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봉사는 삶 속에서 지연될 나의 소명”
“의료봉사는 삶 속에서 지연될 나의 소명”
  • 정양화 기자
  • 승인 2006.09.07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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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봉사 - 외국인이주노동자 무료진료소에서 봉사하는 박한주 씨

   
박한주(30)씨는 일요일 오후 2시 가야하는 곳이 있다.

한주씨가 차에서 내려 도착한 곳은 대전 중구 은행동에 위치한 외국인이주노동자 무료진료소이다. 한주씨가 건물 2층에 위치한 무료진료소에 계단을 걸어 도착하면 먼저 당도한 외국인노동자들이 그녀를 바라보며 너 나 할 것 없이 반갑다며 인사하고 활짝 웃는다. 그러면 한주씨도 미소를 지으며 화답한다. 그녀가 이 진료소를 출입한지 벌써 10개월이 되었다.

박한주 씨는 충남대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3년차로 지난 해 9월부터 이곳에서 무료진료봉사를 하고 있다. 그녀가 봉사하고 있는 이 무료진료소는 지난 1월 문을 열었으며, 대전·충남 지역에 사는 2만 여명의 외국인노동자를 대상으로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무료로 진료를 전개한다. 한주씨는 우연히 그녀의 출신학교에서 외국인이주노동자 무료진료 봉사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그녀는 의사로서 외국인 노동자와 같이 의료혜택을 받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에 대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마침 모 방송국 아시아 관련 프로그램에서 한국에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외롭고 힘든 삶을 사는 외국인이주노동자를 보면서 그들에 대해 돕고 싶은 마음 간절했던 차에 무료진료봉사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한주씨가 진료소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어떤 외국인노동자를 치료해야할지 확인하는 일이다. 이 무료진료소는 치과, 양방, 한방치료를 하고 있는데 그녀는 양방치료 담당으로 주로 진료하는 부분은 위장질환, 혈압, 당뇨, 근골격계 질환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불규칙한 식사와 식습관 탓으로 소화기계통 질환이 많고, 잔업 등 과도한 노동시간과 힘든 작업 때문에 근골격계 질환이 많았다.

진료하면서 어려운 점은 구비약과 주사제가 부족하다는 사실. 그래도 예전보다 이 곳 외국인이주노동자 무료진료소가 잘 알려져 후원이 체계적으로 자리잡아가면서 많이 개선되었다. 또 하나 어려운 점은 그들과 말이 안 통한다는 점이다. 물론 진료를 받으러온 외국인 노동자들 스스로 한국말을 잘 하기도 하나 그들을 위해 건강교육을 자세히 해주고 싶은 한주씨로서는 아직도 언어의 장벽은 높기만 하다.

그들을 위해 치료를 해오면서 안타까운 일들도 많았다. 이 곳은 이주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산부인과 진료를 하지 못하는데 어느 날 ‘한나’라는 외국인 노동자가 남편과 함께 진료소에 들어섰다. 만삭의 몸에 태아의 건강을 확인하고 아이를 어디서 어떻게 나아야할지 조언을 얻으러온 한나씨와 남편에게 한주 씨가 마땅히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초음파기계로 태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장비는 구비되어 있지 않았고 또 다른 일반 병원에 연계하여 도움을 주려 해도 불법이주노동자인 한나씨는 엄두도 못 낼 일 이었다. 결국 한나씨와 그녀의 남편은 아무런 도움 없이 돌아가야 했고 한주씨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한나씨가 대체 어디서 아기를 낳아야 만 하는지 스스로에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며 새삼 법이라는 테두리에서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한주씨는 이외에도 신부전증을 앓아 치료도 받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노동자, 천식을 앓지만 구비약이 부족해 제대로 치료 할 수 없는 불법외국인 노동자들을 보았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의 한국에서의 합법 체류기간은 3년인데 기간이 지나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이들은 한국에서 불법외국인노동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 내 5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 중 20만 명이나 되는 이주 노동자들이 법이라는 굴레 안에서 ‘불법외국인노동자’라는 가슴 아픈 이름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주씨는 그런 곤경에 빠진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면서 더욱 열심히 그들을 진료하고 보살핀다. 그리고 의료 봉사 외에도 한주씨는 이 외국인노동자 무료진료소를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후원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앞으로 개업을 해 이 무료 진료소와 연계해 그들을 무료로 치료하며 인연을 계속할 예정이다.

한주씨는 말한다.

“힘이 닿는 한 그들을 계속 돕고 싶어요. 외롭고 고달픈 상황 속에서도 항상 긍정적으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그들을 보며 밀려오는 감동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죠. 그들은 더 이상 배척해야할 타국인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입니다.”

우리 사회 속에서 1%를 차지하고 있다는 외국인 노동자. 그들은 이제 부족한 산업 인력을 충당한다는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 각 부분에 항구적으로 편입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외국인 노동자 관련법에 대한 개정노력이 없는 한 그들은 인권, 생존권에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정치, 사회적 체계적인 대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대전외국인이주노동자센터 042-631-6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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