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이성현 기자] 충남대학교는 약학대학 정한영 교수 연구팀이 한양대 연구팀과 장출혈성 대장균(EHEC) 감염 시 발생하는 치명적인 혈전 합병증의 원인이 기존에 알려진 ‘시가독소’가 아닌 ‘RTX 계열 독소(EhxA)’에 의한 적혈구의 변형에 있음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이번 연구는 감염성 질환 및 혈액학 분야의 난제를 해결한 획기적인 성과로 인정받아 세계적인 과학 저널 사이언스를 발행하는 미국과학진흥협회의 국제 학술지 ‘Science Advances’에 이달 6일 온라인판으로 게재됐다.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은 심각한 경우 용혈성 요독 증후군(HUS)과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이어지는데 지난 수십 년간 학계에서는 이를 ‘시가독소’가 신장과 혈관 내피세포를 손상시켜 발생한다는 ‘혈관 중심’의 이론으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이 이론만으로는 환자에게서 급격하게 발생하는 거대 혈전과 적혈구 파괴 현상을 온전히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정 교수팀은 이러한 기존 학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시가독소가 아닌, 그동안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RTX 계열 독소(EhxA)’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유전자가위(CRISPR-Cas9) 기술로 EhxA 독소 유전자를 교정·제거한 균주와 정제된 독소 단백질을 비교 분석한 결과 EhxA 독소가 적혈구에 칼슘 통로(Pore)를 뚫어 세포 내 칼슘 농도를 급격히 높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과정에서 적혈구는 정상적인 원반 모양을 잃고 가시형(Echinocyte)이나 구형(Spherocyte)으로 기형적인 ‘형태 리모델링(Remodeling)’을 겪게 되며 동시에 세포막의 인지질(PS)이 밖으로 노출돼 ‘응고 촉진 상태’로 전환됨을 입증했다.
연구팀은 동물(Rat) 모델 실험을 통해 EhxA 독소가 없는 균주에 감염된 쥐에서는 혈전이 거의 형성되지 않은 반면 독소를 보유한 균주에 감염된 쥐에서는 적혈구 변형과 함께 혈관을 막는 치명적인 정맥 혈전이 다량 생성되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감염성 혈전증의 원인이 단순한 혈관 손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균 독소에 의해 변형된 적혈구가 직접 혈전을 유발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결과다. 이번 연구는 질병의 발병 기전을 기존의 ‘혈관 중심’ 관점에서 ‘혈액, 특히 적혈구 중심’으로 확장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특히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차별성은 장출혈성 대장균뿐만 아니라 비브리오 패혈균 등 다양한 그람 음성 병원균들이 공통으로 보유한 ‘RTX 계열 독소’가 유사한 방식으로 혈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일반화된 원리(Generalization)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일 균주에 국한된 발견을 넘어, 다양한 감염성 질환에서 나타나는 혈전 합병증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제어할 수 있는 열쇠를 쥐게 된 것이다.
정한영 교수는 “이번 연구는 지난 수십 년간 정설로 굳어진 시가독소 중심의 해석을 뒤집고, 적혈구 자체가 독소에 의해 혈전 형성의 주체가 됨을 명확히 밝혀낸 데 큰 의의가 있다”며 “특히 RTX 계열 독소는 여러 병원균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만큼 향후 패혈증 등 다양한 감염 질환의 합병증 예방과 치료를 위한 새로운 표적 치료제 개발 및 바이오마커 발굴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