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농촌일기 - 밭에 들깨를 심고 나서
[수필] 농촌일기 - 밭에 들깨를 심고 나서
  • 유규상 기자
  • 승인 2025.08.24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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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은 농부의 노력과 함께 하늘의 보살핌이 있어야 완성체가 된다.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유규상

[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아침 8시 30분경 어머니가 방문을 두두린다. 아버지가 아침 일찍 들녘에 나가 들깨를 심고 있으니 도와 주라는 것이다. 6일 새벽 밤 3시 15분부터 진행되었던 우리나라와 이라크와의 북중미 월드컵 3차예선 중계방송을 시청하느라 새벽에 일어났다가 다시 5시 30분경 승리를 확인하고 잠을 청했기 때문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마음은 일어나고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방안에서 몸을 몇 번이나 뒤척이다가 간신히 일어나 들녘으로 나갔다.

자전거 페달을 굴리며 밭으로 이동하면서 조선시대 남구만 선생이 지은 시조를 문득 떠올렸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시조에서 나오는 '게으름뱅이‘ '소치는 아이’가 바로 내가 아닐까 ? 하는 생각을 해 보며, 남구만 선생이 살았던 농촌의 모습과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농촌상황을 오버랩 시켜 본다. 농촌의 환경이 당시와는 많이 달라졌어도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마음가짐은 기본적으로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는 진리인 듯하다. 그리고 아버지의 하루는 오늘도 아침 5시부터 시작되었는데 나는 아침 잠이 많아 늦게 일어나는 생체리듬을 생각하니 "나는 농부가 되기는 영 글러 먹었다"하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여러번 되뇌어 본다.

오늘은 6일 현충일이다. 지난달 5월에 모내기는 거의 완료했고 그 후속조치로 기계가 다 채우지 못한 빈 자리나 봄바람으로 인하여 땅에 착근하지 못하고 논에 떠다니는 어린 벼 모를 다시 심는 이른바 뜬모의 계절이다. 지금은 농촌 인력의 부족으로 예전처럼 세밀하게 뜬 모를 하지 않는다. 다만, 이앙기가 채우지 않은 빈 공간만 메꾸는 정도의 일이라 바쁜 농번기는 일단 지났다.

모내기가 끝나면 농부들의 활동무대는 논에서 밭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간다. 이때부터 각종 농작물을 심기 시작한다. 우리 집에서 오늘 할 일은 들깨를 심는 것이다. 어린 들깨는 집에서 씨를 뿌려 직접 기르지 않고 어린 모를 사다가 집 안마당에서 어느정도 키우고 나서 밭에 옮겨 심는 일을 하게 된다.

그동안 아버지는 어머니와 같이 농사일을 같이하는 공동 작업자이자 부부 농부였다. 부모님은 동갑의 나이로 이제 일을 하지 않으실 나이지만 농사일을 전업으로 승계할 자식이 없어 지금도 농사일을 계속하고 계시지만 어머니는 최근 허리가 좋지 않아 현역 농부에서는 은퇴 하셨다. 하지만 아버지가 작업한 일들에 대한 감독역할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어머니는 그동안 농사일을 해왔던 경험을 토대로 영농 작업장에 오셔서 미비한 부분에 대해서 조언을 하거나 지적하는 일을 하시지만 이제는 예전에 비해 요구사항이 많이 줄어 들었다.

오늘 작업장은 삽교호 지류인 도고천의 물이 삽교호로 합류하는 지점의 밭이다. 아버지는 혼자 나오셨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밭을 평탄하게 정리하시고 어린 모를 식재할 땅에 구덩이를 파고 전체의 5분의 1정도 밭에 들깨를 심고 계셨다. 식재 면적은 작년보다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넓다. 농부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빈 공터를 남기지 않고 농작물을 심고 관리하려는 생각을 가진 것이 농부의 마음이고 욕심이다.

