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비가 많이 오는 어느 날, 세종 금강변을 따라가다가 청벽산이 보이는 어느 한 정자에 들러보세요.
이름은 금벽정(錦壁亭). 금강(錦江)과 청벽산(靑壁山)이 바라다보이는 정자라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호우제일강산(湖右第一江山)',정자 안쪽에는 이런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호수 오른쪽의 제일강산이라니..," 얼른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호수? 오른쪽?..."
금강은 예전에 호강(湖江)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비단 호수같이 잔잔하고 넘실대는 그윽한 강,
그 호강(湖江)의 남쪽이 호남(湖南), 지금의 전라도 지역이고, 서쪽은 호서(湖西)지방이라 불리는 충청지역입니다.
중국에는 동정호를 중심으로 호남, 호북이라는 지역이 생겼지만, 호수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을 호수라 비유한 것이겠지요.(호수를 벽골제라 보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니 호우(湖右)라 하면 금강의 오른쪽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라는 뜻이 됩니다.
이곳 금강과 청벽산이 바라보이는 곳을 말한 것입니다. 그곳에 세워진 정자가 바로 금벽정(錦壁亭)입니다. 장군면 금암2리지요.
금벽정에서 푸르른 금강과 맞은편 청벽산을 바라보세요. 그 절경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그리고 정말 정말 운이 좋으면, 여러분 중 누군가는 청벽산에 생기는 작은 폭포를 보게 될 것입니다.
푸르른 산의 나무들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가느다란 은실 같은 폭포. 이 은실폭포를 본 사람은 지역 주민들 몇 분 말고는 거의 없습니다.
지역 분들도 장마철 비가 많이 오는 날, 운이 좋아야 문득 이 은실 폭포를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요. 한동안 그 폭포와 금강과 청벽산이 빚어내는 절경을 보고 있노라면, 호우제일강산(湖右第一江山)이라는 현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은실처럼 신비스런 행운이 나에게 조용히 찾아오길 기대하게 됩니다. 행운이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아무나 만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금강변 금벽정에서 보는 청벽산 은실폭포는 그래서 행운을 부르는 폭포라 합니다.
금벽정은 조선시대 금강을 조망하는 8대 누정(樓亭;누각과 정자)중 하나였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 팔도총론(八道總論)편에서 금벽정을 '상서 조석명(尙書 趙錫命)'이라는 사람이 지은 정자라 설명하며 그 경치와 문화적 의미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금벽정을 ‘錦碧亭’이라 하여 푸를 벽(碧)자를 쓰고 있습니다.
저는 금벽정(錦壁亭)의 벽을 담벼락의 벽(壁)이 아닌, 푸를 벽(碧)자를 썼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청벽(壁)산도 담벼락 벽(壁)자가 아닌 푸를 벽(碧)자를 쓰는 청벽산(靑碧山)이라는 설을 더 선호하고 있지요.
그런 맥락에서는 '호우제일강산(湖右第一江山)'도 '호우제일강산(好雨第一江山)'이라고 표기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우(湖右)라는 말이 무언지 어색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라는 시의 첫 구절에,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좋은 비는 내리는 때를 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호우(好雨)라는 단어를 금벽정 현판에 써서 “좋은 비가 내릴 때 최고의 절경”이라는 뜻으로 '호우제일강산(好雨第一江山)'이라고 새기고 싶은 것입니다. 비 내릴 때 만났던 은실폭포를 보고 그 절경에 공감되어 그렇습니다.
그러나 남아있는 현판이 그렇게 쓰여 있다니 그것은 그것대로 존중해줄 수밖에 없겠지요.
금벽정은 17세기 초에 세워졌지만 지난 2001년 세종-공주 간 도로확장 공사 시 철거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충청 유교 문화권 관광자원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계획이 추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치와 형태를 놓고 여러 논란이 있다가, 2023년 저의 금암2리 1박 2일 소통행사에서 주민 여러분들이 복원 예산이 부족할 경우 직접 마련하겠다는 강한 열정을 보태주신 덕분에 청벽이 가장 잘 보이는 지점으로 합의하여, 2025년 9월 10일 주민들의 오랜 염원을 담은 금벽정 복원 사업의 준공을 맞게 된 것입니다.
금벽정은 4칸 팔작지붕에 기와를 이은 전통 한옥 양식으로, 정자의 구조와 누각의 조망 기능이 결합된 전통 누정 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비 오는 날, 은실 폭포가 보일만한 시기에 금벽정을 찾아보세요.
금강과 청벽산과 은실폭포의 절경이 빚어내는 호우제일강산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실 것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비단 빛 행운이 당신을 찾아올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