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 뾰족집
대흥동 뾰족집
  • 글_사진 박숙현
  • 승인 2013.05.1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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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전 근대건축물을 얘기할 때마다 등장하는 뾰족집. 대전의 대표적인 근대건축물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무단 철거라는 충격적인 봉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대흥1구역재개발사업과 중구와 대전시의 무관심으로 훼손된 뾰족집. 그 수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뾰족집의 수난은 무단 철거되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재개발구역 속에 홀로 서 있던 뾰족집은 뒤쪽 담장이 무너지고,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을 정도로 벽이 훼손되었다. 그야말로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그랬던 뾰족집이 풍파를 당한 건 2010년 10월. 대전 문화계에 충격적인 사건으로 불리는 ‘뾰족집 사태’가 일어난 때였다.

당시 재개발조합은 대전시와 뾰족집을 건물 그대로 이전하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하지만 추석 연휴에 재개발조합이 제대로 된 복원 절차를 마무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뾰족집을 철거하며 논란이 일었다. (재개발조합은 현상변경승인을 받지 않을 채 문화재를 훼손했으며 철거도 문화재수리업체가 아닌 일반 업자에게 맡겼다.)

뒤늦게 대전시가 사태를 파악하고 공사를 막았지만 뾰족집은 이미 목조 뼈대만 남은 상태. 이에 논란이 거세지며, 중구청과 시는 ‘한 달 넘게 사실 파악도 못 하더니, 서로 책임을 떠넘긴다.’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대전시는 “뾰족집 이전?복구에 따른 실무자 대책협의를 개최했다.”라며 “시와 구는 뾰족집의 이전?복구가 조속히 이루어지도록 필요한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라는 보도자료를 내며 뾰족집 복구를 약속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되지가 않았다.

뾰족집 이전, 복원 공사는 2012년 5월 30일 시작했다. 무단 철거된 지 바야흐로 1년하고도 7개월이 지나서다. 그동안 뾰족집은 그야말로 난항을 겪었는데 그 첫 번째는 터. 이전하기로 한 중구 대흥동 37-5번지는 뾰족집의 수목, 조경석을 그대로 옮길 수 없을 정도로 협소했다. 그리고 근처에 즐비한 모텔도 문제였다.

그럼에도 뾰족한 해법이 없어 뾰족집은 그곳에 갈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난항으로 추정하는 건 조합의 내부적인 문제다. 뾰족집 터를 소유하고 공사를 진행해야 하는 조합의 내부 비리가 드러나 한바탕 시끄러웠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뾰족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표류했다. 금산 추부면에 보관했던 ‘뾰족집 부재 훼손’ 우려가 제기될 정도로.

그러다 드디어 지난 5월, 조합이 3억 원을 들여 공사에 착공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공사는 예정완공일(2012년 9월 30일) 9개월 뒤인 2013년 6월에 완공할 예정이다. 그 이유로 중구청 관계자는 “겨울은 공사하기가 어렵고, 문화재다 보니 복원공사를 하다 어떤 식으로 할지 문화재 위원회 심의를 거쳐서 복원하는 방식이라 일반 공사와 다르다.”라고 말했고, 시청 관계자는 “겨울 공사이기도 하고, 조합 내부 사정도 있고 그래서 늦어졌지 다른 이유는 없다.”라고 밝혔다.

4월 중순에 찾은 뾰족집은 공사 중이었다. 모텔과 원룸을 지나니 뾰족집 특유의 빨간 지붕이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본 뾰족집의 모습은 예전처럼 애처로웠다. 1970년대 증축한 부분을 제외하고 뾰족집 원형만 복원했음에도 터는 협소했다. 양옆에 건물 때문인지 꽉 찬 듯 보이는 뾰족집.

