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교동에 살고 싶게
석교동에 살고 싶게
  • 글_사진 박숙현
  • 승인 2013.06.2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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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교마을신문’을 만드는 사람들

‘식장산에서 바라본 우리 마을’ 사진이 첫 페이지를 장식한 석교마을신문. 16페이지 신문은 석교동과 효동, 옥계동 이야기로 가득하다. 어느 부부의 떨리는 러브스토리부터 우리 마을 문화재, 그리고 마을에 세워질 어린이공원 문제까지…. 마을 안에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로 입꼬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석교마을신문팀을 만났다.

함께 찾아가는 행복

5월에 창간호를 발행했지만 석교마을신문은 오래전부터 마을신문을 준비했다. “작년 4월에 기자단을 뽑고, 작년 11월부터 준비호를 3호까지 냈어요.”라는 김수경 발행인. 마을 신문의 시작은 아이들이었단다.
“마을에 맞벌이하는 부부가 많아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것을 고민했어요. 품앗이 성장학교로 아이들에게 학교 교육이 아닌 마을에서, 함께 사는 것을 고민해보도록 했죠.”

거기에는 마을을 알아가는 과정이 있었고, 아이들은 마을 어른을 만났다. 헌데 뜻밖에도 그 속에서 아이들이 상처를 받았다.

“어른들이 반겨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죠. 아이들한테 공동체를 가르치지만 어른들이 못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 석교마을신문
그 생각에 ‘어른들이 같이할 수 있는 게 뭘까?’ 하다 마을신문을 떠올렸다. 하지만 준비호를 세 번 내면서도 진짜 창간호를 낼 줄은 몰랐다. 11명의 기자 대부분이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만큼 과연 한 달에 한 번 신문을 낼 수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글을 쓴다는 부담감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마을신문을 만드는 건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아기엄마가 왔는데 외국 분이셨어요.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하니 마을신문 보고 왔다고 했죠. 모여야 함께 뭘 할 수 있는데 신문이 모일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거 같아요.”

신문에 난 광고도 그렇다. 자그마한 광고였지만 동네 정육점 광고를 보고 할머니 한 분이 물어물어 찾아오기도 했다. 이렇게 동네에서 함께 사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하는 석교마을신문. 자신이 할 수 있는 내에서 하는 만큼 더 많은 동네 사람이 함께하길 바란다.

“차량정비 글은 진짜 차량정비 하는 분이 쓰고, 건강이야기는 간호사가 써요. 청소년은 청소년의 이야기를 하고요. 본인이 쓸 수 있는 걸 쓰는 만큼 어린이부터 마을 전체가 기자단이 됐으면 해요.”

▲ 석교마을신문팀
석교동이 보여요

처음 준비호를 집집마다 손수 배달할 때만 해도 반응은 두 가지였다. 반기거나 혹은 “뭐예요?”. 하지만 준비호를 세 번 내고 나니 점점 달라졌다. 부부이야기를 담당하는 박정호 씨는 “주민분들이다 보니 은근히 섭외해달라고 해요. 인터뷰하기도 전에 ‘인터뷰 하면 우리는 무슨 얘기하지?’라며 연애 시절을 회상하곤 한대요.”라며 암암리 행해지는 섭외 요청(?)에 대해 말했다.

그 인기 덕분인지 이제는 동네 배포처에 놔두면 알아서 가져갈 정도로 관심이 높아진 석교마을신문. 아는 사람이 많아진 만큼 만드는 이들의 책임감도 커졌다. 준비호 때와 달리 창간호를 내니 마음이 다르다는 전병배 편집장은 “책임감이 커졌어요. 이번에 주민 100분에게 창간축하인사를 받았는데 속마음을 얘기한 분들이 계셨어요. 정말로 읽힐 수 있는 신문을 내도록 노력해야겠어요.”라고 말했다.

사실, 마을신문을 만든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모여 회의한 다음 취재하고, 기사까지 완성하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처음엔 ‘귀찮게 마을신문을 왜 하지?’라고 생각했다는 신상균 씨처럼 다른 사람에겐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마을을 아는데 마을신문만 한 것은 없다고 전병배 편집장은 말한다.

“23년째 여기에 살면서 어지간히 마을을 잘 안다고 했는데 신문 만들면서 알았어요. ‘마을 안에 있는 일 중 내가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하는. 신문 덕에 점점 마을 일을 알아가고 있어요. 신문기자는 됐는데 아직 제대로 마을 사람이 안 됐어요.”

그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신상균 씨는 “‘마을신문을 만들면서 마을신문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우리 동네가 이렇게 생겼다는 것도 알게 되고, 마을이 변화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내가 사는 이곳은 그냥 동네가 아닌 ‘내 동네’로 만든다는 마을신문. 그 속에 저마다의 바람을 담는다.

“요즘은 내 이웃에게도, 주변 환경에도 관심 없고, 다 바쁘게 사는데 우리 마을에 이런 일이 있다는 걸 통해서 옛날 마을 복원은 아니더라도 같이 살아가는 데 힘이 됐으면 해요. 아이들을 같이 잘 키우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관심을 둬야 해요.” (김수경)

“신문을 통해서 석교동이 한눈에 보이는 게 목표예요.” (박정호)

“얘들이 크면 둔산이나 외지로 나가는 데 신문을 통해서 마을의 비전을 보고 동네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석교동에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요.” (이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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