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숲 속을 거닐다보면 누린내가 물씬 풍겨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게 만드는 나무가 있다. 얼마나 지독한지 몇 미터 떨어져 있어도 냄새가 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꽃술을 길게 내민 하얀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고 벌과 나비, 곤충들이 곁을 떠나지 않는다. 뜨거운 폭염아래 온 산야가 온통 초록색으로 물들여져 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청순하고 깨끗한 흰 꽃이 만발해 있다. 시원스럽게 큰 잎은 벌레들이 갉아먹어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나무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누리장나무다.
누리장나무는 마편초과의 갈잎 떨기나무로 일본, 중국 등 전세계에 100여종, 우리나라에는 가지와 잎에 갈색 털이 빽빽이 나는 털누리장나무,
꽃받침이 좁고 긴 거문누리장나무(섬누리장나무) 등이 있는데 깊은 산속보다는 산기슭, 골짜기의 비옥한 곳, 계곡 주변, 햇볕이 잘 드는 바닷가에
많이 자란다. 옆으로 쭉쭉 뻗은 가지에 잎이 무성하게 달리고 5m 이상 자라기도 해 눈에 잘 뜨인다. 8월에 핀 흰 꽃이 지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꽃받침은 빨간색으로 변하고 가을에 남색의 열매가 앙증맞게 달려 보는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한층 더하게 하는 나무이다.
누리장나무는
누린내가 난다고 하여 누린내나무, 구린내나무, 오동나무를 닮았지만 냄새가 난다고 하여 취오동(臭梧桐), 취목(臭木), 향추(香楸), 누룬나무,
누리개나무, 누루대나무, 개똥나무, 개낭나무, 개똥낭나무, 개나무, 구릿대나무, 깨타리나무, 노나무, 이라리나무, 저나무 등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한약명으로는 잎을 취오동, 해주상산(海洲常山), 해동(海桐), 눈엽상산(嫩葉常山), 꽃은 취오동화(臭梧桐花), 과실은
최오동자(臭梧桐子), 암동자(岩桐子), 뿌리를 짓찧어서 만든 끈적끈적한 즙은 토아위(土阿魏)라고 한다.
누리장나무에는 애틋한
남녀의 사랑이 담겨있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 신분제도가 엄격하던 시절 어느 마을에 잘 생기고 똑똑한 백정의 아들이 옆 마을의 양가집
규수를 흠모하게 되었으나 신분이 달라 말 한번 붙여 보지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면서 틈만 나면 처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집 주위를 서성거렸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수상한 청년으로 몰려 관가에 끌려가 모진 매를 맞고 사망을 하게 되자 백정 부부는 불쌍한 아들을 처녀의 집이 보이는
양지바른 길가에 묻어 주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이 처녀가 총각의 무덤 곁을 지날 때 발이 얼어붙어 죽고 말자 못 다한 사랑을 저승에서
풀 수 있도록 두 사람을 합장해 주었는데 그 이듬해 무덤 위에 누린내가 나는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나 사람들은 이 나무를 백정의 나무, 누린내가
나는 나무라고 불렀다고 한다.
누리장나무는 여느 식물과 달리 어린 새싹이 나올 때부터 잎에서 누린내가 난다. 잎의 뒷면을 대형
확대경으로 살펴보면 수백개의 구멍에서 분비액이 흘러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바로 이 분비액이 특유의 냄새를 풍기는 것이다. 줄기와 꽃,
뿌리에서도 누린내가 난다. 우리 조상들은 어린잎을 살짝 데쳐 찬물로 누린내를 우려낸 후 나물로 해서 먹었고 가을에 달리는 남색열매는 염료로
사용했었다. 열매액을 받아 잉크로 사용하거나 글씨나 그림을 그리는 천연물감으로 활용해도 된다.
누리장나무는 생장속도가 빨라 1년에
1m 이상 자라며 잎이 무성하고 무리 지어 피는 흰 꽃과 빨간 꽃받침, 남색 열매가 아름다워 정원수나 관상수로도 좋고 집 주변에 몇 그루 심어
놓고 약재로 사용하면 된다. 잎, 줄기, 잔가지, 뿌리, 열매, 꽃 등 전체를 활용하는데 잎은 꽃이 피면 약효가 점점 없어지므로 피기전에,
열매는 가을에, 잔가지와 줄기는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채취하여 잘게 썰어 말린다. 뿌리는 옆으로 뻗어 나가고 실뿌리가 많이 달려 있는데
실뿌리를 제거한다. 굵은 뿌리일 경우 뿌리껍질만 사용하고 뿌리가 굵지 않으면 뿌리채 통째로 말려 잘게 썰어 약재로 사용한다.
누리장나무는 성질이 차고 맛은 쓰지만 독이 없다.「본초강목」에는 누리장나무에 대해 “아장풍(鵝掌風 손바닥에 생기는 피부병으로 흰
껍질이 벗겨져 쌓여 거위 발바닥처럼 생기는 질병)과 모든 부스럼, 옴을 제거한다. 습열로 인해 오랫동안 다리가 부어 걷지 못하는 것을 치료한다.
학질과 가슴에 가래가 엉킨 것을 삭이며 모든 풍습과 사지맥락이 막히고 통하지 않는 것을 풀어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리장나무는
내한성과 내공해성이 강하고 한번 뿌리를 내리면 어느 환경이든 잘 적응하는 나무이다. 다만 누리장나무는 약성이 순해 장복을 해야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장복을 하게되면 체질에 따라 속이 메스껍다거나 소화불량, 변비, 구토, 몸이 마르는 명현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명현현상이 나타나면
복용량을 줄이거나 며칠간 복용을 중단했다가 다시 복용하면 된다.
