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햇살을 보여주는 창 <새벽, 국경에서>
따가운 햇살을 보여주는 창 <새벽, 국경에서>
  • 글 이수연 사진 정종대
  • 승인 2014.03.2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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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가 만난 사람_배기원 감독

중국과 만주의 국경에 걸친 고비사막, 그 사막에서 한 소녀가 만주로의 탈출을 시도한다. 힘겹게 도착한 그곳에서 소녀는 군인들에게 붙잡힌다. 소녀의 몸에는 중국에서 겪은 삶의 흔적이 곳곳에 남았다. 온몸의 멍 자국과 상처, 누구를 통해 소녀에게 왔는지 모를 배 속의 아기…. 소녀는 ‘나는 조선족’이라는 중국어 말고는 입을 열지 않는다.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소녀 때문에 군인들은 중국에서 머무는 한국어 선생 김 씨에게 전화를 건다.

▲ 배기원 감독


영화의 배경은 2008년, 당시 중국에는 수많은 북한주민이 경계를 넘었다. 자의이기도 했고, 타의이기도 했다. 세상에 알려지면서 문제 된 것 중 하나가 인신매매였다. 경계를 넘어온 여성들은 인신매매로 몸과 마음을 다쳤고, 견디다 못해 또다시 도망치는 것을 반복했다. 영화 속 한국어 선생인 ‘김 선생’이 받았던 전화 한 통은 <새벽, 국경에서>의 시나리오를 쓴 박상배 작가가 받았던 전화이기도 했다.

한 통의 전화가 이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에서처럼 여자가 탈북한 것인지 확인 좀 해달라는 군인의 전화였대요. 박상배 작가도 어안이 벙벙하며 전화를 받았다고 해요. 영화 속 소녀처럼 살려달라고 똑똑히 말한 것은 아니었대요. 얼버무리면서 이야기하다가 전화가 끊어졌나 봐요. 계속 다시 통화하려고 시도했는데, 통화가 되지 않았던 거죠. 박 작가가 그 이야기를 해주는데, 띵하더라고요. 정말 탈북자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느낀 거죠.”

뉴스에서 접할 때보다 충격이 더했다. 탈북자 문제를 공부하고,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직접 그 일을 겪은 박상배 작가에게 시나리오를 부탁하고, 영화 제작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제작비 때문에 중국에 갈 수 없으니 중국과 만주의 경계, 고비사막을 그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한국에서 연출할 수 있는 곳을 찾다 충남 태안 원북면 신두리 해안사구를 찾았다. 중국어가 가능한 배우를 찾는 것도, 장소를 섭외하는 것도 어려움이 이어졌다. 섭외했던 장소가 갑자기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영화 촬영 이틀 전이었다. 가까스로 다시 장소를 섭외하고, 무사히 영화를 찍었다. 잘 만들고 싶었다. 정말 잘 만들어서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다. 많은 사람 앞에 선보이는 것이 이 영화가, 이 이야기가 그냥 사라지지 않는 길이었다.

수많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외면하기만 한다
전화기를 붙잡고 소녀는 말한다. 중국에서 남자들에게 끌려 다니다 도망쳤다고, 만주로 가야 한다고. 중국 군인들은 갑자기 전화를 붙잡고 애원하는 소녀에게 전화기를 빼앗는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소녀의 다리 사이로 피가 흐른다. 소녀를 보며 중국 군인들은 북으로 보내줄 테니 안심하라고 말한다. 전화를 끊은 김 선생은 침대 옆에 놓인 술을 마신다. 그리고는 블라인드로 방 안에 쏟아지는 햇볕을 가리고 침대에 눕는다.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이 그렇게, 누군가의 블라인드에 가려진다. 관심을 두고 생각해야 할 문제 대부분이 그렇게, 지나가 버리고 만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의 수많은 사건을 수많은 사람이 그렇게,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것 같았다. 배기원 감독은 이 사건을 접하며 느꼈던 떨림과 울림을 영화를 보는 사람들 또한 느꼈으면 했다.
“소재는 탈북 소녀지만, 꼭 탈북이라는 것에 갇히지 않고 바라보셨으면 해요. 탈북 문제 말고도 세상에 수많은 아픔이 있잖아요. 누군가의 아픔이 창을 통해 내 눈을 따갑게 하고 불편하게 할 때가 있잖아요. 그 창은 미디어나 매체, 혹은 경험이 될 수도 있죠. 그런 것들을 통해서 접할 때, 외면하거나 무심하게 넘기지 않았으면 해요. 그렇다고 어떤 행동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에요. 생각해 봤으면…. 영화를 보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움직였으면 해요.”

