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용 칼럼〕 신뢰는 상대방에게 평안을 준다
〔문민용 칼럼〕 신뢰는 상대방에게 평안을 준다
  • 최형순 기자
  • 승인 2025.01.24 2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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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신뢰를 뜻하는 영어 단어 trust의 어원은 ‘편안함’을 의미하는 독일어의 trost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믿을 때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문민용 기쁜소식 음성교회 목사
문민용 목사

혹시 그 사람이 배신을 저지르진 않을까 하고 염려할 필요가 없으므로 마음이 편안해질 뿐만 아니라 배신을 위한 예방에 들여야 할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게 해주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기원전 3세기 제1차 포에니 전쟁 시절, 로마의 장군 레굴루스는 전쟁 중 카르타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카르타고는 일시적으로 승리했지만, 로마의 저력이 두려웠습니다. 카르타고는 레굴루스에게 로마로 보내주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단 로마와의 화친을 성사하게 시켜 달라는 조건이었습니다. ‘만일 로마와의 화친이 이뤄지지 않을 때는 반드시 카르타고에 돌아와야 한다’라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레굴루스는 약속을 수락하고, 로마로 귀환했습니다. 그러나 화친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레굴루스는 오히려 로마의 원로원 앞에서 전쟁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만류를 뿌리치고 레굴루스는 카르타고로 돌아갔습니다.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그도 물론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내게 불명예를 안겨줄 것인가요. 나도 카르타고에 가면 고문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끄러운 행동이 가져다줄 수치와 죄의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난 그들에게 돌아가기로 맹세했습니다.

돌아가는 것은 나의 의무입니다.” 요즘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레굴루스는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가? 자신이 중요하다고 하는 가치를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의문은 남는다. 믿음을 위해서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 레굴루스는 카르타고로 돌아갔습니다. 모진 고문 끝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격파한 것으로 제1차 포에니 전쟁은 끝났습니다. 후세인들은 포에니 전쟁 중에 보인 레굴루스의 행동에 대해 수천 년 동안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역사는 두고두고 얘기하며 죽음 앞에서도 자신이 말한 것에 책임을 지는 레굴루스를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19세기 영국 팔머스틴 수상이 우유 통을 쏟아 울고 있는 소녀를 돕고 약속을 지킨 일화가 전해집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 때 ‘팔머스틴 수상’이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맞은편에서 한 소녀가 우유 통을 들고 다리를 건너오다가 넘어져 우유를 길바닥에 모두 쏟고 말았습니다. 가난한 소녀는 깨진 우유 통을 바라보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팔머스틴 수상은 소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했습니다. “소녀야, 지금 내게 가진 돈이 없구나, 내일 이 시간에 이곳으로 나오렴, 우유와 우유 통 값을 주겠다” 이튿날 수상은 장관들을 모아놓고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소녀와 한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회의를 중단하고 급히 웨스트민스터 다리로 달려가 소녀에게 우윳값을 냈습니다. 그리고 계속 각료회의를 주재했다고 합니다. 한 여행자가 관광 중에 몸의 균형을 잃고 사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수영을 전혀 할 줄 몰랐던 그는 물속에 빠져 죽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팔을 흔들어댔습니다. 그러나 곧 지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그는 ‘이제 난 죽었구나’하며 자포자기했습니다.

그러자 물이 그를 세게 받쳐주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른 물과 달리 염분과 다른 광물들이 많이 섞여 있는 사해였기에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라도 물에 가만히 몸을 맡기고 누워 있기만 하면 둥둥 뜨게 된 것입니다. 물의 부력에 자기 몸을 편안히 맡기면 도리어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세계 1차 대전 영웅 페느디앙 포슈 프랑스 사령관이 내건 다음과 같은 모토는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은 없다. 스스로 절망을 키우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누구나 자기 내면에 위대함의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다만 그 씨앗이 아직 싹을 피우지 못했을 뿐이며, 누군가 믿음을 통해 계속해서 용기를 준다면 언젠가 꽃을 피우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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