누리장나무는 탄닌 성분이 있어 떫은맛이 있고 생 잎은 누린내가
많이 나므로 감초를 몇 조각 넣고 달이거나 끓일 때 뚜껑을 열어 놓으면 누린내가 상당히 감소된다. 잎과 줄기는 황색물이 우러나오고 쓴데 반해
뿌리는 갈색물이 우러나오고 쓴맛도 덜하다. 누리장나무는 누린내가 나고 쓴맛도 강하므로 처음에는 적은 량을 복용하면서 서서히 적응시킨 후 복용량을
늘리는 것이 좋다.
누리장나무의 약효와 활용법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류머티스관절염, 반신불수
누리장나무는 근육마비를 풀어주고 염증을 해소시켜 주므로
류머티스관절염으로 인한 반신불수, 손발마비, 근육통, 나무나 돌에 부딪혀 피멍이 들었을 때 좋다. 봄과 여름에 싱싱한 잎을 따 말려 1일
15~30g을 달여 먹거나 가루 내어 1일 2.5g씩 3~4회 복용한다. 더 좋은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여름에 진득찰(희렴) 전초를 채취하여
1일 9~15g을 함께 달여 복용하면 풍습사(風濕邪)로 인해 생긴 수족마비, 중풍으로 말을 잘 하지 못할 때, 안면 신경마비 등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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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습사란 풍사(風邪 바람으로 생긴 병)와 습사(濕邪 습해서 생긴 병)로 인해 생긴 질병으로 관절이 쑤시기 때문에
굽혔다 펴기를 할 수 없고 아픈 곳을 만지면 더욱 더 아픈데 풍습사가 생기면 팔다리를 쓰지 못하거나 언어 장애, 반신불수, 안면
신경마비 같은 질병을 유발한다. |
*옴, 습진, 피부 가려움증
누리장나무는 옴, 습진, 무좀 등 각종 피부 질환에 좋은데 봄부터 가을까지
잎을 채취하여 건조시켜 1일 10~20g을 달여 먹고 생것 40~60g을 진하게 달여 상처 부위에 바르면 된다. 팔 다리 등 피부가 가려워 잠
못 이루는 피부 가려움증에는 뱀딸기 전초를 채취하여 30~40을 푹 달여 그 물을 바르면 더욱 좋다.
*고혈압
누리장나무는 혈관을 확장시키고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여 혈압을 안정적으로 떨어뜨린다.
고혈압으로 인한 두통, 꽃이나 별 등 헛것이 보일 때 1일 잔가지와 잎을 40g씩 달여 먹거나 잎으로 환을 만들어 1일 10~20알씩 복용한다.
산사나무 잎과 만병초 잎을 말려 2:1 비율로 가루 내어 1일 3회 2g씩 복용하면 더욱 좋다.
*심장병의 예방과 치료
누리장나무는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림으로써 동맥경화를
예방하고 심장 기능을 강화시켜 주기 때문에 협심증 등 심장병의 예방과 치료에도 좋다. 1일 잔가지와 잎을 40g씩 달여 먹거나 잎으로 환을
만들어 1일 10~20알씩 복용한다.
*만성 기관지염, 축농증 등 각종 염증성 질환
누리장나무는 소염작용이 탁월하여 각종 염증성 질환에
사용하는데 만성기관지염, 축농증, 중이염, 위염, 기침에도 좋다. 싱싱한 잎은 1일 150g, 건조한 잔가지와 잎은 1일 40g을 달여 먹고
잎으로 환을 만들어 1일 10~20알씩 복용한다. 축농증이나 비염이 심할 때는 도꼬마리 씨앗(창이자)를 가루 내어 물에 타서 수시로 콧속을 씻어
주고 잎과 줄기를 함께 달여 복용하면 효과가 빠르다.
*학질(말라리아)
과거 일제 식민지 통치시대에는 무덥고 습한 여름철과 초가을에 매년 전국적으로
학질(학질모기에 의해 생기는 전염병으로 오한과 전율, 발열이 엇바뀌면서 주기적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증상)이 유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학질은 해방이후 우리나라에서 없어진 질병중의 하나였으나 최근에는 휴전선 주변과 일부 남부지방에서 발생하고 있고 아프리카 등
세계 열대 우림지역을 방문하거나 거주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심심찮게 감염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1일 잔가지와 잎을 40g을 달여 먹거나 잎으로
환을 만들어 1일 10~20알씩 복용한다.
*치질
누리장나무잎은 치질치료에도 좋은데 신선한 잎 10g, 바위솔 10g, 까마중 20g을 함께 달여
환부를 수시로 씻어 준다.
*기타
누리장나무는 정강이에 난 부스럼, 고기 먹고 체하여 배가 아플 때, 이질, 신경통, 타박상,
근육마비, 종기, 신체가 허약하여 정신이 불안정한 어린이한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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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산 배종진은 누구
1956년 백두대간의 줄기인 함양
백운산과 전북 장안산아래 번암면 동화리에서 태어나 어른들로부터 야생열매와 약초를 채취하는 방법을 배우고 자랐다. 현재까지 산을 벗삼아
생활하고 있는 산꾼으로 2004년부터 여러 잡지에 ‘약초의 효능과 활용법’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고 대학원에서 ‘산야초감별법’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실생활에 유익한 토종약초 활용법’‘백두대간 약초산행’등이 있다. 자생약초 연구가이며 지산약초원
원장,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원 제약학과 박사과정 수학 중이다. 성균관대학교 경기의약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