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 윷판형 바위그림, “나는 원래 여기에 있었다”
대동 윷판형 바위그림, “나는 원래 여기에 있었다”
  • 글 사진 성수진
  • 승인 2013.02.0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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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화유산울림 대전문화유산 조사단 활동에 동행하다

“아무 생각 안 나더라고요. 시간이 멈춘 것처럼….” 8월 어느 날, (사)대전문화유산울림의 안여종 대표는 아들과 함께 대동 하늘공원 주변을 산책했다. 별생각 없이 들여다본 바위에 구멍이 윷판 모양으로 있는 걸 보고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오래전, TV 프로그램 ‘역사 스페셜’에서 봤던 윷판형 바위그림의 모습과 같았기 때문이다.

12월 1일, 안여종 대표가 처음 발견한 대동 윷판형 바위그림을 공개했다. 대전의 바위구멍을 답사하고, 한국선사미술연구소 이하우 소장을 초빙해 대동 윷판형 바위그림에 관해 이야기 들었던 이날 일정은, (사)대전문화유산울림에서 꾸린 대전문화유산 조사단의 첫 번째 조사 활동이기도 했다.

옛사람 지혜, 바위에 구멍으로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 시대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원하며 바위에 구멍을 팠다. 바위에 파인 구멍은 흔히 ‘성혈(姓穴)’이라고 불렀다. 구멍의 모습을 여성의 상징, 다산을 기원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구멍에 쑥을 찧는 등 다른 용도를 발견하며 이제는 성혈보다는 ‘바위구멍’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윷판형 바위그림은, 하나의 바위구멍을 중심으로 4개 방향에 각각 7개씩 바위구멍이 배치된, 윷놀이 판과 비슷한 바위구멍 그림을 일컫는다.

“예. 윷판형 바위그림이네요.” 대동 윷판형 바위그림을 둘러싸고 대전문화유산 조사단과 이하우 소장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하우 소장의 연구에 따르면, 윷판형 바위그림은 북극성을 중심축으로 돌아가는 북두칠성의 형상을 윷판으로 정형화한 것이다. 윷판형 바위그림 형성의 상한년대는 청동기시대 말, 하한년대는 조선시대 말이다. 주로 우리나라 한강 이남에 분포하며, 고대 작은 국가체가 있었던 지역에서 왕성하게 발견된다.

“웇판형 바위그림은 농점을 치기 위한 것으로 봅니다. 윷판형 바위그림 제작자들은 북두칠성의 위치와 계절이 바뀌는 것이 규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짚어내고, 미리 알기 위한 도구로 윷판형 바위그림을 이용했을 거라고 봅니다.” 이하우 소장이 윷판형 바위그림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간혹 윷판형 바위그림 중간에 구멍이 하나 더 있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이하우 소장은, 당시의 한 달 개념이 29일에서 31일을 왔다 갔다 했을 것이며, 윷판형 바위그림이 달력 역할까지 했을 것으로 본다.

유난히 추웠던 날, 대동 윷판형 바위그림을 둘러싼 대전문화유산 조사단 앞에서 이하우 소장의 강의는 오랜 시간 끝날 줄을 몰랐다.

윷판형 바위그림 앞에 모인 사람들
대전문화유산 조사단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다른 사연으로 대전의 문화유산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하지만 대전의 알려지지 않은 문화유산을 조사해 보자는 일념으로 뭉쳤다. 고정 단원 5~10명을 두고, 1년 동안 과제를 세워 영상과 글로 대전의 문화유산을 기록하려 한다.

안여종 대표가 발견한 윷판형 바위그림도 본을 떠 도면으로 나타내고,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시에 문화재 지정을 요구할 계획이다. 시민에게 관심을 촉구하는 것도 이들 몫이다.
잘 몰랐기 때문에 하나 둘 잃은 대전의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대전문화유산 조사단은 알고 있다. 이날 답사지 중 하나였던, 당산의 바위구멍이 있는 바위 몇 개도 근처 채석장의 발파 작업으로 잃었고, 바위구멍을 지닌 비래동 고인돌 1호는, 새마을 운동 당시 주민이 쪼개어 새마을 상징 마크를 그려 마을에 세워 놓기도 했다. 가오동 고인돌은 근처 공사장에서 발견 후, 아무 생각 없이 원래 발견한 방향과 상관없이 옮겨 내려놓아, 위에 뚫린 바위구멍의 의미를 찾아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 바위구멍의 가치를 인식했더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많은 과제를 맡은 대전문화유산 조사단이 가야 할 길이 멀다. 하지만 같은 신념으로 모인 서로가 힘이 된다. 대전문화유산 조사단의 활동에 일반 시민의 참여는 제한된다. 하지만 일반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개 답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장에서 만난 이하우 소장

한국선사미술연구소 이하우 소장은 원래 화가였다. 1989년에 우연히 암각화를 발견하고부터 암각화에 관심이 생겨 공부를 시작했다. 추상 미술을 하는 현대의 미술인으로서, 고대인의 그림을 공부하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었다. 암각화로 학위를 받고, 한국 암각화 연구자가 되었다. 암각화로 학위를 받은 사람은 우리나라에 세 명밖에 없다. 그래서 조사, 연구는 외로운 작업이 되기도 한다.

“포항에 오줌바위라고 하는 바위가 있어요. 그 작은 바위에 바위구멍, 윷판형 바위그림이 있었어요. 윷판형 바위그림을 보고, 처음엔 나무꾼이 윷도 놀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봐도 그렇지 않았거든요. 편평한 데가 아니라 경사진 곳에서도 나타나니까, 뭔가 다른 게 있지 않을까….”

윷판형 바위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때, 이하우 소장을 포함한 연구자 세 명이 오줌바위 인근에서 먹고 자며 공동으로 연구했다. 별자리와의 연관성을 조사하던 도중,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w’자 모양을 한, 카시오페아로 보이는 바위구멍 앞, 북극성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북극성으로 보이는 바위구멍이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 바위 위에 덮인 흙더미를 파 보니, 북두칠성이 있어야 할 자리에 윷판형 바위그림이 나왔다. 조사 끝에, 윷판형 바위그림은 북두칠성의 운행을 나타냈을 거란 결론을 냈고, 2005년 안동대학교 학술대회에서 처음 체계화해 발표했다.

윷판형 바위그림과 관련해 최근, 불쾌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민족사관 하시는 분들이 윷판형 바위그림을 치우(蚩尤)가 만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어요. 이건 소설 같은 이야기거든요. 중국에서는 윷판형 바위그림이 단 한 점도 나온 게 없고요”

암각화 연구를 하며 자신의 그림은 하나도 그리지 못하고 있다는 이하우 소장. 좋은 그림을 그려 그림으로 또 뵙자는 이야기와 함께 덧붙이는 말이, 그의 관심사를 대변했다. “지금 우리나라에 바위구멍 연구자가 없어요.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제가 도와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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