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학교에 갔더니 이제 알아보는 제자도 없습니다. 2년 반 사이 흰머리가 부쩍 늘었어요. 그래도 뿌린 씨앗들 윤곽이 하나
둘 나타나니 힘이 솟습니다.”
한밭대 경영학과 박준병 교수(48)는 2004년 4월, 대전전략산업기획단 단장으로 2년간 파견 근무를 발령받고 시청으로 일터를 옮겼다.
올해 초 약속했던 임기는 끝났지만, 그동안 주도적으로 벌여 온 사업들이 탄력을 받고 있어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기획단의 기본 사업비는 10억원. 여기서 인력비 6억원을 제외하면 빠듯한 살림이다. 그럼에도 박 단장은 4대 전략산업과 4대 신성장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해 시장활성화를 유도했고, 대덕특구 탄생을 위한 기초작업을 마무리했다. 뿐만 아니라 20억 상당의 지역혁신특성화사업이나 30억이
투입되는 전략산업인력양성사업 같은 정부 과제를 과감히 끌어와 성공 모델로 정착시켰다. 학문에 대한 열의를 뒤로 한 채, 2년 반 동안 남다른
사명감으로 대전 산업 발전을 위한 갖가지 디딤돌을 제시한 것이다.
이 모든 노력에 대한 박준병 단장의 이유는
간단하다. “대전 산업 풍토가 연구개발에 그치지 않고 시장으로 활성화하려면, 기업을 중심으로 대학과 연구소의 인·물적 자원을 네트워크화 해,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대전전략산업기획단의 출발과 기본 역할
서울과 수도권은 가만히 있어도 고급 인적 자원이 몰린다. 산업과 대학, 연구소, 정부기관이 손을 잡아 시너지
효과를 내는 산학연관의 경우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풍부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반면 지방의 산학연관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공무원은 이동이 잦아 책임감이나 전문성이 부족할 수 있고,
대학 교수는 학생들 위주 교육에만, 연구소 연구원은 자체 연구개발에만 주력한다.대전에만도 벤처기업이 800~1,000개나 있는데 특별한 장비나
연구 인력이 필요할 때, 대학이나 연구소를 선뜻 찾기 힘들다고 밝힌다. 많은 벤처기업들이 독립된 섬으로 존재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만해도
독립된 섬과 같은 형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업간 네트워크로 잘 엮여 있으면 경영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원가경쟁 시대가 아니다. 지식 혁신 스피드 아이디어가 경쟁의 원천이 되고 있다. 예로, 울산공업단지의 경우 생산공정라인은
뛰어나지만 연구개발 부분은 취약하다. 대덕밸리는 연구개발 인력은 뛰어나지만, 생산구조는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를 묶어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 발전시키는 ‘혁신 클러스터 사업’이 세계적인 추세로 떠올랐다. 보다 전략적으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산업자원부는
2003년 수도권을 제외한 13개 지방자치단체에 전략산업기획단을 만들 것을 제도화 했다. 대전시청에 자리잡고 있는 대전전략산업기획단 역시 산업과
대학, 연구소의 가치사슬을 극대화해 시장을 활성화시키자는 취지로 만든 싱크탱크(Think Tank)다. 박사급 인력 총 11명으로 구성되어
IT·BT·부품소재·메카트로닉스를 4대 전략산업으로 삼고 산학연관 네트워크 구축에 힘쓰고 있다.
대전
소재 기업, 대학, 연구소 현황분석 DB 구축
대전전략산업기획단은 우선 지역혁신발전5개년계획을 위한 기초 조사를 실시했다. 대전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도출하기 위한 기초연구를 한
것. 이어 시장을 부흥시킬 수 있는 풍토를 만들고 고용을 늘리는 것을 역할로 규정지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기본 신념을
바탕으로, 전국에서 인적 역량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대전의 기업, 대학, 연구소를 네트워크로 엮어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첫 단계로 2003년 기업, 연구소, 대학의 현황 분석에 돌입했다. 기업은 기본 정보와 보유 기술,
인력 등을 점검했고, 연구소는 장비와 연구원을 조사했으며, 대학의 경우 가지고 있는 장비와 교수, 연구 실적 등을 DB화 했다. 그 다음으로는
대전전략산업발전계획을 수립했다. 기업, 연구소, 대학에 종사하는 인력으로 TF(Task Force)팀을 구성해 장기발전
방향과, 전략산업의 기술로드맵을 만들었다. 3년간 만들어진 이 로드맵은 지금도 꾸준히 수정·보완되고 있다.
기획단이 생각하는 네트워크의 기본 원칙은 시장에 우선권을 주는 것. 연구원, 교수 위주로도 묶을 수 있지만 자칫 연구 위주로 흘러
생산품으로 이어지지 못할 것을 우려했다.
