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르타주 새벽 인력시장
르포르타주 새벽 인력시장
  • 글 사진 이수연
  • 승인 2013.03.2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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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시 아침이 왔다

새벽 다섯 시 인력소개소에 불이 켜진다. 아직 사장 내외와 일감을 받으러 온 세 사람 정도가 사무실에 있다. 사무실엔 양쪽 벽을 따라 의자가 죽 놓였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기준으로 오른편엔 커다란 벽걸이 거울이 붙어 있다. 이전에 자동차 전시장으로 쓰였던 곳이라 붙어 있던 거울을 떼지 않았다. 거울 맞은 편 벽엔 텔레비전이 걸렸다. 뉴스채널에서는 ‘오늘’ 취임을 앞둔 박근혜 대통령 이야기가 쉴 새 없이 나온다. 거울 끝 안쪽엔 사무실을 운영하는 부부가 앉아 업무를 보는 책상이 있다. 그 왼편 구석엔 커피를 뽑을 수 있는 자판기가 있다. 많은 사람이 사무실에 들어와 제일 처음 하는 일이 커피를 뽑는 일이다. 부부는 오자마자 문 앞에 커다란 ‘대야’를 가져다 놓는다. 사람들은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다시 바깥으로 나가 담배를 피운다. 담배꽁초와 일회용 컵이 그대야 속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만의 어떤 법칙이다.

▲ 새벽 인력시장

다섯 시 십오 분 정도가 되자 많은 사람이 왔다. 사람들은 오자마자 부부에게 인사한다. 부부는 얼굴 본 사람 명단을 적고, 오늘 들어온 일을 나누어 주는 역할을 한다. 부부는 이 자리에서 인력소개소를 운영한 지 18년째다. 처음 시작은 같은 건물 이 층에서 했다.

중간에 자동차판매를 하던 일 층이 비었다기에 일층 으로 내려왔다. 18년을 꼬박 하루도 문 닫은 적이 없다. 이곳은 주말에도 쉬지 않는다. 새벽 다섯 시 십오 분 정도가 되자 사무실 안에 있는 의자는 대부분이 찼다. 사람들은 계속 커다란 가방 한 짐을 들고 사무실에 들어온다. 빈손으로 온 사람은 사무실 안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간다. 그 문 안에는 창고가 있다. 그곳에서 짐 꾸러미를 들고 나온다. 목욕탕 라커룸처럼 가방을 맡겨 놓는 곳이다. 가방엔 작업복과 연장이 들어있다. 사람이 많이 왔어도 사무실 안은 조용하다.

 18대 대통령 취임식이 이루어질 ‘오늘’에 관해 이야기하는 텔레비전 속 앵커 목소리만 공간을 채운다. 그 틈에 신문 넘기는 소리가 간혹 끼어든다. 젊은 축에 속하는 이들은 스마트폰에 열중한다. 다섯 시 반쯤, 가지고 온 짐을 꾸려 일터로 가는 사람이 하나둘씩 생긴다.

 책상에 앉은 안주인은 종이에 인력소개소 이름과 명단을 적어 일터로 가는 사람 손에 들려 보낸다. 그 확인서를 받은 사람만이 오늘 일을 할 수 있다. 일이 많지 않은 겨울에는 이렇게 나왔다가 허탕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숱하다. 그것은 겨울 건설현장의 어떤 법칙이다.

대통령 취임식 다음 날에는 전날보다 많은 사람이 인력소개소를 찾았다. 북적이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사무실은 좁게 느껴졌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 몸으로 느껴지는 추위가 가니 사람이 더 모였다. “오늘부터 일이 조금씩 더 들어오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장의 이야기에 사람들 눈에 기대가 차올랐다.

 IMF 직후, 사무실엔 수많은 사람이 왔다. “여기가 사무실은 좁아도 사람이 많을 적에는 문밖으로, 저 멀리까지 사람들이 줄 서 있을 정도였어요.”라고 한 노동자는 말했다. 인력소개소를 처음 운영할 때만 하더라도 거친 사람, 오늘 벌어 오늘 쓰는 사람, 아르바이트하려고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특히 “IMF 직후부터 소위 말하는 ‘화이트칼라’ 직업군에서 ‘이쪽 세계’로 많이 왔죠.”라고 사장 내외는 말한다. 우리가 월급을 받아 생계를 꾸리는 것과 똑같이 오늘 번 돈과 내일 번 돈을 모아 ‘진짜 생활’을 한다. 하루에 8만 원, 인력소개소에서 10%를 떼고 나머지 7만 2천 원은 이곳에 드나드는 이들이 살아가는 데에 쓰였다. 이곳에 와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한 가정의 ‘가장’이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삼십 대 초반부터 올해 꼭 일흔이 된 사람까지 이곳을 오간다. 가끔 이십 대가 오기도 하지만, 용돈 벌이 정도로 생각하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십 대는 이 일을 잘 버티지 못한다. 대부분 하루 이상을 나오진 않는다. 일을 구하는 쪽에선 아무래도 젊은 사람을 선호하지만, 나이가 있더라도 꾸준히 이 세계에서 일해 온 사람이 더 성실하고, 일을 잘한다. 그것은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부부가 생각하는 법칙이다.

