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와 사람 그리고…
버스와 사람 그리고…
  • 글_사진 성수진 사진제공 대전터미널시티
  • 승인 2014.01.1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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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복합터미널, 버스와 문화가 만난다

언제부턴가 ‘복터’라는 단어가 생겼다. ‘복터에 간다.’라는 말은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라는 뜻도 되지만,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시러 간다.’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복터’는 대전 동구 용전동에 있는 대전복합터미널을 이르는 준말이다. 최근 들어 ‘복터’의 역할이 늘고 있다. ‘복터’는 버스를 타는 곳,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곳, 온갖 것을 쇼핑할 수 있는 곳에서, 공연을 보러 가는 곳, 전시를 보러 가는 곳이 되었다. 말 그대로 ‘복터’는 하나의 거대한 복합문화공간이다. 대전복합터미널, 이곳에 새로운 문화 바람이 불고 있다.
환한, 대전복합터미널의 탄생
꽃무늬 티셔츠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아빠. 선글라스에 가려 눈은 보이지 않지만, 양쪽이 올라간 입꼬리가 활짝 웃는 얼굴을 떠오르게 한다. ‘저쪽으로 가자!’ 아빠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은 대전복합터미널이다. 아빠가 끄는 캐리어에 아들이 올라탔고, 엄마와 딸은 손을 잡고 웃으며 걷는다. 대전복합터미널 동관 입구 바로 앞에 설치된 박대규 작가의 <가족여행>이다. <가족여행> 앞으로 사람들이 지난다. 찬바람 부는 날씨에 반팔 티셔츠를 입은 <가족여행>의 가족이 어색해 보이기도 하지만, 가족의 신나는 표정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대전 동구 용전동에 있는 대전복합터미널은, 대전고속버스터미널과 대전동부시외버스터미널을 통합해 2011년 12월에 준공했다. 대전터미널시티는 대전복합터미널 앞 공간을 조성하며 광장의 개념을 염두에 두었다.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밝은 광장 모습을 계획했고, ‘여행을 떠나자’라는 주제로 박대규, 설총식, 옥현숙, 전범주 작가의 조각 작품을 대전복합터미널 주변에 설치했다.

대전복합터미널 동관 앞과 서관 앞에 각각 놓인 설총식 작가의 <자리만들기-바라보는이>, <Two Walkers>는 원숭이와 곰을 위트 있게 의인화했다. 동관 오른편 앞에 있는 옥현숙 작가의 <대전으로 가는 여행>은 자동차와 버스가 모이는 대전복합터미널을 상징하고, 건물 한쪽에 설치된 전범주 작가의 <춘하추동>은 스테인드글라스용 유리를 재료로 4계절을 표현했다.

대전복합터미널 앞 광장과 건물 일부가 하나의 로드 갤러리가 되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제자리를 지키는 작품들은 대전복합터미널의 한 상징이다. 대전복합터미널에 들르는 이들은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고 즐거워한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 광장에 눈을 이끄는 즐거운 ‘거리’가 생겼다.

음악이 발길을 붙잡는 곳
사람들은 버스를 타러, 영화를 보러, 쇼핑을 하러, 밥을 먹으러 대전복합터미널에 모여들었다. 복합터미널에 모이는 사람은 평일에는 7~8만 명, 주말에는 10만 명에 이른다. 주말 저녁이면 더 북적대는 대전복합터미널에 언제부턴가 음악이 들려왔다.

대전복합터미널 앞 광장 한쪽의 무대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대전터미널시티가 직접 공연자를 섭외하기도 하고, 무대에 서고 싶은 이들이 무대에 서기도 한다.

대전터미널시티 이영민 부회장은 “터미널이 많은 대전 시민을 모으는 장소인 만큼 공공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터미널에 들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라며 대전복합터미널 앞 광장에 무대를 세운 이유를 설명했다. 더불어 “조금의 수준만 있으면 누구라도 협의 후에 대전복합터미널 광장 무대에 설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여러 차례 공연을 벌이면서, 그저 스쳐 지났던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더 오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작년 한가위에는 터미널과 가장 잘 어울리는 형태의 공연도 열었다. 대합실 안에 무대를 만들어 한가위 음악회를 연 것이다. 전통 음악에서부터 가페라까지 버스와 승객이 함께 어우러진 공연이었다.

말끔한 건물과 함께 새로 부여된 대전복합터미널의 역할로 주변 동네가 환해졌다. 밤이면 더 으슥한 느낌을 자아내는 곳, 온갖 유흥업소가 즐비했던 주변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옷을 벗은 아가씨가 손님들을 반겼던 간판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었다.

