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유황온천으로 유명한 도고온천에서 도고천을 따라 서쪽 방향으로 이동하면 선장면과 도고면을 잇는 선도교가 나온다. 다시 선도교를 좌측으로 휘감아 큰 도로를 따라 1.2km쯤 가면 돈포2리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입구(신원)에는 ‘행복한 마을 돈포2리’라는 표지석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돈포2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돈포리(頓串里)와 포남리(浦南里)를 병합해 돈포2리(돈포1리 포함)가 되었고, 열장원, 신원, 개롱말, 새원장 등 4개의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락명칭을 분석해 보면 삽교천 간척사업으로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흔히 주소를 돈포리라고 하면 둔포면 둔포리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분들에게는 원래 이곳은 농지가 많은 지역이라 가을 추수가 끝나고 추곡수매로 마을 이장이 돈을 포대에 넣어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마을 명칭이 돈포리가 되었다고 설명하면 쉽게 이해하곤 했다.
마을 중심지는 신원인데 예전에는 방앗간이 있어서 벼를 찧느라 큰 소음과 함께 주민들이 빈번하게 오갔지만 지금은 없어지고 빈 공터만 남아 있다. 게다가 집집마다 연결되었던 실핏줄 같은 자그마한 길들이 모두 끊어지고 잡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서 마을 인심과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나게 한다.
아침에는 가끔 이른 시간대에 마을 이장이 방송을 한다. 딩동댕! “마을주민께 알려 드립니다. 우리마을에 사시는 ○○○님께서 오늘 새벽 돌아가셨습니다. 빈소는 ○○○장례식장입니다. 이상 마을회관에서 알려 드렸습니다.” 딩동댕!
이장의 새벽방송이 마을의 평온한 일상에 잠시 불편함을 불러 오지만 마을사람이 사망하면 예전처럼 집단으로 장사를 지내던 공동체 의식이 사라졌고, 돌아가신 어르신이 살던 집이 빈집으로 남게 되어 더욱 쓸쓸함을 자아낸다.
신원에서 조금 떨어진 새원장(자연부락)은 1970년대까지 20여 가구이상이 농사를 짓고 살던 마을인데 1980년대 인천지역 주안으로 집단이주하여 현재는 몇 집만 남아 있다. 최근에는 얼굴도 알지 못하는 몇 집이 대궐집 같은 집을 짓고 마을에 들어와 신도시가 형성되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하지만 일부 전입자들이 마을사람들과 자주 어울리지 않고 이방인 처럼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새로운 주인으로 교체되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앞으로 이 분들이 진정한 마을주민으로 자리 잡을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마을 외곽에는 모두 삽교호로 둘러싸여 있다. 지금은 담수호가 되어서 농업용수로 활용되고 있지만 1970년 삽교천 제방이 바닷물을 막기 전까지 여름철 장마철에 마을에 홍수를 일으키는 주범이었다. 삽교천의 중심에는 선장포 노을공원이 연결되어 있는데 주변 호수가에 주말이면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다.
삽교천 제방을 따라가다 보면 아버지가 농사 짓는 서리태 콩밭이 있다. 원래 이 밭에는 참깨를 심었고, 5년 전에는 참깨 관리가 어려워지자 관리가 쉬운 들깨로 교체했다. 그리고 다시 3년 전에는 이것도 힘들어서 다시 서리태 콩으로 작물을 교체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의 방앗간은 사라지고, 마을길의 풀도 무성히 자라고 있으며, 익숙했던 주민들의 빈자리도 하나둘 늘어 가고 있다. 밭에 심는 농작물도 아버지 노쇠의 정도에 따라 변화가 일어 나고 있다. 오늘도 돈포2리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