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축록(中原逐鹿)은 사기의 회음후열전(淮陰候列傳)에 나오는 고사이다.
축(逐)은 돼지 시(豕)에 쉬엄쉬엄갈 착을 짝지은 글자로서,
뒤뚱거리며 도망치는 돼지의 뒤를 쫓는다 하여 ‘쫓다’는 뜻이 되었다. 록(鹿)은 사슴의 머리와 뿔, 네 발을 본떠 만든
글자이다.
한나라 고조 때의 일이다. 조나라의 재상 진희가 반란을 일으켰다. 화가 난 고조는 군사를 이끌고 반란군 토벌에 나섰다. 그 틈에 진희와
내통을 하고 있던 한신이 장안에서 군사를 일으키고자 했다. 그러나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어 여후(고조의 황후)와 재상 소하에게 모살을 당하고
말았다. 얼마 후 고조는 난을 평정하고 황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여후에게 물었다.
“한신이 죽기 전에 무슨 말을 하지 않았소?”
여후는 주저함이 없이 말했다.
“괴통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분하다고 하더이다.”
괴통은 제나라의 언변가로서 유방이 항우와
천하를 놓고 다툴 때 한신에게 독립을 권했던 사람이다.
화가 난 고조는 괴통을 당장 끌고 오라고 명했다. 얼마 후 그는 고조 앞에 끌려
나왔다. 고조는 크게 호통을 치며 말했다.
“네가 한신에게 무슨 말을 했기에 그가 너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분하다고 했단 말이냐”
괴통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예, 저는 한신에게 정권을 잡으라고 권했습니다. 만일 그가 제 말을 들었더라면 오늘날 폐하는 정권을
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에 고조는 크게 노하여 괴통을 삶아 죽이라고 명했다. 그러자 그는 항변했다.
“폐하, 진나라의 기강이 무너지자 천하의 영웅호걸들은 제위를 차지하기 위해 쫓아
다녔습니다(中原逐鹿). 그 와중에 저는 한신을 따랐던 것입니다. 춘추시대 노나라 때 전국을 휩쓸며 악행을 일삼던 도척이라는 도둑의 우두머리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한 마리의 개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개는 요(堯) 임금을 보자 짖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요 임금이 악인이라 짖은 것은 아닙니다. 개란 원래 주인이 아니면 짖는 법입니다. 당시에 신은 오직 한신만
알고 폐하를 몰랐기 때문에 짖었던 것이옵니다. 저를 삶아 죽이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결국 고조는 괴통을 풀어
주었다.
이때부터 중원축록은 ‘제위(帝位)를 다투다’ ‘정권을 다투다’ ‘어떤 지위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다’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준말로는 축록(逐鹿)이 있고, 동의어로는 각축(角逐)이 있다. 유사어로는 중원장리(中原場裡)와 중원사록(中原射鹿)이 있다.
이재복(李在福)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세종대학교 문학박사
현, 배재대학교 기획평가과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