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토마토] 이 세상에서 내가 음악 하는 이유
[월간토마토] 이 세상에서 내가 음악 하는 이유
  • 이수연 기자
  • 승인 2015.11.18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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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채 밴드 드러머 조상훈 씨 인터뷰

음악가는 어떠한 태도로 음악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조상훈 씨에게 무겁다. ‘음악’이라는 것의 무게를 알기에 평소에 누군가에게 ‘음악 한다’는 얘기를 쉽게 하지 못하며 ‘드럼 친다’ 정도로 자신을 소개하곤 한다.

▲ 조상훈 씨
음악은 조상훈 씨가 목소리를 내는 하나의 방식이며 사는 모습 그대로이다. 지난해 4월 15일,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조상훈 씨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알게 됐을 때 받았던 충격 이후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충격은 곧 분노였다.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행사에서 연주할 일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며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Q. 작년에 세월호 사건 관련 집회나 간담회 등에 진채밴드가 자주 참여했습니다. 한 간담회에서 울분에 차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올해 들어 관련 행사가 많이 줄었지만, 작년에는 바쁘게 다니셨죠?

A. 대전역 집회에는 거의 매주 참여했어요. 당시에 나무밴드도 하고 있어서 버스킹 다니면서 서명도 받고, 관련된 행사에 참여 문의가 오면 무조건 갔습니다.

Q. 사람들에게 뭐라고 외치고 싶어서, 무엇을 기대하고 연주한 건가요?

A.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잖아요. 뭘 해야 하는데 우리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음악이니까 그런 자리가 생기면 나갔었죠. 그리고 지금도 기회가 있으면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얼마 전에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부모가 와서 특강 하는 자리가 있어서 갔어요. 저희 곡 ‘팽목항에서’ 뮤직비디오를 함께 봤는데 아이들이 박수를 치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속상하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리고 너희가 지금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자전거 타고 무사히 학교 다녀오는 것도 기적이고 애들하고 잘 지내고 나름대로 사회생활 하는 것도 기적이라고 말했어요.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기적이니까 다른 생각 하지 말라고 얘기해 줬어요.

Q. 팽목항에서’라는 노래 이야기를 좀 더 해 주세요. 그 곡 연주하실 때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봤습니다.

A. 세월호 사건 터지고 한 달쯤 후에 독일에 초청 공연 갈 일이 있었어요. 독일에 가서도 세월호 사건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어요. 행사 끝나고 페이스북에 접속했는데 진채가 ‘팽목항에서’를 올렸더라고요.

그거 듣고 같이 있던 애들이랑 함께 울었어요. 진채도 이런 나날을 보내고 있구나 생각했죠. 자랑스럽기도 했고 멋있기도 했고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과 음악을 한다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팽목항에서’를 유가족 앞에서 노래하는 건 정말 어려웠어요. 한참을 고민했어요.

부모님들 앞에서 부르기가 쉽지 않겠다 싶었는데 결국 부르고 다녔어요. 그 노래랑 ‘정말 고마워요’라는 노래를 자주 불렀어요. 두 곡 다 반응이 좋았는데 ‘팽목항에서’는 너무 슬프다고 해서 조금 더 빠른 노래를 다시 만들었어요.

Q. 어떤 마음으로 연주하신 거예요?

A. 이슈가 달린 곳에서 연주할 때는 무겁게 인상 쓰지 않고 훨씬 더 현란하게 연주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모이잖아요. 우리가 연주하는 이유가 그거고요. 우리가 뭐 세상을 바꾸겠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쳐다보면 성공한 거죠.

▲ 가방마다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닌다
Q. 음악가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신 거죠?

A. 음악 하는 사람들은 '정치'에 관한 얘기를 싫어해요. 후배한테 세월호 공연 같이 하자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정치적인 것은 안 해요.’라고 하더라고요.

차마 더 화를 내지는 못하고 ‘세월호가 정치냐?’ 하고 말았는데 그런 게 속상해요. 제 생각은 반대예요. 음악 하는 사람들은 표현하는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무슨 생각하는지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회적 이슈가 나왔을 때 우리가 그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대기업을 싫어해요. 특히 현대 자동차를 싫어해요. 이십 대 중후반에 중산층의 꿈이라는 소나타 새 차를 샀어요. 허세가 아니라 오래 타려고 산 거예요. 그런데 3년 만에 녹이 슬어서 팔았어요.

사고가 난 적도 없었는데 말이죠. 그때 배신감을 느꼈어요. 나중에 알아보니 저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이 세상에 대해 알게 된 거죠. 그때부터 싫어하는 현대 차를 사지 않으려고, 삼성을 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이렇게 살아가는 게 참 힘들어요.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어떤 소리를 내면 그걸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에요. 제 얘기를 다 하고 살 수 없는 세상이 힘든 거죠. 저는 노동운동에도 관심이 많은데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음악이에요.

저는 곡을 쓰지 못하니 그런 얘기를 진채한테 자주 하죠. 그렇게 서로가 공감하는 곡을 연주하는 거예요. 저나 진채나 공감하지 않으면 연주하지 못해요. 자신의 생각이 연주로 나오는 거예요.

Q. 따로 하고 있는 일이 있으신가요?

A. 진채는 음악만 하고 저는 다른 일도 하고 있어요. 직장 다닌 지 4년 정도 돼요. 원래는 아르바이트하고, 연주하고 행사하는 것으로 생계유지가 됐는데 점점 어려워져서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죠. 공연 한다고 하면 사장님이 빼 줘요. 인증샷만 찍어 오라고 해요(웃음). 레슨은 거의 하지 않고요. 연주하고, 돈 되는 일은 다 해요. 음향 관련 일도 하고요.