대덕밸리 혁신클러스터 ‘4+4’ 구성도가 탄생한
과정
기획단 인력들은 대전시에 있는 1074개 기업을 방문해 자료를 수집하고 기업 분류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첨단산업에 포함되지 않는 식음료제조 업체 등은 제외하니 700~800개 정도로 추릴 수 있었다. 업종별로 비교적 매출이 높은 기업의
대표들을 직접 찾아가 “산업군을 어떻게 묶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이 과정에서 기업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외국 도시의 사례들을 벤치마킹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스웨덴의 시스타, 중국의 중관촌, 인도의 벵갈로, 이스라엘의
실리콘와디 등 IT·BT 같은 첨단산업이 태동하는 산업단지들을 주목했다.
기획단은 전략산업 업종군을 IT·BT·부품소재·메카트로닉스로 나누고 이들 기업을 중심으로 클러스터 협의회를 만들었다. IT클러스터 협의회는
통신서비스 장치, 통신부품 소재, S/W응용 및 컨텐츠, 반도체 디스플레이, 광통신 및 광응용 업체들로 미니 클러스터가 만들어졌다. BT는
의료, 기반기술, 소재 업체들로 미니 클러스터가 형성되었다. 부품소재의 경우 에너지/전지, 나노/신소재, 정밀화학/환경 기업들로 구성되었고,
메카트로닉스 클러스터협의회는 로봇, 정밀제어계측기기, 기계금속 미니 클러스터로 분류되었다.
여기에 산자부가 주목하고 있는 유비쿼터스, 국방산업, 원자력, 항공우주산업 4개를 신성장산업으로 선정해 함께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14개 첨단 미니 클러스터에 4개 신성장산업 클러스터 협의회를 더해 총 18개 클러스터가 탄생한 것이다. 이들 클러스터는 모두 기업체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사업 경험이 풍부한 기업 대표가 클러스터에 필요한 연구원과 교수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혁신 클러스터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논문을 살펴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 네트워크, 두 번째가 R&D 베이스, 세 번째가
인력공급시스템인 것을 알 수 있다. 대전의 경우 두세 번째는 다른 어느 지역 못지않게 풍부한데 반해, 첫 번째 요소인 네트워크는 취약하다.
앞으로 1~2년 뒤에 18개 클러스터에 속한 800여 기업과 500여 인력 중 반만이라도 적극적으로 활동한다면 성공이라고 본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 클러스터에 대한 운영비가 지원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침 한밭대에서 급여를 받던 터라, 산자부에서 전략산업기획단장 인건비로 책정한 1억원을
융통해 클러스터 사업비로 쓸 수 있었다.
4대
전략산업 클러스터는 진화하고 있다
막상 만들어 놓고 보니, ‘정부 조직에서 만들었네, 시에서 만들었네’ 등 오해하는 눈길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클러스터에 속한 인력들이
오히려 사업 거리를 달라고 입을 벌리는 경우도 많았다. 스트레스로 머리가 하얗게 샐 정도였다.
맘을 굳게 먹고 클러스터 회장들을 만나, ‘클러스터가 필요없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모두들 ‘필요하다’고
답했다. 대답을 들은 뒤에는 지금 현재는 쏟아 부을 돈이 없지만, 앞으로 정부 사업에서 불필요하게 유출되는 돈들을 목적 지향적으로 끌어 모아
보겠다고 설득했다.
이 와중에 부품소재에 속한 정밀화학 미니 클러스터는 한밭대 TIC((Technology Innovation Center,
지역기술혁신센터)와 손을 잡았다. 한밭대로 부터 5천만원의 지원비를 받고 학교 안에 자체 회의실까지 만들어 강사를 초빙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사실 한밭대 TIC는 만들 때부터 부품소재 클러스터의 도움이 컸다. 정밀화학 미니 클러스터의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박사급 인력들을 중심으로 아이디어가 부족해 고민인 울산 정밀화학단지 업체들과 손잡고 ‘초광역 클러스터’를 탄생시켰다.
이미 몇몇 업체의 경우 대전의 기술력과 울산의 생산 능력을 합쳐 해외 수출까지 진행하고 있던 터였다. 지난 3월 대전에서 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전략산업기획단은 첫 사례인 만큼 활동비와 운영비 등을 지원하고 회의 환경을 뒷받침하고 있다.
