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동네에 문화로 불러 모은 작은 목소리
고요한 동네에 문화로 불러 모은 작은 목소리
  • 글 이수연 사진 이봄
  • 승인 2013.03.22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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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하우스 에이미 오명수 대표

듬성듬성 빈 공터와 높게 솟은 건물, 건물마다 앞에 자리한 자동차 말고는 큰소리 하나 나지 않는 동네. 커다랗게 지어놓은 건물에는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고, 높게 솟은 아파트 주변엔 수다쟁이 하나 없이 조용하다. 이 고요한 동네에 2012년부터 조근조근 속삭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 커피하우스 에이미 오명수 대표

목소리를 수집하는 사람
작은 목소리를 한 곳으로 모으기 시작한 사람은 커피하우스 에이미 오명수 대표다. 오랜 시간 충무로 영화판에서 경력을 쌓다가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온 것은 2011년 9월, 5개월가량 좋은 자리를 찾아 대전 이곳저곳을 다녔다. 발품을 참 많이도 팔았지만, 이미 문화가 만들어진 곳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고 싶었기에 고민이 깊었다. 고심 끝에 지족동으로 결정했고, 커피하우스 에이미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럽의 커피하우스를 상상했어요. 커피하우스라고 이름 붙이니 팝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뒤에 ‘에이미’라는 이름을 덧붙였죠”

유럽의 커피하우스는 1650년에서 1700년 무렵까지 유럽 전역에 유행처럼 퍼진 사교의 장이었다. 음료를 마시며 장시간 동안 다양한 주제의 토론을 경청할 수 있고, 온갖 정보를 얻을 수 있어 한때 ‘페니 대학(Penny University)’이라 불리기도 했다. 다양한 계층 사람이 모여 언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정치?경제면에서도 중요하게 기능했다. 오 대표는 커피하우스 에이미가 유럽의 커피하우스처럼 사람이 모여 자유롭게 토론하고, 이야기하는 거점이었으면 한다.

“이 동네는 거의 아파트거든요. 아파트에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서로 알고 지낼 수 없잖아요. 이곳에서 동네 사람들 모여 사는 이야기도 하고, 관심분야에 대해 좀 더 깊고 솔직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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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큰 소리를 내던 사람
목소리를 수집하는 도구로 오 대표는 ‘문화’를 선택했다. 매주 수요일 영화상영, 매주 화요일 독서토론, 자신이 쓴 시를 커피하우스 에이미 벽에 붙이면 매달 심사해 낭송회를 하는 시낭송회, 스마트폰 동영상 제작 수업 등 다양하게 시도한다.

처음부터 지금껏 꾸준히 주민과 만나 온 것은 단연 영화다. 죽 영화판에서 일했고, 영화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는 오 대표다. 대학을 다니다 충무로에서 20여 년간 생활했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영화를 만들기 직전까지 갔다. 배우까지 섭외하고, 작품에 투자할 투자자를 찾는 과정에서 어긋나,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충무로를 떠나온 오 대표는 담담하게 그때 사정을 이야기했다.

“스토리가 있는 장르는 뭐든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모습과 인간 본질에 관한 탐구죠. 본질적으로 사람은 악하지 않다고 믿거든요. 상황과 사회 안에서 본질이 변한 것으로 생각했어요. 내가 믿는 사람의 모습을 내가 만드는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죠. 그런데 상업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투자받지 못했어요. 지금 충무로에 회의를 느끼고 영화판 떠나는 사람이 참 많아요. 예전에야 촬영장에서 감독이 왕이었지만, 지금은 거대자본이 영화판을 잠식했죠. 거대자본 다음에 유명배우. 그렇게 계급이 이루어지니까 감독이 마음껏 자기 상상력을 발휘해 영화를 만들 수 없어요. 유명 감독, 거장들 말고는 설 수 있는 자리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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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모으는 목소리
20여 년 몸담았던 곳을 떠났으니 허전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텐데도 오 대표는 담담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해야죠. 이 공간 하나도 운영하기 벅찬 걸요”
최소한의 현상유지가 최대한의 바람이라는 오 대표. 사실은 최소한의 현상유지도 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처음 영화 상영엔 사람이 없을 때도 잦았지만, 1년 정도를 지속해서 하다 보니 꾸준히 오는 고정 멤버도 생겼다. 공간에 대한 애정으로 이것저것 말해주는 사람도 생겼다.

“취향이나 기호가 다양해서 오가는 많은 사람이 의견을 말하고, 충고도 하고 그래요. 그래서 고민도 많았죠. 그런데 결론은 그렇게 모든 사람의 의견을 다 좇고 따라가면 이곳 자체의 색도 사라진다는 것이었어요. 예쁘고 화려한 것보다 이곳만의 느낌을 유지하고 싶어요”

처음 꿈꾸던 활발한 토론의 장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점점 작은 목소리가 모이고 있는 것이 기쁘다.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고 들어온 사람들이 이런 활동을 하느냐며 반가워할 때 오 대표는 기분이 좋다.

“스마트폰 동영상 제작 수업했을 때, 가장 행복했어요. 제일 어린 친구가 21살이었고, 제일 나이 많으신 분이 60대셨거든요. 서로 소통할 거리가 없는 그들이 그 수업을 통해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꿈꾸던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좋은 음악을 들으면 나이가 많든 적든 좋다고 생각하잖아요. 제가 ‘문화’로 이 공간을 꾸민 것도 그런 이유죠. 문화는 가장 좋은 소통, 교류의 도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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