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로 써 내려간 행복한 삶
글씨로 써 내려간 행복한 삶
  • 글 성수진 사진 성기영
  • 승인 2013.10.11 17: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전 예술인_인순옥 서예가

“마음이 어지러울 때 붓을 잡으면 편안해져요. 작품 하고 그런 게 아니라 연습을 해요. 새 그리는 연습, 꽃 그리는 연습 하고, 임서(臨書)하고요. 계속 공부하고 있는 거예요.”
인순옥 서예가(61)는 자신을 ‘혼자 좋아서 글씨 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들었던 붓이지만, 여전히 남에게 자신의 글씨, 그림을 드러내기가 어렵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큰 욕심 없이, 좋아서 시작한 서예다. 그러니 인순옥 서예가의 글씨는 밖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고, 인순옥 서예가 자신을 향해 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저처럼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글씨를 쓰냐며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아요. 글씨 쓰는 게 아무 이유 없이 좋았어요. 가타부타 따지지도 않고 무작정 시작했어요.”

서예를 시작하기 전에는 운동을 했을 만큼, 인순옥 서예가는 평소 움직이길 좋아한다. 충남여자고등학교 2학년 때, 계속 하던 배구를 그만두고 서예를 시작했다. 친구가 쓴 글씨를 보고 반해, 무작정 친구가 다니는 서실에 나갔다. 방학 때만 서실에 다녔지만, 고등학생 시절 추억에는 늘 서예가 빠지지 않는다.

“집에서 심부름해서 용돈을 벌어서 서실에 다녔던 것 같아요. 대흥동에 있는 서실에 다녔는데 대전천에서 서예 담요를 빨았던 기억이 나요.”

고등학생 때 동춘당문화제에 참가해 상을 받고, 졸업하고 나서는 MBC가 주최한 전국 여성 붓글씨 대회에 충남, 한글 대표로 나간 적도 있다. 2박 3일 합숙하며 방송한 기억이 지금까지 남았다. 전국에서 모인, 서예 대가라고 할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인순옥 서예가는 그저 가슴이 떨렸다.

대학교에 갈 생각은 하지 않고 글씨를 썼다. 서울에 다니며 서예를 배웠고, 서예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사군자도 배웠다. 종일 붓을 들고 있어도 부족함을 느끼던 때였다. 차편 때문에 수업을 온전히 다 들을 수 없어도, 일주일에 한 번, 꼭 수업을 들으러 서울로 향했다. 다른 사람이 쓰고 그리는 걸 보는 것 자체가 공부였다.

1978년과 1979년, 2년 연속 국전에 한글 서예로 입선했다. 인순옥 서예가가 스물여섯, 스물일곱 살 때였다. 당시로는 일찍 국전에 입선한 것이다.

생활 속에서 폭넓게 공부하며


어떤 특별한 목적도 없이, 그저 좋아서, 끌려서 시작한 서예와 잠시 멀어진 적도 있었다. 여러 대학교 서예 동아리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3년쯤 하다가 가르치는 일에도 염증을 느꼈다. 여전히 서예와 그림에 관한 갈증이 있었지만, 더 공부하고 싶어도 마땅한 자료가 없어 답답했다. 그즈음, 국립대만사범대학 미술과에 입학하게 됐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에 거의 7시간씩 수업을 들었다. 다른 문화, 다른 언어 때문에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했지만, 1년쯤 지나며 귀도 뜨이고 공부에도 점점 적응해 갔다. 대만에서 공부하는 동안에 배울 수 있는 것은 전부 배우자고 생각했다. 2학년 때 분과하는데, 서예과가 없어 중국화를 선택했다. 대만에서는 국화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글씨 쓰는 데만 집중했다면, 대만에서는 생활 속에서 공부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제가 작업실을 두지 않고 집에서 작업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대만 교수들 보면, 자기 집에서 작업을 해요. 그 사람들은 자신이 예술가라고 티를 내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 예술이 젖어들어 있어요. 그런 자세를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지금 인순옥 서예가가 따로 작업실을 두지 않는 이유도 대만에서 배운, 생활 속에서 예술을 대하는 자세가 몸에 뱄기 때문이다. 인순옥 서예가는 대만에서 폭넓게 배우고 열심히 자신을 갈고닦았다.