BT의 경우 3개 미니 클러스터 10여개 업체들이 스스로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하나로 뭉쳐 연구회로 거듭났다. 연구회는 현재, 스스로 시장
지향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다.신성장 4대 산업 중에서는 항공우주 클러스터가 가장 활성화되고 있다. 항공우주
클러스터는 자체적으로 기업인, 교수, 연구원들이 주주가 되어 2억5천만원을 들여 (주)ST클러스트라는 기업 법인을 세웠다. (주)ST클러스트는
최근 러시아업체와 협력사업을 펼치는 등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충청권
중심의 ‘IT 초광역 클러스트’는 무엇인가
300~400여 개의 기업이 포진하고 있는 IT 클러스터 협의회의 경우 이미 4~5년 전부터 있었던
광 클러스터에 흡수되는 경향을 보이는가 하면, 지난해 하반기에는 ‘대전시가 그동안 BT에 더 신경썼다’는 이유로 시에서 만든 클러스터를
보이콧하기도 했다. IT가 워낙 주요 업종이다 보니 꾸준한 설득 작업이 필요했다. 최근에는 18개
클러스터 외에 초광역 클러스트에도 집중하고 있다. IT 초광역 클러스트의 경우 대전에는 IT부품 업체들이 많고, 충남에는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충북에는 반도체 업체들이 많아 이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올해 연말쯤 충청권 지방자치단체들이 모여 청사진을 제시하는 등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IT뿐만이 아니다. 대전 전체 기업 중 70%가 B2B(Business to Business, 기업간전자상거래) 업체들이다. 최종 소비자
업체가 없기 때문에 대기업과의 물꼬를 트는 일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 울산은 정밀화학이 발달했고, 창원은 메카트로닉스 산업이
혁신적이다. 광주는 광산업, 충남·북은 IT산업이 다른 지역에 비해 강한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대전이 이들 지역과 ‘초광역 클러스트’를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고 나면, 해외 진출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자리잡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대전전략산업기획단은 지난해 7월 공식 출범한 대덕연구개발특구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기초 작업을 진행했다. 기획단은 대덕특구에 클러스터들을
갖다 붙였다. 대덕연구개발특구는 포럼 당 2~3천 만원이 할당되기 때문에 클러스터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대덕연구개발특구 역시
기술 상용화를 위해서는 클러스터와 손을 잡는 게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되었다.
덕분에 국방, 항공우주 클러스터에서 포럼 사업을 할당받을 수 있었다. 전략산업기획단은 대덕특구가 출범하자마자 관계자들을 먼저 클러스터
회장들과 만나게 했다. 과학기술부 역시 대덕특구 출범 1년 전부터 있었던 클러스터들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특구 조직이 없었을 때부터 존재했던
여러 클러스터들을 특구 중심으로 흡수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덕연구개발특구는 기술의 상업화를 위한 노력이다. 계획대로라면 2015년에는 입주 기업 3천개, 외국 연구기관 20개 등이 들어설
전망이다. 30조원에 육박하는 매출액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혁신 클러스터 집합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대전전략산업기획단의 성과
셋
1. 지역혁신특성화사업
산업자원부가 공모한 지역혁신특성화사업(RIS:Regional Innovation System)에
대전전략산업기획단, 한밭대, 카이스트, 충남대 중 한밭대와 카이스트가 탈락하게 되었다. 20억원이 할당된 만큼, 산자부는
전략산업기획단이 한밭대의 ‘제품 디자인 사업’과 카이스트의 ‘스타 벤처 육성 사업’ 등을 함께 안고 갈 것을 당부했다. 워낙 색깔도
다르고 독립된 과제들이 모인만큼, 지난 1년 동안 운영해 본 결과 첫해에 전국 꼴등을 차지해, 사업비 20억원 중 3억원 이상이
깎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밭대 제품 디자인 사업으로부터 후원받은 업체들을 중심으로 하이테크클럽이 탄생하는 등 갖가지 성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해 2차 평가에서는 60점 기준에서 84점을 얻어 지역혁신특성화사업에 탄력이 붙고 있다.
2.
하이테크창업경진대회 올해로 2회를 맞은 대덕밸리하이테크 창업경진대회 역시 전략산업기획단의 핵심
사업이다. 올해는 6월에 행사를 열어 81개 후보 중 13개 신생기업 및 예비창업자를 입상했다. 이들은 자금은 물론 특허출원, 디자인
컨설팅 등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번 2회 대회의 대상은 ‘매직 기술을 이용한 신약 개발’을 출품한 BT 기업 CGK(대표:
김진환)에 돌아갔다. 또 지난해 1회 입상 업체 12개와 올해 13개를 합쳐 총 25개 업체가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업종교류회’에
등록되었다. 내년 하이테크 창업경진대회는 대덕특구와 대전시 공동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3.
전략산업인력양성사업 전략산업인력양성은 산자부로부터 3년간 50억원을 할당받은 사업이다. 대학에서는
보통 교수들이 학생들 위주로 교육하고, 기업체의 직원 교육은 외부 강사 초빙 등에서 한계가 있던 게 사실이다. 게다가 벤처인들의 경우
배우고 싶어도 환경이 따라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교육이라 하면, 정부로부터 사업을 따낸 뒤 일단 공고부터 하고 교육생을 모집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대전전략산업기획단은 대전에 있는 800여개 기업 임직원들로부터 시장에서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를 듣고,
거기에 맞춰 필요한 강사진이나 장비 등을 투입하는 쪽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발상 자체가 이상적이기도 하고 전국 최초인 만큼,
대전에 있는 2만8천여 연구원들의 교육 요구를 채집하는데 정성을 쏟았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
어떤 기자재가 필요한갗를 조사했다. 전략산업기획단은 클러스터 회장들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IT, BT,
메카트로닉스, 벤처협회 등의 경우 자체적으로 TF팀을 구성해 교육 기획비로 2천만원씩을 우선 지원받았다. 기초과학지원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연구소의 기자재를 활용해 교육에 앞장서기도 했다. 전략산업인력양성사업은 10월경이면 1단계 윤곽이 드러날 예정이다. 산자부는
이 사업이 성공하면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