인력소개소를 운영한 지가 18년이고, 그때부터 죽 인연을 맺는 사람도 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매일같이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새벽에 나와 저녁때까지 현장에서 일하는 것은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하루 나오고, 하루 쉬는 사람이 숱하다. 한 달에 네 번, 일주일에 한 번씩만 쉬고 매일같이 나오는 사람을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니 그런 분들이 나이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할 때 사장 내외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올해 예순여섯인 김 씨는 “서해대교, 고속전철, 한강 다리를 내가 만들었다.”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군청색 가방에 안전제일이라고 쓰인 형광 주황색 끈을 달아매고 다니는 김 씨는 큰 키에 시원스러운 이목구비 덕에 참 멋스러워 보였다.

“장사하다가 다 걷어치우고 이것저것 안 해 본 일이 없다.”라며 “처음엔 아이들 가르쳐야 하기에 이곳으로 왔다.”라고 말했다. “힘든 것이야 물론이지만, 일은 해야 하니까 한다.”라는 김 씨는 건장한 체구 덕에 나이에 비해 일을 곧잘 얻는 편이다.

 김 씨의 시원한 웃음을 시작으로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이 힐끔힐끔 쳐다보던 내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것은 불확실한 낯선 상황에서 본인이 ‘처음’이기를 거리는 사람 사이의 어떤 법칙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보냈어요?”라며 말을 시작한 이는 올해 서른여섯이다. 그냥 몇 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보고 엉엉 울만 한 기사를 써 달라.”라고 주문했다. “일용직 노동자의 서글픈 삶에 관해 이야기를 써 달라.”기에 웃었더니 옆에 있던 동료가 “얘 장가나 좀 보내달라고 써요~”라며 농담을 던졌다. 어제 아침에는 이곳에서 못 본 사람이었다.

어제는 집에서 쉬었던 서른여섯 살 총각은 “오늘은 반석동에 가요~ 수고 많아요!”라며 함께 가는 동료의 차 뒷자리에 성큼 올라탔다. 그렇게 오늘 일거리를 얻은 사람이 하나 둘 떠났다. 그리고 다섯 시 오십 분이 넘어가자 남은 사람은 몇 없었다. 남은 사람은 사무실에 앉아 끝까지 일감을 기다리거나 조용히 앉아 있다가 인사를 하고 떠났다. 여섯 시 정도가 될 때까지 떠나지 못한 사람은 오늘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올해로 일흔인 그가 혼자 남았다. 그는 이곳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설 지나고 지금까지 총 네 번 일했다.

나이가 많아서 그는 요즘 많은 일을 하지 못한다. 예전에 “핵 관련 연구를 했었다.”라고 말한 그가 박정희 정권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텔레비전에선 우연히 박근혜 대통령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딸 하나 아들 둘이 있지만, 딸은 미국에 나가서 시민권을 따 살고 있고 아들 둘은 모두 직장에 다니느라고 바쁘다.

지금은 아내와 둘이 사는데, 아내 역시 ‘이런 일’을 한다고 했다. 일 못하고 집에서 쉴 때가 제일 힘든데, 요즘은 정말 힘든 날의 연속이다. 나이를 먹었지만,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닌데 속상하다. 매일 같이 새벽 네 시 반이면 일어나 집에서 나오는 그는 여섯 시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가 많다. 어둠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을 구하지 못한 사람의 법칙이다.

▲ 새벽 인력시장

조금 늦은 시간인 오전 7시 30분까지 일터로 가야 해 사무실에 혼자 남은 남자는 올해 마흔둘이다. 인테리어 후 청소 일을 맡은 그는 조금 있다가 탄방동 한 아파트에 가야 한다. 일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일저일 정처 없이 헤매다가 이곳에 나온 지는 몇 년쯤 됐다.

일이야 마음먹기에 따라 힘들기도 하고, 힘들지 않기도 하다. 오늘 하루가 한 달 같을 때도 있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갈 때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그는 말했다. 남들은 돈 내고 다니는 헬스장을 나는 돈 받고 다닌다는 마음으로 일하면 하나도 힘들지 않다. 마음이 힘들 때 몸이 같이 힘들다. 모든 일이 그렇게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그는 그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사장 내외는 인력소개소 앞길을 쓸기 시작했다. 오자마자 내어 놓았던 대야도 안으로 들였다. 아침에만 해도 비었던 대야에는 종이컵과 담배꽁초가 한 가득 쌓였다. 그렇게 청소를 하는 사이 아침은 성큼 다가왔다.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지만,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아침이 왔다. 그것 또한 오랫동안 이어온 하루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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