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우주를 담아
시와 음악 우주를 담아
  • 글 성수진 사진 성기영
  • 승인 2013.09.0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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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예술인_조각가 남철

“작품을 출품하려고 리어카에 싣고 가는데 고물상 장수가 팔라고, 잘해주겠다고 한 적이 있었어요. 기가 막혔죠.”
▲ 조각가 남철
한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들이 조각이 ‘예술’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작품이 고물로 인식되는 그 상황이, 남철 조각가에게 외로움으로 다가왔다. 원래 조각은 외로운 작업이었다. 혼자만의 싸움. 인내, 끈기, 용기가 없다면 만들 수 없는 세계. 남철 조각가는 그 세계를 만들기 위해 50년이 넘는 시간을 들였다.
기계에서 조각으로 손을 따라
남철 조각가는 대전 토박이다. 1936년 석교동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남철 조각가를 만든 어린 시절, 그는 만들기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제일 처음 만든 작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대흥초등학교 시절 만든, 모스 송수신기와 벨이라고 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있었는지, 무언가 만드는 일을 잘했고, 좋아했다.

주위 권유로, 당시 6년제였던 대전공업중학교 기계과에 입학했지만, 6.25가 나며 학교가 둘로 갈라졌다. 그래서 남철 조각가는 한밭중학교를 제1회로 졸업해 대전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미술에 뛰어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기계를 만졌으니 기계과에 가려고 했다. 여러 번, 고심 끝에 선택한 곳은 서울대학교 조소과다.
대전에 입시 미술 준비란 게 따로 없던 시절이었다. 혼자서 꽃을 그리고, 손을 그리며 실기 시험을 준비했다. 실기 시험 날, 시험장에 모델이 등장했다. 모델을 그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옆 자리 학생은 어떻게 그리는지 슬쩍 봐가며 모델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소과에 합격했다.

기계과에 가려고 했지만, 막상 조소과에 들어가니 이것이 운명인가 싶었다. 南徹, 외자 이름으로 ‘사무칠 철’ 자를 쓰지만, ‘내 이름에 철(鐵) 자가 들어가니 조각을 하라는 뜻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철 조각가는 조각가로의 삶을 시작했다.

지금껏 주로 추상 조각 작업을 했지만, 처음에는 구상 조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자연이나 인간 등을 주제로 삼으며 다양한 재료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조각, 재료와의 전쟁
“조각은 노동이에요. 노동하면서 자기를 수신하며 도를 닦는…. 생명 없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거죠. 어떻게 해야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요.”

어떤 작업은 일주일 만에도 마치지만, 어떤 작업은 2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그만큼 난이도는 물론이고 여러 상황까지 작업에 많은 요소가 작용한다. 생명이 없는 재료에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철 조각가가 조각을 하는 데 가장 중히 여기는 것은 재료와 아이디어다. 조각을 ‘재료와의 전쟁’이라고 할 만큼, 재료는 정복 대상이었다.

“의욕을 가지고, 쇳덩이에 겁먹지 말아야 해요. 돌덩어리를 주무르는 용기, 재료를 정복하겠다는 용기가 필요해요.”

남철 조각가가 조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재료란 것은 석고나 점토가 주를 이뤘다. 남철 조각가는 기계를 만졌던 감각으로, 재료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스탠, 아크릴 등 당시에 작품으로 흔히 쓰이지 않던 재료로 작업했다.

“내가 기계를 만졌잖아요. 그래서인지 작품에서도 기계 냄새가 많이 나요.”

스텐, 철, 동, 아크릴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 남철 조각가만의 추상적 조각 세계는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등 공모전에서 인정받았다.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여러 해 특선한 것은 물론, 1968년에 일찍 추천작가가 됐고, 1979년에 초대작가가 되었다.

고비는 의미를 만들고
1962년부터 남철 조각가는 교직 생활을 했다. 2002년 퇴직까지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던 1981년, 경북대학교에 부임했다가 위암이 생겨 수술을 받고 대전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장남이고, 장손이고 해서…. 대전에 내려왔어요. 죽으러 온 거예요. 그 당시만 해도 위암 수술 생존율이 40%밖에 되지 않았어요.”

다행히 그 60%는 남철 조각가를 빗겨갔다. 그리고 대전에서 쉬고 있을 때, 충남대학교에 예술대학이 생겼다. 수술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인데, 충남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고향 대전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오랜 시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오히려 자신이 배우는 것이 많았다고 남철 조각가는 회상한다.

