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안녕하세요.~ 난생 처음 만난 십여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하루 반나절 동안 먼저 인사를 받아보는 일을 겪었다. 무슨 교류를 위한 공식 행사 자리도 아니고, 어디에 유명 인사로 초청 받은 자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고 내리며 만났던 사람들에게 받은 인사였다. 중년의 남성도 있었고, 앳된 아가씨도 있었고, 아들뻘 되는 청년도 있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제주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험준한 산. ‘어리석은 사람도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라고 해서 지이산(智異山)이라 쓰고 지리산으로 읽는다는 명산이다.
몸이 불고 운동을 게을리 해서, 연휴 때 좀 빡세게 운동을 해보자는 즉흥적인 계획을 세우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자정에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 도착한 백무동. 캄캄한 새벽에 육중한 몸을 이끌고 뻘뻘 땀을 흘리며 오르면서‘내가 오늘 1915미터의 지리산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하고 수없이 되뇌였다. 출발 지점에서부터 무려 1,400m의 고도를 올라야 했고 정상까지 약 8km를 걷는 험난한 경로였기에. 중간중간 쉬어가며 산을 오르다보니 어느새 시나브로 사위가 밝아졌다.
장터목 산장 취사장에 도착해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배낭 속에서 부랴부랴 취사도구를 꺼냈다. 그런데 버너가 망가져 도저히 불을 붙일 수 없었고 싸온 라면과 밥이 슬프게 나를 바라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취사장 밖으로 나갔는데, 한 젊은 청년이 마치 나를 아는 사람인양 쳐다보더니 옅은 미소를 띠며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기회는 이때다 싶어 나도 인사를 하고는, 청년에게 버너를 빌릴 수 있냐고 부탁했다. 청년은 함께 온 아빠에게 내 부탁을 말했으나, 이들 가족은 곧 자리를 떠야 한다고 했다. 비록 버너를 빌리진 못했지만 청년의 인사는 해발 1,670미터 산자락의 공기처럼 청량했다.
천왕봉을 오르는 길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았고, 나도 기꺼이 인사를 건넸다. 재미를 붙여 다음에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내가 인사를 하기도 했다. 정상을 찍고 4시간여 하산을 하면서, 나는 또 올라오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산등성이에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처럼 그들의 인사는 따뜻했고 상냥했다. 힘든 여정 길임에도 표정은 하나같이 시원한 폭포처럼 밝았다. 그 속에는 ‘이렇게 험한 산을 다녀가느라 참 고생이 많으시고, 힘내시길 바란다’는 동병상련의 마음이 담겨있는 듯했다.
사람마다 체력의 차이는 있지만, 2천 미터 가까운 산을 오르며 어느 누가 힘들지 않겠나? 하산 막바지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미끄러운 돌에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한 나에게, 뒤에서 걸어온 젊은 여성은 “괜찮으세요?”라며 걱정해 주었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인사를 정말 잘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어떤 직원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다가도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해 겸연쩍기도 하지만, 그래도 인사성이 밝아서 좋은 감정을 갖는다. 인사를 받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다. 나라는 존재를 인정해주고 관심을 갖는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저만치 길을 걸어오면서도 충분히 누군지 알아챘을 텐데도 멀뚱히 딴 곳을 쳐다보고 지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 내가 인사를 먼저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포기할 때도 있다.
누구를 탓하랴. 먼저 인사를 해도 받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 앞에선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지리산에서 반나절 동안 조건 없는 ‘인사 접대’를 받았으니 정말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것 같았다.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차이는 바로 ‘인사’가 아닐까? ‘인사의 태도’는 지리산을 찾은 선량한 사람들이 내게 준 값진 가을 선물이었다. 황의택


지리산의 풍경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진 건 ‘사람들의 인사’였네요.
작지만 진심 어린 인사가 세상을 이렇게 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멋진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