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공중보건의 관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흡연은 단순한 개인의 습관이 아니라 사회적 건강 불평등과 구조적 건강 문제를 유발하는 주요 요인이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에도 막대한 부담을 초래한다.
공단에 따르면 매년 흡연 관련 질환 치료에 지출되는 건강보험 비용은 1조 7000억 원을 웃돈다. 이는 폐암, 심근경색, 뇌졸중, 만성폐쇄성폐질환 등 중증질환 치료와 재활에 사용되는 비용이다.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간호학의 윤리적 관점에서 이번 소송은 공공의 건강을 수호하려는 정당한 대응이다. 간호학은 건강을 단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환경적 구조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해한다.
특히 흡연은 청소년, 저소득층, 정신건강 취약군 등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심각한 건강 피해를 유발하며, 건강 형평성을 저해하는 대표적 요인이다. 간호학은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모두가 건강한 사회 구현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담배소송은 세계적으로도 정당성과 타당성을 입증한 선례에 근거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1998년 미국의 MSA(Master Settlement Agreement)다.
미국 46개 주 정부는 담배회사들이 흡연의 유해성과 중독성을 인지하고도 이를 은폐했으며, 이에 따라 공공의료 재정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민사 합의 중 하나인 MSA가 체결됐고, 총 2060억 달러(한화 약 270조 원) 규모의 배상이 결정됐다.
이 배상금은 향후 25년간 분할지급 형식으로 각 주 정부에 전달됐으며, 흡연 예방 교육, 금연 프로그램 운영, 공중보건 강화 등에 활용됐다.
또 MSA는 담배 광고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포함하고 있다. TV·라디오 광고는 물론, 청소년을 겨냥한 만화 캐릭터 사용이 금지됐으며, 매장 진열과 마케팅 방식에 대한 규제도 강화됐다.
법원은 담배회사가 과학적 연구를 통해 흡연의 중독성과 해로움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은폐하거나 왜곡한 점을 중대한 책임 사유로 봤고, 제조사에 공공 재정 손실에 대한 법적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판례는 담배로 인한 공공의료 재정 부담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명확히 한 첫 대규모 사례이며, 공공기관이 건강권 침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가능성을 제시한 선구적 판결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의 이번 소송도 이 같은 흐름 속에 있다. 이는 단순한 금전적 배상을 넘어, 예방 중심의 보건의료 체계로의 전환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시도다. 흡연은 예방할 수 있는 질환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며, 금연 정책을 강화하고 예방적 간호 서비스를 확장한다면 건강보험 지출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다.
건강보험공단의 담배소송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건강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만 전가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선언이다. 이는 건강 불평등 해소와 공공보건 실현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시작점이며, 간호학이 추구하는 ‘건강 정의’ 실현의 실질적인 걸음이기도 하다.
이제 간호사는 병상 곁을 넘어,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실천가의 책임을 요구받고 있다. 담배회사의 책임을 묻는 이번 소송은 법정 싸움을 넘어, 공공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사회 정의의 실천이다.
간호학계와 보건 의료계는 이 흐름에 적극적인 지지와 연대를 보이며, 국민 건강권 수호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함께 걸어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