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떠올리기도 싫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일. 전쟁입니다.
전쟁 영화중 백미로 꼽히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2차 대전 당시 미국 육군에서 복무한 프레더릭 닐런드(Frederick Niland) 라는 병장의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라 합니다.
미국의 촌 동네인 아이오와주의 시골에 네명의 아들중 세 번째 아들의 전사소식을 전하는 고급세단차가 들어옵니다.
어머니는 정복을 입은 육군 장교들과 군종 목사가 차에서 내리는 걸 보자마자 비틀거리다가 주저앉고 맙니다.
미 육군참모총장 조지 C. 마셜은 이 사실을 듣고 마지막 남은 막내아들만이라도 구출하여 집에 보내자고 결정하고, 육군 제2레인저 대대의 밀러 대위를 지휘관으로 하는 8명의 팀을 편성해 라이언 일병 구출 작전에 투입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라이언 일병, 하지만 그는 전우들을 버리고 갈 수 없다고 버티는 군인 정신을 보여주었고, 결국 밀러 대위를 포함한 6명의 구출 팀은 다 전사하고 맙니다.
한 명의 사병을 구하자고 6명의 병사가 희생되어도 좋은가?
영화는 이런 의문을 던져주지만, 이것은 라이언 일병이 아닌, 네명의 아들을 잃는 어머니의 희생에 8명의 병사로 상징되는 국가가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국민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미 육군 참모총장 조지 C. 마셜은 구출된 라이언 일병과 함께 어머니에게 다음 구절의 편지를 보냅니다.
...본인은 전쟁성 장관과 여러 미군 장병들, 그리고 국민과 함께 기쁨을 함께 하며, 부디 귀하께서 아드님과 함께 오래도록 건강과 행복을 누리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막내 아드님의 무사 귀환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도 귀하와 미국의 수많은 가족이 이번의 비극적인 전쟁으로 입은 손실을 대신하지는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에 저는 오랫동안 지금의 길고 어두운 위험 속에서 스스로를 견딜 수 있도록 해준 한 구절을 나누고자 합니다.
"부디 주님께서 부인의 괴로움을 달래 주시고, 사랑하는 이들과의 추억을 고이 간직하시고, 자유의 제단 앞에 큰 희생을 치렀다는 것에 자긍심을 가지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에이브러햄 링컨...
영화속의 구출된 라이언 일병은 가족과 함께 노년에 자신을 구해준 밀러 대위의 묘를 찾아 경례를 하고 아내에게 묻습니다.
“나. 잘 살았어? 잘 살았다고 말해 줘.”
라이언은 그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살아난 자신이 올바르고 훌륭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들의 희생에 답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무거운 삶의 부채를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잊을 수 없는 전쟁의 상흔은 6.25 한국전쟁입니다. 6.25 한국전쟁중에 우리는 수많은 밀러 대위를 보았습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국가의 명령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라이언 일병을 구하고 목숨을 바친 영웅들입니다.
1953년. 6.25의 막바지 무렵 국군 임택순 공군 대위는 적과 싸우다 기체가 피격을 당하자 적진으로 돌진해 산화했습니다. 그의 나이 23세였습니다. 임택순 대위는 공군사관학교 1기생으로, 공사 출신 첫 전사자였습니다.
임 대위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38선 북쪽의 설악산을 비롯한 거진, 간성 지역을 우리 측의 영토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공군사관학교는 그가 산화한 마지막 전투일인 3월 6일을 기념해 해마다 이날 공군사관학교 입학식을 치릅니다.
임택순 대위는 세종시 소정면이 고향인 우리 지역의 영웅입니다.