들깨를 심는 작업은 이렇다. 호미로 일정간격에 맞춰 작은 구덩이를 파고 어린 들깨 모를 심으면 나는 그 자리에 주변에서 양동이로 물을 퍼다가 물을 주는 작업을 반복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햇볕은 내리쬐고 무덥고 작업량은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휴식시간도 별도로 없고 각자가 알아서 쉬어야 한다. 한번 시작하면 끝날때까지 쉼없이 일해야 한다. 농사짓는 일이 만만치 않은 이유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농부들은 대부분이 그렇지만 본인이 하는 직업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집의 경우에도 그렇다. 퇴직해서 내가 농사지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농사일에 대해 만류하는 입장이고 그래서 일을 시키지도 않는편이다.

다만 막내동생은 그동안 아버지와 호흡을 맞춰서 오랫동안 농사일을 거들어 온 아버지 최고의 조력자다. 막내 동생도 최근에는 퇴직 이후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느라 집에 오는 일이 드물어 그 공백을 내가 잠시 메꾸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막내 동생도 더 나이가 들면 시골로 돌아와 농업에 종사할 미래의 농부이다.

6월의 초여름은 생각보다 날씨가 상당히 덥다. 그리고 바람도 세차게 분다. 이런 날씨에서 작업을 하려면 머리에 햇볕을 차단하는 긴 창의 모자를 눌러 써야한다. 그리고 모자에 달린 끈을 목에 단단히 조이지 않으면 바람에 모자가 날려 멀리 가기도 한다. 일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올때도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서 페달을 발고 이동하기가 매우 불편하다. 마당에 널어 놓은 옷들이 바람에 날려 땅에 떨어 지거나 집 안마당의 매화나무에 열린 매실이 저기저기 떨어져 있다. 모두 바람 탓이다.

아침에 시작한 일은 벌써 점심이 한참 지났어도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이럴때면 이 작업이 언제 끝나나 지루함이 밀려 오기 시작한다. 뚝딱하면 금새 해치울 것 같은 작업량이지만 금방 끝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오늘도 여지 없이 오후 1시경 작업현장에 나타나 훈수를 두기 시작한다. 들깨 심는 요령과 언제 점심식사를 할지를 물어 보며 재촉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말대꾸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일이 더 느려진다. 오늘은 내가 합세해서 거들었으니 그나마 일찍 종료 되었어도 오후 2시 27분이다. 들깨를 심는 면적을 줄이면 작업도 편하고 덜 심은 만큼 가을걷이도 더 편할 것이지만 아버지는 그동안 재배 해 온 면적을 줄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농부의 욕심은 아직도 여전하다.

일을 마치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있다. “들깨 농사 짓느라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가을에 기름을 짜서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늘 아들과 친척들에게 기름을 짜서 퍼준다. 농사일의 고단함을 잊어서는 아닐 것이다.

오늘 내가 아버지 일을 돕지 않았더라면 내일도 모래도 아니 더 걸릴 작업 분량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거절하신다. 혼자 해도 된다는 것이다. 자식들이 농사일로 고생하는 것을 안쓰러워 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가끔은 농사일을 거들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고단함을 다소나마 해소해드렸다는 위안감이 나를 죄송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벌써부터 어깨와 허리가 아프고 팔 다리가 뻐근하다. 오늘 심은 들깨들이 무사히 자라길 기원해 본다. 그래도 집에 와서 먹는 늦은 점심이 맞있다.

작물은 심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특히 여름철에 접어들며 뜨거운 한낮을 잘 견디도록 물주기를 최소한 하루 1번씩 이라도 해야 한다. 나는 시간이 나면 때때로 밭에 가서 9시경에 물을 주고 오후에는 작물의 상태를 확인하고 죽은 자리에는 추가 식재가 필요한지를 점검했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어도 생존율이 3분의 1정도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생존율이 높아진다.

드디어 일주일 뒤에 비가 내렸다. 축 늘어졌던 잎사귀가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비가 온 다음날 이미 죽은 어린 모는 새 모로 교체하고 죽을 가능성이 있는 모는 추가로 보식을 했다. 이튼날 다시 밭에 갔다 비가 오기전 모습과는 상당히 달라진 들깨 밭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일을 다섯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 밭에는 비로소 명실상부한 완전체가 되었다. 그 시간은 2달이나 걸렸다. 역시 농부의 필사적인 노력만으로는 농작물의 생육은성공할 수가 없고 하늘의 보살핌이 결합되어야만 작물이 잘 자랄수 있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8월이다.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유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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