“창작보다는 폭넓게 공부하고 연습하는 과정이었어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가서도 창작은 못 했어요. 교수님들이 창작은 마흔 이후에 하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저도 그 말씀에 동감했고요. 근본, 뿌리가 튼튼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순옥 서예가는 대만 유학으로, 자신의 작품세계와 인생이 풍요로워졌다고 말한다. 폭넓게 공부하며 가능성을 찾았고, 인생을 함께할 배우자도 대만에서 만났다.

조용히 행복을 찾는 법
대만에서 돌아와 대전에 정착했다. 돌아오자마자 대전문화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지금은 신성동 문화센터에서 15년째 강의하고 있다. 인순옥 서예가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 첫째는 서예가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즐기라는 말을 많이 해요. 잘 안 된다고 스트레스 받을 거면 하지 말라고요. 즐기지 못하고, 스트레스만 받고, 잘하지도 못하면 의미 없잖아요. 가장 중요한 게 즐기는 거예요. 그 이상 하고 싶다면 죽을 만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인순옥 서예가에게 글씨 쓰고 그림 그리는 것은 오로지 자신을 위한 일이며, 일상에 맞닿아 있다. 심오한 철학이나 거창한 구호 없이 일상의 소소한 느낌과 아름다운 풍경을 격조 있게 표현하고자 한다.

“집에 제 작품이 한두 개밖에 없어요. 작업하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해요. 연습한 것도 거의 버리고요. 제가 남기는 걸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작업할 때 좋으니까 남기지 않아도 괜찮아요.”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은 언제나 뒷전이다. 학생들에게도, 공모전이나 단체전에 힘쓰는 것보다, 스스로 즐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강조한다. 인순옥 서예가는 한 해에 단 두 번, 보문연서회전과 대전광역시미술대전에 참여한다.

첫 개인전은 작년에 열었다. 서예나 문인화가 아닌, 히말라야에 올라 스케치한 것들을 모아 전시했다.
“부담이 없었어요. 스케치하면서 즐거웠고 남한테 보여줘도 좋겠다 싶었어요. 스케치로 개인전 했다고, 글씨 쓰시는 선생님들께 혼이 나기도 했죠.”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글씨와 그림으로 자신을 갈고닦는 것엔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매일 임서하고 틈틈이 스케치하며 조용히 그리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20대에 치열하게 노력했던 시간은 지금껏 붓을 드는 데 원동력이 되었다.

자연과 닮은 글씨, 그대로 자연인 글씨


“처녀 때, 12월 31일이었어요. 덕유산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도중에 눈 위에서 잤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그 설원을 봤는데, 두려운 게 하나도 없다고 느꼈어요. 맘껏 살아보리라고 생각했어요. 힘이 충만했어요.”

인순옥 서예가는 오래전부터 마음이 어지러울 때 산을 찾았다. 생동하는 산의 기운은 글씨를 써내려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인순옥 서예가는 산에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 기운은 고스란히 글씨와 그림을 통해 나온다. 인순옥 서예가가 쓰고 싶은 글씨 역시 자연스러운 글씨, 자연 안에 있는 글씨다.

“요새 스케치를 많이 해요. 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그려요. 작년에, 에베레스트에 오르니 회색, 흰색, 파란색, 세 가지 색깔만 있었어요. 수묵화 같은 그 풍경도 스케치로 담았어요. 내가 걷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만큼,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안 나는데, 쉴 때는 꼭 붓을 꺼내서 스케치를 했어요.”

산에 오르는 것이나, 글씨를 쓰는 것, 그림 그리는 것이 인순옥 서예가에게는 모두 한가지다. 이것들은 인순옥 서예가의 삶에 스미며 삶 그 자체를 이룬다.

“이제서야 글씨가 조금 보여요. 이제야 어떤 작품을 해야 할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임서하고, 책 읽으며 갈고 닦아야 해요. 금방 눈앞에 보이는 것에 치중하지 않으려 해요. 열심히 노력해서 내년이나 내후년쯤에는 글씨로 개인전을 할까 해요.”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충청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