Q. 음악 하는 것도 노동으로 볼 수 있을 텐데, 음악가의 일이 사회적 교환 가치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음악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학에 빠져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실력이 없어서 사람들이 몰라 주는 거라고 생각하죠.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제 별명이 ‘선불’이었던 적이 있어요.

행사가 들어오면 페이를 먼저 물어봤거든요. 세월호 관련 행사에서 연락이 와도 페이를 먼저 물어봤어요. 페이가 있는지, 얼마인지는 알아야 하잖아요. 세월호 관련 행사는 거의 돈을 안 받고 했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이나 주최 측이나 페이에 관해서는 쉽게 얘기를 꺼내지 못했어요.

그건 잘못된 문화라고 생각해요. 흥정하겠다는 게 아니고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을 얘기하지 않는 게 속상한 거죠. 지금 저희가 행사에 가면, 15~20만 원 정도 받아요. 이것으로 생계유지는 안 되더라도 그에 준하는 정도만 되도 괜찮다고 생각을 하는데 저렇게 주는 행사들도 그리 많지 않아요.

음악 하는 후배들이 자신들이 부족해서 인정 못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비교하거나 자학하지 말고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으니 계속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Q. 아드님과 팽목항, 안산 합동 분향소에 들르는 여행을 했다고 들었어요. 그때 얘기를 좀 더 듣고 싶어요.

A. 팽목항에서 시작해서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끝나는 여행이었어요. 아들이 팽목항에 왜 가느냐고 물어서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얘기해 줬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나서 아들을 훨씬 사랑하게 됐어요. 아들이 제 옆에 있는 게 믿어지지 않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행하면서도 네가 옆에 있어서 좋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아들이 중1이었으니까 세월호 사건에 관해 어떤 느낌이 없었을 때예요.

아들이 누가 잘못한 건지, 왜 그런 건지 질문을 해 여러 얘기를 해 줬어요. 문제는 돈인데,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지 돈이 아니란 얘기도 했어요. 2주 정도 여행했는데 팽목항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어요.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도 오래 있었어요.

아들이 팽목항에서는 별로 느낌이 없었는데 분향소 갔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왜 이곳에 왔는지 꼭 기억해 둬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럼 나중에 아빠랑 왜 이곳에 왔는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거라고요. 그리고 아들에게, 나중에 너도 아빠를 데리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같이 가자고 말했어요.

Q. 멋진 아버지이신 것 같습니다. 학교에 특강 가셨을 때도 아드님이 자랑스러워했을 것 같은데요.

A. 학교에 갔는데 다른 아빠들은 다 양복을 입고 온 거예요. 저는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 신고 갔거든요. 아들은 제가 오는 걸 몰랐는데, 운동화를 보고 알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나중에 친구들이 뭐라고 하더냐고 물어보니, 아빠가 젊다고 재밌었다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할 얘기가 많았어요. 주제가 '어떻게 놀까’였거든요. 음악이 어떻게 직업으로 연결됐는지 설명해 주면서 제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진짜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놀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기 전에는 공부하라고 말했죠.

‘너희가 언젠가 의사가 되고 싶으면 어떡할래?’ 하고 말이에요. 나중에 하고 싶은 것에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고 말해 줬어요.

Q. 어떻게 음악 시작하셨는지 회상하는 기회가 됐을 것 같아요. 언제쯤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A. 좋아서 시작했어요. 고3 때부터 드럼을 쳤어요. 진채는 20대 초반에 알았고 2000년대 초반부터 같이 하기 시작했어요. 10년 정도를 함께했어요. 아마 평생 가지 않을까 싶어요. 밴드 음악은 해볼 만 해요. 최소 세 명, 많게는 대여섯 명이 모여 한 소리를 내는 거잖아요.

합일점을 찾아가는 게 좋죠. 서로 인정해 주고 존중하고 믿어 주면서 커 나가는 것 같아요. 사실 진채나 저나 음악 한다는 얘기는 잘 안 해요. 드럼 친다는 정도 이야기를 하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음악과 저희가 부딪히는 음악은 전혀 다른 거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음악 하는 저를 보면, 일단, 유명하지 않다는 것, 돈이 되겠느냐는 것 그런 생각을 하겠죠. 맞는 얘기긴 한데 음악은 그것보다 더 큰 덩어리예요. 쉽게 얘기할 만한 것은 아니에요.

Q. 사람들 앞에 서서 연주하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많은 사람과 음악을 공유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면요?

A. 저는 드럼 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요. 볼 만하거든요. 구경거리가 되고 싶은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드럼을 치면서 다른 사람들이 제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저도 기분이 좋거든요. 공연할 때 퍼포먼스가 없으면 지루하다고 생각해요. 진채도 그렇게 연주하고요.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은 좋은 의미에서 영광인 거죠.

Q. 마지막으로 앞으로 활동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A. 3집 앨범이 후반 작업만 남은 상태예요. 베스트 앨범 식으로 음악이 많이 들어갈 거고 신경 많이 쓸 거예요. 마음에 드는 앨범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세월호 사건 관련 행사나 노동 운동과 관련된 행사에 참여할 거고요.

언제든 갈 준비가 돼 있는데 이제는 세월호 사건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도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꾸준히 싸울 만한 전략을 짜야 할 것 같아요. 지금은 악기 케이스에다 노란 리본 달고 다니는 것밖에 할 게 없네요. 쉽지가 않아요. 내년 가면 2주년이 되기 전에 뭔가는 해야죠. 계속해야죠. 그런데 이놈의 세상을 살기 바쁘게 해 놔 가지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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