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선 칼럼] 왜 기초 예술인가(성원선 전 아산문화재단 대표이사)
[성원선 칼럼] 왜 기초 예술인가(성원선 전 아산문화재단 대표이사)
  • 유규상 기자
  • 승인 2025.08.26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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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생태계의 토대를 새롭게 설계하는 일이 중요

 

성원선 전 아산문화재단 대표이사

[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새 정부가 들어서고, 지난 8월 13일 이재명 정부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이 제시되었다. 그 계획안의 여러 측면은 지난 윤석열 정권의 실정을 복원하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모든 발표에서 비전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국민과 문화라는 점이다.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침체 속에서도 K-컬처의 성장은 국가적 자존감의 회복을 이끌고 있으며, 세계가 한국을 다시 주목하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그렇다면 지역에서는 어떻게 문화의 융성을 이룰 수 있을까?” 답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기초예술의 진흥 속에 그 실마리가 있다.

- 기초예술 진흥의 방식과 조건

기초예술을 살린다는 것은 단순히 ‘예술을 보호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문화생태계의 토대를 새롭게 설계하는 일이다. 이 과정은 몇 가지 구체적인 축을 통해 전개된다.

첫째, 예술활동지원이다. 창작비와 발표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지역 예술가들은 금세 활동을 접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규모 지원이라도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기초예술의 토양은 이처럼 생활 밀착형 활동 지원에서부터 시작된다.

둘째, 예술가 육성이다. 신진 예술가에게는 실험과 훈련의 기회가, 중견 예술가에게는 재도약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기초예술의 생명력은 세대 간의 순환 속에서 비로소 이어진다.

셋째, 창작공간 확보다. 공연장, 레지던시, 실험실, 마을 아틀리에 같은 물리적 거점이 없다면 예술은 추상에 머문다. 충남 곳곳의 산업유산과 유휴 공간, 농촌의 빈집은 기초예술의 창작공간으로 전환될 수 있다. 공간은 예술의 뿌리이자 공동체와 예술가가 만나는 접점이다.

넷째, 네트워크 강화다. 개별 예술가들이 흩어져 있으면 목소리는 약하다. 하지만 지역·국가·국제적 네트워크로 연결될 때 창작은 교류하고, 협업하며, 정책을 바꾸는 힘으로 확장된다.

이런 맥락 속에서 우리는 이미 몇 가지 성공 사례를 알고 있다. 광주의 양림마을, 공주의 제민천 인근의 갤러리 마을, 이천의 도자마을은 예술과 마을이 결합하면서 창작과 생활이 동시에 살아나는 현장을 보여준다.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문화생태계의 실험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실은 늘 흑과 백을 동시에 품는다. 지원은 있지만 끊기기 쉽고, 공간은 열리지만 유지가 어렵다. 정책은 화려하게 시작되지만, 몇 해 지나면 흔적만 남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초예술의 진흥은 이러한 모순을 넘어서는 꾸준한 실험 없이는 불가능하다.

- 플랫폼에서 장소로

결국 중요한 것은 플랫폼을 장소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제도와 정책이 문서와 지침에 머무르지 않고, 특정 지역과 마을, 공간에 뿌리내려야 한다. 거기서 예술가와 주민이 만나고, 시간이 쌓이며, 새로운 전통이 형성된다.

기초예술은 ‘초보적 예술’이 아니라, 지역문화의 토대이자 미래의 가능성이다. 예술활동 지원과 예술가 육성, 창작공간과 네트워크, 그리고 실험적 플랫폼과 마을 단위 실천이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우리는 지역에서 문화의 융성을 이루게 된다.

- 그렇기에 지금 다시 묻는다. 왜 기초예술인가?

그것은 화려한 콘텐츠 산업의 전초가 아니라, 삶과 공동체를 지탱하는 뿌리이기 때문이다. 기초예술이 살아 있어야만, 한국 문화는 행정의 구분을 넘어, 지역의 삶과 세계를 이어주는 진정한 힘으로 거듭날 수 있다.

(전) 아산문화재단 대표이사 성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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