다리에 그림이 걸리고
12월 16일, 대전복합터미널의 얼굴이 하나 더 생겼다. 대전복합터미널 동관과 서관을 잇는 다리에 DTC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유근영, 김동유, 오윤석, 홍상식, 권영성 작가의 작품이 DTC갤러리에 걸렸다. DTC갤러리의 문을 여는 전시는 ‘대전다큐멘타 2013 이미지의 정원’이다. 대전 지역에서 꾸준히 작품 활동 하면서 자신의 조형어법을 탐구해 온 여러 세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유근영 작가는 <The Odd Nature>시리즈로 자신만의 색으로 심상 이미지를 찾는 작가다. 김동유 작가는 그레고리 펙의 얼굴로 오드리 헵번의 얼굴을 표현하는 등 이중 이미지 기법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다. 오윤석 작가는 캔버스를 오리고 꼬아 캔버스가 지닌 평면성을 부정하고 입제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홍상식 작가는 속이 빈 빨대를 재료로 다양한 형상을 만들었다. 권영성 작가는 지도가 지닌 안내성을 차용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안내하듯 표현했다. 다섯 작가가 만든 다양한 이미지가 모여 ‘이미지의 정원’을 만들었다. 다섯 작가는 각기 다른 개성으로 공간에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DTC갤러리 황찬연 큐레이터는 “대전 지역 미술을 정리하는 전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대전 지역에 어떤 작가가 있는지 알 수 있는, 미술사에서 어떤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했다.”라고 전시 취지를 설명했다.

누구나 와서 즐기는 열린 갤러리
대전복합터미널 동관에서 서관으로, 서관에서 동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많은 사람이 다리 양쪽에 걸린 작품에 시선을 둔다. 잠시 흘끗 보는 사람, 작품 앞에 서서 오랫동안 시선을 두는 사람…. 작품들 앞으로 다양한 사람, 다양한 시선이 오고간다.

대전터미널시티는 지난 8월, DTC갤러리와 DTC의 역사를 전시하는 DTC역사관을 조성하기로 결정했고 그때부터 전시를 기획해 지난 12월 16일, DTC갤러리와 DTC역사관을 개관했다.

DTC갤러리는 관심 있는 사람이 찾아와 작품을 감상하는 일반 갤러리와 성격이 다르다. 작품에 관심이 없더라도 다리를 지나는 이라면 어쩔 수 없이 작품을 보게 된다. 일상에서 예술의 향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 DTC갤러리의 매력이다.

대전터미널시티 이영민 부회장은 “예술이 생활에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립미술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작품을 생활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이라며 DTC갤러리를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또, “대전 작가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작가들을 만나면 전시 공간이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공간을 만들어 작가들을 후원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황찬연 큐레이터는 “우리나라에는 보통 사람들이 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이 없다. DTC갤러리가 자연스럽게 문화, 예술을 접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많은 사람이 찾는 공간인 만큼 대전터미널시티는 DTC갤러리를 조성하는 데 안전성에 신경을 썼다. 관객을 보호하며, 작품을 보호하는 데 주력했다.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놀 수 있는 곳, 자유롭게 사진 찍고 공간과 시간을 기념하는 곳, 대전터미널시티는 그런 DTC갤러리를 꿈꾼다.

골목 구석까지 갈 수 있는 버스처럼
DTC갤러리를 보는 관객 혹은 승객, 사람들은 “신기하다.”, “재밌다.” 등 새 공간이 생긴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DTC갤러리에서 전시하는 작가들도 새 공간을 환영했다. 유근영 작가는 “다다익선”이라며 “전시 공간이 많이 생기면 생길수록 좋다.”라고 말했다.

평소에 미술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 작품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 작가들이 DTC갤러리를 환영하는 이유였다. 전시에 참여한 모든 작가가 많은 사람이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처음 생긴 공간인 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김동유 작가는 “작품이란 것은 찾아가서 봐야 하는 측면이 있다.”라고 전하며 “하지만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의미 있다. 이러한 공간이 필요하며 활성화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DTC갤러리가 맡은 역할이 많다. 황찬연 큐레이터는 “DTC갤러리가 신진 작가에게 전시장을 제공하고 홍보 자료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할 것이며 꼭 대전에만 국한하지 않고 현대미술의 맥을 짚는 전시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DTC갤러리는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려 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많은 이가 편안하게 즐길 수 있으면서도 중요 논점을 잊지 않는 전시’를 하는 게 DTC갤러리의 목표다. 현재 진행하는 ‘대전다큐멘타’는 연례 기획전이다.

버스는 기차와 다르다. 기차보다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없고 기차보다 빠르지도 않지만, 더 좁은 길로 더 구석까지 갈 수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호두과자 한 봉지를 사 먹을 수 있는 것도 버스의 재미다. 구석구석에 갈 수 있는 버스처럼, 대전복합터미널 구석구석 문화가 스몄다. 그 문화는 휴게소에서 사 먹는 호두과자처럼 색다른 재미를 준다.

버스만 오고 가던 터미널에 문화가 머문다. 스쳐 지나며 오고 가기만 했던 사람들이 시간을 두고 터미널에 머문다. ‘복터’에 버스와 사람, 그리고 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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