“죽을 때까지 몸을 다 쓰고 가라는 운명인가보다 생각했어요. 한 고비 넘길 때마다 인간이 뭔가, 운명이 뭔가에 관해서 생각하고….”

전기톱에 손을 베어 한 손가락이 잘려나가고, 화단을 꾸리다 리프트에서 떨어져 발목, 허리가 부러지고, 여러 번 남철 조각가 인생에 위기가 왔다 갔다. 인생이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 법도 했지만, 남철 조각가는 현재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무한한 시간, 무한한 공간이 교차하는 것이 지금 이 순간이에요. 어차피 우리 존재는 무한한 시공에서 허무하기 짝이 없어요. 그래서 ‘죽어야지.’가 아니고, 이 순간을 의미 있게 행복하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한한 시공 속 조각 작품 하나
남철 조각가는 어려서부터 무선통신이 취미였다. 얼굴을 모르는 누군가와 진동을 통해 교신했다. 언어로 소통할 순 없지만, 부호로 소통하며 무슨 신호라도 오는지 밤새워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도 벌써 오래 전 일이다.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주파수에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남철 조각가는 무선통신으로, 무언가 질서를 찾는다. 우주의 무한한 공간에서 발견하는 질서 속, 절대자의 존재를 확신한다. 남철 조각가가 조각 작업으로 끊임없이 찾는 것도 절대자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절대자는 아니지만, 절대자의 존재를 생각하고, 확인하며, 구한다.

9, 10월쯤엔 밤하늘 은하수를 쳐다본다. 별을 계속 쳐다보다 보면 별생각이 다 든다. 우리가 바라보는 별이 수 백 광년을 거쳐 온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지구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은가, 그 안에 인간이란 존재는 어떤가.’하는 생각에 이른다.

“인생을 허망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윤회란 게 있잖아요. 죽어서 흙이 되고 먼지가 되고…. 돌고 돌아서 사람으로 태어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새로 태어나고 싶어요.”

밤하늘의 별을 보며 든 온갖 생각을 작품에 담아 작년, 맨해튼에서, <별이 들려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전시했다. 도록 표지로 실린 작품 <Sigh of Shangri-La>의 끊임없이 돌고 도는 원의 형태가 마치 윤회나, 아득한 우주를 떠오르게 한다.

조각을 노래하는 시인
“고3 때부터 시를 썼어요. 시와 조각은 유사한 데가 많아요. 둘 다 함축된 내용을 다루죠. 또 조각을 음악에 비유해 보면, 음악은 물이고 조각은 결빙한 거예요. 음악의 클라이맥스가 응축된 것이 조각이에요.”

남철 조각가는 자신의 체험, 생각, 느낌 등을 응고시켜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 작품은 때로 분홍 진달래 한 송이에서부터 오기도 하고, 귀뚜라미 울음소리에서 오기도 한다. 잠깐 스치는 감정을 메모해 기억하고 그것을 어떤 형식, 어떤 내용으로 표현할지 고민한다.

그 고민은 남철 미술관에 차곡하게 쌓인다. 남철 미술관은 2001년, 자신의 작품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것이 첫째 이유였지만, 사람들이 미술, 조각을 쉽게 접하면 좋겠다는 마음이기도 했다. 누구나 와서 쉽게 볼 수 있도록 무료로 개방하고, 봄, 가을에는 아이들을 초대해 만들기, 그리기 등을 가르친다.

남철 미술관을 운영하며 새로운 행복을 느낀다. 한 번은 미술관에서 작품을 봤다면서, 궁금한 점이 있다고 한 여고생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렇게 자신의 작품이 누군가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행복하다.

“요즘엔 눈이 안 좋아서 신문도 겨우 봐요. 앞으로 건강에 맞춰서 크로키, 판화, 유화 같은 평면적인 작품을 할 거예요.”

입체든, 평면이든, 작업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세계를 표현할 때 드는 쾌감이 있기 때문이다. 상상하던 것이 형태로 나왔을 때는 마치 진리를 터득하는 듯한 쾌감이 든다. 그 쾌감이 좋아 평생에 가까운 시간을 들였다. 그래서 남철 조각가는 어떤 작업이든 멈출 수가 없다.

“예술가는 30년을 앞서 가야 해요. 예술가가 문제제기하고 상상했던 꿈을 이 세상이 실현하면, 예술가는 또 문제제기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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