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들어 부쩍 달라진게 정치권의 움직임이다. 평소 국민들을 위해 뭘 해보자고 나서는데는 굼뜬 이들이 선거 때만은 눈빛이 반짝이고 발걸음이 빨라진다. 연말 대선을 위한 온갖 노력이 시작된 바 다름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활동이 충청권에 대한 구애 작전이다. 영 ․ 호남에서 서울(청와대)를 가려면 어차피 충청지역을 밟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리라.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라 선거 때는 늘 그래왔다.
특히 대선기간 중에는 바짝 달아올라서 갖은 미사여구와 선물꾸러미를 내놓고 애정공세를 펼치기에 급급하다.결국 선거 때마다 나라를 위한다. 충청발전을 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에 휩싸여 충청의 선택은 당선 되는 쪽으로 쏠린다. 아예 몇 프로(%) 부족을 채워주는건 충청의 몫으로 치부하고 있다. 새로운 국정의 선택에 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한데, 문제는 당선이후의 일이다. 한마디로 별반 관심이 없어진다. 무관심의 수준을 넘어 홀대와 우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그런 대접을 받고도 별 반응이 없다는 점이다. 소수의 설움과 약자의 어려움을 겪고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무대접 무대응」은 충청지역을 두고 생겨난 말이다. 더 안타까운 일은 그 다음 선거에서 또 같은 과정과 선택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다 그러했다. 그래서 「아! 충청도」 란 탄식이 생겨났지만, 그 다음 이어갈 말은 여전히 없다.
얼마전 신년모임차 서울에 갔더니 친구들이 빈정거린다. 인사동에서 막걸리잔 기울이며 흉허물없이 나누는 자리이니 우스개 소리도 많지만 농담속에 진담이 박혀있다.
‘충청인의 소신과 의지가 뭐냐’고 하면서 어쩌면 그렇게 정치적 유혹이나 꾐속에 잘도 넘어 가냐고 몰아친다.
본래 백제의 옛땅이니, 고구려와 신라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랬을 거라는 역사까지 들먹이며 거슬러 올라간다.
전에는 이충무공, 윤봉길, 유관순열사 등 위인들을 내세우며 충청이야말로 나라를 구한 충절의 고장이라고 목소리를 높혔다. 하지만, 요즘에는 답변하기가 좀 궁색하다. 위인, 열사가 많다는 항변이외에 더 이상 끌어낼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그래 행정수도 옮겨준다니 그걸 믿고 멍청하게 찍어 줬냐’고 면박을 주면 딱이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번 대선 당시 충청지역 여론중엔 ‘이왕이면 수도이전으로 충청도 발전시켜준다니 찍어주자’‘같은 값이면 우리집 땅값 아파트값 올라갈테니 뽑아주자’ 는 의견이 상당수였다.
요즘와서는 결과적으로 우리가 잘못 뽑았다, 우리가 당했다‘ 는 얘기로 바뀌어지고 있다. 땅값 집값의 과표가 올라서 세금만 더 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번 지방선거때는 대통령과 반대되는 정당에 그 지역기반인 영남보다 더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다.
17대 총선때 특정한 정당에 대해 그 당의 기반인 호남지역 못지않게 강한 지지와 성원을 보내준게 바로 얼마전 일인데 말이다. 이러니, 충청민심이 나름의 중심을 못 잡고 바람따라 쏠리는 갈대와 같다는 비판의 소리를 듣는다. 특정한 정치인 아무개 때문이라니, 지역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현명한 결정이라는 변명도 이따금씩 들리기는 한다.
그래도 충청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 모임이나 자리에서는 ‘멍청도’라는 놀림에서 여전히 벗어나기가 어렵다. ‘멍청도’가 아니라 ‘엄청도’라는 항변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진다.
아! 충청도, 우리가 들어온 멍청도라는 정치적 불명예를 우리 후손에게까지 넘겨주고 말 것인가.
정작 충청인의 정치적 의지와 소신은 무엇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우리 충청인은 선택해야 할 것인가. 나라를 구했던 충절의 정신을 계승하는
길은 어느 쪽인가. 분명한 답은 나오지 않는 가운데, 대선과 4월 보궐선거는 다가오고 충청의 선택은 또다시 강요되고 있다.
이 명 수 (나사렛대학교 부총장)
위 칼럼은 충청뉴스(ccnnews.co.kr) 편집 방향과 관련이
없음,


아무리 '편집 방향과는 무관하다'는 말이 기사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싸이트 수준이 의심됩니다. 또 메인 첫 기사인데 사진을 잘못 올리는 실수를...
좀더 원활한 방향으로 흘러 갔으면 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