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아동 발달 분야의 권위자인 아널드 게젤 박사는 “어린이는 한 쌍의 눈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시각 세계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그 세계는 직접 만들어야 하고 그것은 자기만의 창조이다”라고 말합니다.
눈은 가장 중요한 감각입니다. 분별력을 주는 기관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들어오는 정보의 80%는 눈을 통해 인지됩니다. 지금도 대부분 활자화된 언어에서 우리는 정보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가 삶을 좌우하게 됩니다. 세상에 추한 것이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좋은 것을 취사선택하여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은 복입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좋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회는 복스러운 사회입니다.
사람의 눈동자는 엄청난 신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안과 의사들은 우리의 눈동자가 자동으로 조절된다고 말합니다.
가령 사람의 눈에 먼지나 모래와 같은 이물질이 들어오려고 하면 어느새 눈꺼풀이 감겨 눈동자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런 작용이 가능한 것은 눈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구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사람의 눈에는 자그마치 30만 개의 회로가 있고 1억만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그 무엇이라도 눈에 들어오려고 하면 이것을 눈동자가 감지하고 눈꺼풀에게 지시하여 자동으로 감겨 보호하는 것입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 번화가에 각종 신문과 잡지를 놓고 파는 가판대가 있습니다. 아침이면 직장인들이 지나가면서 조간신문을 사고 퇴근하면서는 석간신문을 사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가판대의 주인은 60세가 넘은 시각장애인입니다. 시각장애인이 신문과 잡지를 어떻게 팔 수 있을지 의문이 생깁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주인이 앞을 보지 못한다고 사람들이 신문을 그냥 가져가거나 값을 속일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가판대를 이용하는 사람 중 주인을 속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어떤 손님은 값을 지불하고 산 신문을 근처 벤치에서 다 읽고 다시 곱게 접어 아무 말 없이 가판대에 두어 팔게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전 지역 중에서도 특히 뉴욕은 흑인과 멕시칸을 비롯한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렇게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사는데도 시각장애인 주인을 속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의 글 문구 때문이기도 합니다. 가판대 중앙에 “신문이 당신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것처럼 나는 당신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공손한 태도로 신문값을 제대로 지불하고 자기 마음의 자세를 고친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이 앞에서 자신의 양심과 마음을 진단하고 두드려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주인이 앞을 보지 못하지만 언제나 천사 같은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모든 손님을 대하기 때문입니다. 손님들은 주인의 미소에 대한 신뢰와 진실 때문에 감히 나쁜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그는 비록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나 길 가는 사람들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순수하고 힘차게 고동치는 심장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푹 빠져 버린다고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신문을 파는 맹인처럼 순수하고 힘차게 뛰는 심장 소리에 자신을 돌아보는 신비함을 가지고 살 때 삶의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예전에 콘크리트를 비비는 막노동을 해서 벽돌을 만들었던 때에 한 가난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너무 가난해 16살 때 학교를 중퇴했고,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막노동하며 자랐던 아이입니다. 그 소년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 성장해 나중에 커서 영국 수상이 된 ‘메이어’라고 합니다.
훗날 어느 기자가 물어보기를 ‘어떻게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냈습니까?’ 하자 메이어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비관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표정이 밝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계절의 변화에 조용히 순응하는 풀꽃을 바라보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라고 탄성을 말하였던 시인의 감성은 머물러 자세히 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분주함이 성공한 신분의 잣대로 인식되는 풍조 속에서 한가로움은 게으름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소유의 욕망에 붙잡혀 사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이나 예술품 앞에 오래 머물러 있질 못합니다.
많이 소유하는 것을 성공의 가늠자로 삼을수록 사람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는 능력이 점점 소멸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누구도 빛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특히 내면의 빛이 어두운 사람은 제대로 보질 못하기에 결국 다른 이들의 눈으로 세상과 또 자기 자신을 그런 눈으로 봅니다. 그렇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 때 진정한 누림과 기쁨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내면을 보는 눈이 맑고 밝은 이들은 현재 있는 그대로를 향유하며 감상하고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향유(享有)야말로 가장 온전한 행복이며 사랑함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향유의 능력을 잃어버리는 순간 다른 사람들과 허물없이 순수한 사귐은 불가능합니다. 부디 살아갈수록 내면의 영안이 밝아지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