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만들어 여럿이 모이다
한 사람이 만들어 여럿이 모이다
  • 글 사진 성수진
  • 승인 2013.01.25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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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리 갤러리 4층 ‘소극장’ 생기다

대흥동에 자리한 지 5년인 쌍리 갤러리. 카페를 겸한 이곳에 사람들이 오고 간다. 고불고불 부스스한 머리에 멋스러운 뿔테 안경을 쓴 라경원 대표(대표, 사장, 관장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와 인사하고 짧은 대화에 즐겁다. “저는 대인관계가 안 좋은 사람이에요. 사람들이 저 때문에 오는 게 아니라, 오다가다 이 공간을 보고, 이 공간이 맘에 들어서 오는 거예요”

대흥동 평생학습관 정문 건너편 골목에 자리한 쌍리 갤러리. 주변 음식점과 술집 사이에서 고즈넉하면서도 현대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1층은 카페, 2층과 3층은 갤러리이던 이곳 4층에 소극장이 생겼다.

혼자도 재미있는 게 많은 사람

라경원 대표는 자신을 ‘한량’이라고 소개했다. 차 마시는 걸 좋아해 1층에 카페를, 사진 찍는 걸 좋아해 2, 3층에 갤러리를, 음악 듣는 걸 좋아해 4층에 소극장을 만들었다. “제가 좋아하는 걸 공간에 펼쳐놓은 거예요. 저는 혼자서도 재미있는 게 많은 사람인데요. 취미로 혼자서 하면 끝이잖아요. 소통하면 다른 의미가 생기는 거죠”

4층에 소극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만들기까지 1년 6개월이 걸렸다. 스크린도 직접 달고, 페인트도 직접 칠했다. 음향도 직접 설치했다. 의자는 아는 선배에게 부탁해 만들었고, 벽돌 쌓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전문가 손을 빌렸다. 대전에 비슷한 공간이 없어 도움받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차는 혼자 마실 수 있고, 미술 작품도 혼자 감상할 수 있다. 혼자가 어색하지 않은 1, 2, 3층과 달리, 4층은 태생 상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함께해야 한다. 60명 정원의 4층 소극장에서는 연극, 공연, 세미나 등을 할 수 있다. 어느 것 하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다. “미술 하는 사람 만나 봤나요? 어떻던가요? 대부분 혼자 작업하고, 자신의 시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잖아요. 또, 그렇게 해야 미술 할 수 있는 거고요. 그런데 4층은 아니거든요. 혼자 피아노 연주를 하더라도, 악보 넘겨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또 관객도 앞에 있을 테고….”


하나둘 그런 사람 모여 #46

함께하는 게 좋은 이유는 무얼까. 라경원 대표는 자신이 외로움을 줄이려고 쌍리 갤러리와 4층 소극장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외로움은 고질병이라고 덧붙인다. 그저 모이는 게 의미 있는 이유는, 지금 살아 있다는 걸 느끼는 데 있다.

4층 소극장을 만든 지 얼마 안 돼 대전여상 학생들이 음악, 몸짓, 연극이 함께하는 종합극 형태 공연을 올렸다. 라경원 대표는 학생들 공연에 직접 음향을 손봤다. 공연의 완성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한 게 눈에 보여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4층 소극장은 그런 이들에게 열린 곳이다. 연극 전용 극장도 아니고, 음악 전용 공연장도 아닌 이곳은,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좋아서 하는 일을 펼쳐 보이고 싶은 이들의 공간이다. “자기들이 알아서 모이는 거죠. 그 소통을 지켜보는 게 흐뭇하고요. 제가 좋아했던 걸 펼친 곳에 같이 와서 놀아주니 고맙죠”

쌍리(雙鯉). 물고기 두 마리라는 뜻을 지닌 이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라경원 대표는 물고기 한 마리를 하나의 일로 보았다. 자신이 할 일이 두 개, 즉 카페, 갤러리를 겸한 곳이란 의미였는데, 4층에 소극장을 만들며 이미 ‘쌍리’를 넘어서 버렸다. “언젠가 중구청에서 건물에 46이라는 표시를 붙였더라고요. 이곳이 46번지라는 의미로요. 그래서 이 건물을 #46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어요.”

#46 안에 카페도, 갤러리도 있는 것이다. 둘의 이름은 그대로 쌍리인데, 4층 소극장의 이름은 없다. ‘쌍리 4층’이 아닌, 이 ‘공간’에 딱 맞는 이름은 아마도 이곳에 모이는 ‘사람’에게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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