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속에 얽힌 비밀, 베일을 벗다
웃음 속에 얽힌 비밀, 베일을 벗다
  • 최성수 기자
  • 승인 2006.12.13 1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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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특별전 준비중인 백산 곽권일 화백

백산화백은 동양화가이다. 그가 시류대로 한국화가임을 내세우지 않는 이유는 예술의 순수성을 훼손하지 않고 싶어서이다. 또한 이름보다는 본래의 기능에 충실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요즘 한국화를 한다는 후배들이 기본적인 예의와 격식을 차리지 않은 것을 한탄한다.

   
“제가 그림을 배울 때와는 많이 달라요. 붓을 잡기 전에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자세부터 바로 했는데 요즘에는 그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예향 진도 출신이다. 애초 그림 그리는 재주가 있기도 하였지만 집안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그림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나이 스물 남짓 무렵인 76년이었다. 특히 사촌인 백포 곽남배 선생은 그의 사부가 되어 오늘의 백산을 만들었다.

일찍 결혼을 한 탓에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그로서는 당시 그림보다는 그것을 파는 일에 더 열중했다. 사부인 백포 선생의 그림은 잘 팔렸으며 수고비는 백산 가정의 생활비가 되었다.
그가 대전에 온 것은 1984년이다. 당시 신신여관에서 자신의 그림을 주문받은 것을 계기로 개인전을 열었는데 뜻밖에 반응이 좋았다. 잘 팔렸다는 의미이다. 이 때부터 대전을 제2의 고향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그는 두 가지를 계획한다. 사회봉사와 못다한 공부를 하자는 것이다. 사회봉사는 클럽활동을 통해서였다. 국제적인 봉사단체에 가입하여 열심히 활동하였으나 이로 인해 낭패를 맛보았다. 신생클럽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부의 오해를 받아 탈퇴해야 했으며 설상가상 보증선 것이 잘못되는 바람에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지금은 거의 해결한 상태이나 여러모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도 PTP(People to People)라는 국제간 이해와 친선을 바탕으로 세계평화에 기여하자는 취지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중일국제친선교류협회(회장 오응준, 전 대전대총장) 문화분과위원장을 맡아 열심을 다하고 있다.

백산화백의 또 다른 목표는 공부. 섬 출신인 그는 중학교까지 겨우(?) 나온 한을 풀기 위해 올해 방송통신고를 졸업했다. 만학이지만 그는 군산대학 미대에 수시 합격하여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인 아들보다 늦게 대학진학의 꿈을 이뤘다.

“그림으로만 보면 가르칠 위치겠지만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폭 넓은 교양을 쌓고 나아가 기회가 되면 교단에 서기 위해 공부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대학원까지 6년여 더 공부해야겠지요.”

그림으로만 보면 그는 정상급이다. 첫 수상인 제18회 전라남도미술전람회 입선을 비롯 수많은 수상과 전시회를 가졌으며, 특히 2003년 대한민국미술대전(과거 국전)에서 구상 특선과 비구상 입선은 물론 1991년 전일본전그랑프리 수상, 2001년 전일본전 심사위원까지 역임했다.

올해 8월에는 유성문화원에서 광복기획전인 “우리꽃 무궁화전”을 열어 호평받았다. 백산화백이 무궁화를 즐겨 그리는 이유는 민족의 얼을 지키기 위함이다. 수많은 외침 속에서도 나라를 지킨 민족의 기개가 잘 담겨진 우리 꽃 무궁화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백산화백의 무궁화는 대한민국경찰청을 비롯해 대전시의회 및 각종 기초단체 등 20여곳에 걸려있다. 그의 작품인 무궁화로만 장식된 8폭 짜리 백락병풍은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지금 준비중인 것은 일본에서의 특별전이다. 사전 준비를 위해 11월초 일본을 다녀왔다. 초대전인 만큼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는 경험해본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다.

“머잖아 중국에도 갑니다. 민간교류 차원의 방문이지만 가능하면 그곳에서도 개인전을 열고 싶습니다. 동양화는 결국 한중일 모두의 것인 만큼 예술적 관점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백산화백은 구상과 비구상중 전자를 가치 있게 보고 있다. 보고 그리는 것(비구상)은 별 차이가 없지만 머릿속에서 그려내(구상) 실화로 만들어 낸 것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창작의 과정도 그만큼 힘들다.

그는 주로 어릴적 추억을 주요 소재로 한다. 개울에서 멱 감고 놀던 일, 밭에서 일하던 이웃들의 모습, 고향의 산하가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며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그가 고향 진도를 잊지 못하는 이유이다. 진도출신으로 구성된 ‘그랑께회’도 구성, 회장까지 지냈다.
그림 그린지 어언 30여년.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지금 그는 스승이 남겨준 꿈을 자신이 이루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정신없이 뛰어온 지난날을 반추하고 남은 삶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훗날 백산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백산화실 : 042-256-3978
     / 최성수 기자 news@sisaforu.com

[ 약 력 ]
백포 곽남배 선생 사사
한국미술회원전 (세종문화회관)
18회 전라남도 미술전람회 입선
19회 전라남도 미술전람회 입선
’85년 초대전 (경기도 안산)
광양군 초대전 ’87
대전시청 회의실 무궁화(63x323) 1점 증
보령군 체육기금(66x126) 10점 증
한밭라이온스회관 신축기금 작품 증
대전직할시 갱생보호협회작품 40여점 증
전일본전입선 및 특선 다수
’90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 한국화 입선
’91 전일본전 그랑프리상
’92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 한국화 입선
’92 대전MBC 문화공간 개인전
’92 전일본전 미술대상
’96 대전 MBC 문화공간 무궁화 작품전
’97 대전MBC 문화공간 기획전
’97 뉴금강 로타리클럽 창립
경기도 교육청 무궁화 160호 1점 100호 1점 증
2000~2001 그랑께회 회장
2003. 5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 비구상 계열 입선
2003. 10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 구상계열 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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