지금도 충분히 ‘껴있는’ 듯 보이는 그곳에 조경까지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뾰족집은 다가올 6월 조경 공사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이제 뾰족집의 수난은 끝난 걸까? 아니다. 뾰족집은 앞으로 ‘관리’와 ‘활용’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그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하는 건 소유권. 현재 ‘소유권’을 가진 조합은 한때 ‘복원 뒤 매각하겠다.’라는 의사를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재개발 조합이란 한시적인 법인이기에 매각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이에 문화계는 대전시가 매각해서 공공의 목적으로 활용하기를 바라지만 아직 대전시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대전시 관계자는 “소유권과 활용을 말한 단계가 아니다. 우선 복구에 신경 써야 한다. 복구가 안 됐는데 소유권을 달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지금은 복구에 전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내심 조합은 대전시에서 매각하길 원하는 눈치다. ‘근대건축물이니만큼 대전시가 사지 않겠느냐.’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과연 그 누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근대건축물을 매입한 전례가 없는 대전시가 ‘돈’을 들여 그것도 근대건축물을 산다는 발상을 실현할지 의문이다.

물론 뾰족집은 복구부터 돼야 한다. 하지만 6월에 완공할 뾰족집 관리와 활용에 관한 대책이 지금까지 없다는 것은 의아스럽다. 사용하지 않고 관리하지 않은 건물은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라면 더군다나 일상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헌데 문화재임을 알고도 뾰족집을 무단 철거하고 공사현장을 누구나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관리하는 조합이 과연 애정을 가지고 뾰족집을 관리할지 의문스럽다.

그런데도 관할관청인 중구는 “소유권과 활용 방안은 시가 담당할 일이다.”라고 말하고, 대전시는 복원만 얘기한다. 뾰족집이 왜 그렇게 옹색하게 지어졌는지 짐작이 간다. 중구나 대전시, 그리고 조합에게 뾰족집은 그저 애물단지일 뿐이다. 하도 뭐라고 하니 방치는 못 하겠고 그렇다고 신경 쓰기는 귀찮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천덕꾸러기다. 뾰족집 사태가 언론에 보도되며 ‘그나마 있는 근대건축물도 관리하지 못한다.’라는 비난은 그냥 ‘소귀에 경 읽기’였나 보다. 

어찌 됐건 그렇다면 이제는 뾰족집 관리와 활용에 관해 생각해야 할 때다. 현재 소유권이 없다며 한 발 빼는 건 소극적인 자세다. 근대건축문화재에 신경 쓴다며 현황조사를 하고 체계적으로 목록화했다면 이제는 예산을 확보해 중요한 근대건축문화재를 매입해서 활용하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야 한다.

중구 은행동 LED 거리 조성사업에는 165억 5,000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붓고서는 근대건축물, 그것도 문화재를 매입하는데 예산 타령하는 건 듣기 민망하다. 차라리 그럴 생각도, 관심도 애정도 없다고 하는 게 솔직하다. 즐겨하는 변명처럼 ‘하나 사면 다른 것도 사달라고 한다.’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현재 뾰족집은 가정집과 회사 건물 사이에 있다. 그래서 끼어 있는 느낌이다. 대전에서 제일 오래된 근대건축물을 보러 모텔과 원룸을 지나 굳이 발걸음 한 이들에게 내놓기 부끄럽다. 둘러보다 앉아서 쉴 공간도 없거니와 심지어 뾰족집 앞에서 전경 사진을 찍으려면 용써야 할 정도로 도로도 좁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지금껏 뾰족집은 수난당할 만큼 당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뾰족집에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이제라도 매입하자. 이때 주변 터도 같이 매입해 공간을 조금이라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담당 공무원도 알고 있듯이 ‘미술관이나 근대건축 박물관’ 등 공공의 목적이나 생산적인 공간으로의 활용을 생각하자. 가만히 앉아서 손 안 대고 코 풀려다가는 제2, 제3의 뾰족집 사태만 있을 뿐이다.

*대흥동 뾰족집
대전 지역 근대건축물 중 개인 소유주택으로는 가장 오래된 집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대전 철도 국장이 거주한 관사로, 외관상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지붕 때문에 ‘뾰족집’이라 부른다. 일본과 서양 건축의 양식이 혼재되어 당시의 시대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문화재청이 2008년 7월 3일 등록문화재 제337호로 등록하였고, 2009년 10월에는 대전시가 문화재자료로 가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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