그는 마지막 출격 전날 일기에서 ‘태어남과 죽음은 명에 달렸으니 족히 논하지 말자. 사나이 조용히 하늘로 나아간다’라며 보라매로서의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1983년, 우리 정부는 6.25 한국전쟁의 4대 영웅을 선정 발표했습니다. 미국인이 2명. 한국인 2명.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 월튼 워커 장군과 김홍일 장군, 그리고 김종오 장군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유엔군 총사령관이었고, 워커 장군은 미 제8군 사령관이었습니다. 김홍일 장군은 일제강점기때 독립군으로 싸우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한강 방어선 전투를 지휘했습니다. 대한민국 창군이래 최초의 장군이기도 합니다.
김종오 장군은 6·25전쟁 개전 초기 육군 제6사단장을 맡아 북한군의 남진을 5일간 지연시키며 서부전선 국군 주력부대의 한강 방어선 구축과 유엔군의 참전 시간을 확보해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하게 했던 영웅입니다.
당시 김일성은 “남조선의 사단 중 제대로 된 사단은 6사단 밖에 없으니 그걸 깨부숴야 한다”고 언급할 정도였습니다. 김종오 장군은 백마고지 전투의 영웅으로도 유명합니다.
9사단장을 맡을 당시인 1952년 10월 벌어진 백마고지 전투는 12번이나 주인이 바뀔 정도로 전쟁이 치열했는데 김종오 장군의 활약 덕분에 국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종오 장군은 북진 당시 맨 처음 압록강에 도달한 뒤, 물을 수통에 담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김종오 장군은 세종시 부강면이 고향입니다.
1921년 세종시 부강면에서 출생해 부강초등학교를 졸업한 분으로 해마다 5월이면 부강초등학교에서 탄신제를 열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의 찬란한 영웅입니다.
6.25 전쟁 당시 세종 지역과 관련된 또 다른 영웅은 바로 미 24사단(사단장 딘)입니다.
세종은 6.25 전쟁 개전 초기 처절한 전투를 벌였던 지역입니다. 바로 세종시 전의, 전동지역의 ‘개미고개 전투’입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미군은 전쟁 6일 만인 30일, 참전을 선언하고 오산과 천안에서 전투를 벌이며 후퇴하다, 세종지역에서 전의와 전동 사이 ‘개미고개’에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를 겸한 지연작전에 들어갔습니다.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격을 늦추는 데 성공해 후의 대반격을 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했습니다만, 미군은 428명 전원 전사하였습니다.
매년 7월11일이면 개미고개 전투와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추모식이 미군과 함께 개미고개에서 열립니다.
이상스럽게도 이날의 추모식에는 비가 내리곤 했습니다. 장마철이기만 해서일까요?
저는 해마다 추모식에 참여하면서 우산 받기가 송구스러워 그냥 비를 맞고 추도사를 읽곤 했습니다.
이틀 후면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5년이 됩니다. 세종시에 백발이 성성한 역전의 참전용사들도 이제 몇 분 밖에 남아 계시지 않습니다.
6.25 전쟁의 침략자들로부터 이 땅을 구하기 위해 헌신해 주신 밀러 대위와 같은 영웅들이 영화가 아닌 현실 속에 살아계시는 것입니다.
가끔 하늘을 보며, 또는 그분들의 비석을 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진정으로 그분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고, 그분들의 뜻에 보답하는 길은 무엇인가?
기념비를 만들고 기념사업을 성대하게 여는것이 진정 그분들의 영광을 더하게 하는 것인가?
저는 고개를 저으며 결심합니다. 그렇습니다.
“나. 잘 살았어? 잘 살았다고 말해 줘.”
라이언 일병처럼 그 많은 분들의 희생으로 살고 있는 우리들이 올바르고 훌륭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들의 희생에 답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무거운 삶의 부채를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위해, 왜 그분들이 목숨을 바쳤을까요?
부강 초등학교에서 김종오 장군의 '제104회 탄신제'가 열렸던 지난 5월 17일, 저는 축사를 통해 말했습니다.
"어떠한 가치 위에 대한민국이 존립해 있는지, 우리가 국가를 위해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오늘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라이언 일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