. 다리 밑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뚫는 것을 입체화 공사라고 하는데, 지자체와 협약해서 공사를 진행한다. 정확히 어떤 쪽에서 공사했는지,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모르겠다.”라며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철길이 있는 굴다리 윗부분은 철도청에서 관리하고, 도로 자체는 관에서 관리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여기가 왜, 언제부터, 누가 먼저 똥다리라고 불렀나요

계속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근처에서 만난 주민에게 몇 가지 단서를 얻었다. 아이들 데리고 혼자 살던 송정순(76) 씨가 묵 장사를 할 때에 그 철길에는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이 없었다. 송 씨는 머리에 묵을 가득담은 대야를 이고, 철길로 다니던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지금은 굴다리 근처에 살지만, 그때에는 천근오거리 쪽에 살았다. 천근오거리에서 철길 쪽으로 내려와 묵장사를 했는데, 철길을 건너다니며 무서운 일도 많았다. “사람이 많이 죽었지. 철로에서 간 사람들이 참 많았어.”

그때 송 씨 나이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었으니 1980년대다. 송 씨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30년 전 즈음에는 굴다리가 없었던 것이다. 굴다리가 생기고 나서는 사고가 없어졌다. 송 씨는 ‘똥다리’라는 이름은 몰랐다. 굴다리라고 부른다. 처음 뚫고, 몇 년 동안 그곳에 있는 또랑 때문에 장마지면 냄새가 심했다. 사람들이 그곳에 쓰레기를 많이 가져다 버리기도 했다. 지금이야 그렇게 하면 큰일인 줄 알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그 또랑이 ‘쓰레기장’ 구실을 했다.

올해 70이 넘었다는 이 씨는 이 인근에서 10년 정도 살았다. 굴다리에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굴을 판 것이 20년은 확실히 넘었지만, 30년이 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지금 도로였던 곳은 옛날에는 다 개천이었다. 따로 이름이 있진 않았고, 그냥 개천이라고 불렀다.

이 씨와 함께 있던 주민은 20년 정도 이곳에서 살았다. 굴다리 건너편 주공아파트가 군부대였다. 군부대를 없애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폐수가 또랑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면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그 냄새 때문에 똥다리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도 다시 똥다리에서 만나

주공아파트가 완전히 지어져서 입주를 시작한 것은 2004년 10월 16일이다. 굴다리가 생긴 것은 확실히 20년은 넘었다. 30년이 넘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주공아파트가 생기고, 지어진 지 18년째이니 ‘똥다리’라는 별칭은 20년 정도 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포털사이트에 ‘똥다리’라고 검색했다. ‘반송 똥다리 폭파 거지 발동동 사건’, ‘집 앞 똥다리에서 삼겹살 굽다 개망’, ‘장전동 똥다리’, ‘봉계 똥다리 밑’, ‘봉일천 똥다리 지나는 중’ 등 곳곳의 똥다리 이야기가 나온다. 천이 흐르고, 다리가 있는데, 냄새가 나는 곳을 일컬어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인근에 사는 사람이나 상인 대부분이 그곳을 ‘똥다리’라고 부른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이(16) 군은 “여기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아직도 똥다리에서는 어린 시절 친구들을 만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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