영화를 꿈꾸던 소년이 있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는 바람은 창작하는 사람의 공통된 바람 중 하나일 것이다. 배기원 감독도 그런 바람을 품고 영화를 만든다.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마음에 심어주는 영화,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움직이고 싶다.
중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다. 종종 영화관을 데리고 가곤 했던 아버지를 따라 영화를 마냥 좋아했다. 조금 자라고는 친구들 손잡고 영화관을 기웃거렸다. 소년이 다녔던 영화관은 지금도 대전역 앞에 있는 아카데미 극장, 사라진 동보극장, 연흥극장, 신도극장 등이었다. 멀티플렉스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던 때였다. 그때 청소년은 보지 말아야 한다고 붉은 선을 그어 놓았던 영화도 많이 봤다. 영화는 그렇게 소년의 추억에 촘촘히 새겨졌다.

스무 살, 아버지는 청년이 멀리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누나 셋에 막내아들이었던 소년은 아버지에게 참 귀한 아들이었다. 그때까지도 소년은 영화를 꿈꿨다. 추억으로만 영화를 끝내고 싶지 않았던 소년은 영화를 배우러, 서울로 가고 싶었다. 아버지의 반대로 소년은 대전에 머물렀다. 어영부영 학교에 다니다 입대하고, 제대 후 직장에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자꾸, 갈증이 났다. 아버지에게 두 개의 카드를 내밀었다. 다시 서울로 진학하는 것과 외국에 나가는 것이었다. 그때 청년의 나이가 스물여덟이었다. 아버지는 차라리 국내에 있으라며, 소년의 서울행을 허락했다.

늦깎이 대학생이었던 소년은 대부분 학교 시청각실과 편집실에서 보냈다. 사회에서도 집에서도 막내로만 생활했기에 제일 큰 형 역할을 해야 하는 학교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니 서른이었다.

영화를 꿈꾸는 청년이 있다
아버지를 따라 영화관에 다니던 소년은 어느새 마흔을 넘겼다. 대학졸업 후 직장에 다니고,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다. 단편 영화 몇 편을 만들어 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했다. 그러다 2009년 다시 대전으로 내려왔다. 부모님 때문이었다. 대전에 와서도 하나둘, 영화를 만들었다. 낮에는 직장인으로 밤에는 영화감독으로 밤낮의 이름을 바꿨다. 대전에서 영화 만드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일단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 어려웠고, 제작비를 만드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전주나 부산 같은 지역보다 독립영화가 살아남기는 참 힘든 구조다.

“매년 대전광역시에서 찍히는 영화가 생각보다 많아요. 모두 상업영화죠. 대전문화산업진흥원에서 영화제작지원을 하지만, 독립영화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대전에서 영화 만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다 서울로 가죠. 그건 다시 대전에서 영화 찍어보려고 하는 저 같은 사람이 지역에서는 연출부 스텝을 구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져요. 또 막상 그렇게 찍힌 영화를 보면 저 배경이 대전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느 도시와 다름없는 모습이에요. 대전이라는 도시의 색이 많이 나타나 있지 않은 거죠. 안타까워요. 계속 대전에서 영화 촬영하면서, 대전이라는 도시 색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영화도 찍어보고 싶어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행복
지난 2월 7일에는 대전문화산업진흥원에서 <새벽, 국경에서>가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굿펀딩’으로 조금씩 제작비 보탠 사람들을 초대하고, 출연 배우, 감독, 제작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박상배 작가까지 많은 사람이 자리를 지켰다. 배기원 감독이 ‘배 실장님’일 때 함께 일하는 동료 한 명도 참석했다. 항상 낮에만 배 감독을 보던 동료는 직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활짝 웃는 모습 처음 본다고 말하며 자리를 떠났다. 그러고 보니 참 행복했다. 하나의 세계를 상상하고, 상상한 것을 그대로 눈앞에 구현하고, 구현한 것을 모아 하나로 묶었다. 그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공감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모든 과정이 ‘행복’이었다.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부터 즐겁고 행복해요. 글쎄, 괴롭기도 하죠. 힘들고, 고된 시간이니까요. 그런데 행복해요. 이런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도 뿌듯함이고, 이렇게 조금씩 영화를 통해서 경계가 허물어졌으면 하는 것도 바람이에요. <새벽, 국경에서>는 이제 조금 더 다듬어서 앞으로 있을 영화제마다 출품할 예정이에요.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영화제도 계속 출품해야죠. 더 많은 사람이 봐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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