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이성현 기자] 국내 연구진이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환경호르몬과 생활 속 화학적 스트레스가 체내 최전방 방어군인 NK세포(자연살해세포)를 어떻게 병들게 하고 무력화하는지 분자 수준에서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한국연구재단은 부산대학교 문유석 교수 연구팀이 환경호르몬 교란 등 만성적인 환경 스트레스 수용체 자극에 따른 종양 면역 반응을 분석해 에너지 활성이 소진되고 부적응적으로 변질된 NK세포가 암 조직에 지배적으로 유입·축적돼 결국 종양 제거에 실패하는 분자적 과정을 규명했다고 8일 밝혔다.
연구팀은 암세포에서 유래된 인자인 Gdf15가 환경호르몬과 결합해 세포 내 신호를 전달하는 ‘아릴탄화수소수용체(AhR)’ 신호를 촉진하고, 이를 통해 종양 면역 미세환경을 재구축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종양 내로 유입된 NK세포가 지속적인 AhR 자극을 받으면 초기에는 항암 활성을 나타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전자 수준(GATA2 억제 등)에서 분자 마커가 변하며 에너지 소진과 유전적 손상이 상승하는 ‘부적응 변질’ 과정을 겪게 된다.
결과적으로 연구팀은 주름지고 무력해진 ‘불량 NK세포’들이 암 조직 내에 지배적으로 축적되면서 암세포 제거 능력을 상실하고 오히려 종양의 재발과 악화를 예측하는 지표가 된다는 점을 임상 데이터와 동물 모델을 통해 입증했다.
이번 연구는 단순히 암세포 자체의 유전적 변이에만 집중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현대인의 생활 습관과 환경적 요인이 암 치료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 메커니즘으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저농도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환경 독성 물질과 암 면역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연구팀은 수년간의 반복 실험 끝에 NK세포를 부적응 상태로 몰아넣는 구체적인 병태발현 경로 지도를 완성했다.
환경호르몬 수용체가 암 면역을 억제하는 ‘스위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제시된 ‘면역 부적응(Maladaptation)’ 개념은 향후 환경과학 및 의학계에 다양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의 화학물질 위해성 평가가 주로 생존율이나 장기 손상 등 급성·만성 독성에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면역계에 미치는 미세한 영향까지 정밀하게 측정하는 표준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될 수 있다.
또 특정 지역이나 산업군 주민들의 환경 스트레스 인자가 암 면역력에 미치는 위해성을 예측하는 진단 모델 구축도 가능해진다.
연구팀은 향후 실제 환경처럼 수많은 화합물이 섞여 있는 ‘복합 노출(Chemical Mixture)’ 상황에서 발생하는 수용체 신호 증폭 시너지 효과를 규명하기 위해 추가적인 환경 독성학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계획이다.
아울러 임상 현장과 산업계에서 누구나 쉽게 NK세포의 부적응 상태를 측정할 수 있도록 분석법을 표준화하고간이 진단 키트(Point-of-care) 개발을 병행하여 실용화를 앞당기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문유석 교수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환경적 요인과 종양 내 면역 불량 사이의 인과관계를 정밀하게 추적한 결과”라며 “이번 연구는 단순히 NK세포의 숫자를 늘리는 기존 치료법의 한계를 넘어, 환경 스트레스에 의한 NK세포의 변질을 막거나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방식의 차세대 면역 항암제 개발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