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1위의 우리 선박ㆍ조선소 건조 기술을 ‘통째로’ 중국에 유출하려던 前職 조선업체 기술부장 등이 국정원 요원들의 끈질긴 추적에 기술유출 직전 덜미가 붙잡혔다.
이들이 前 회사에서 불법으로 유출한 자료에는 국내 조선업계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는 초대형 원유 운반선, 시추선, 천연액화가스(LNG)선, 자동차 운반선 등의 설계도면 뿐 아니라 조선소 건설 도면까지 포함돼 있었다.
◈ 국정원 추적 과정 = 국정원이 관련 첩보를 입수한 것은 지난 1월.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는 우리나라 조선업의 기술력이 세계적인데다 부가가치도 높아 산업스파이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조선업체가 밀집한 부산ㆍ경남ㆍ울산 등을 돌며 기술 유출 예방 정보활동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한 업체로부터 “전직 기술기획팀장이 지난해 3월 퇴사하면서 개인 컴퓨터 내용 전체를 삭제하고 나갔는데 컴퓨터에 중요 자료가 많았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자칫 지나칠 수도 있는 내용이었지만 국정원은 주요 산업기밀 유출 사건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엄모(53)씨를 추적했다. 엄씨는 회사에서 전체 공정도ㆍ설계완료보고서 등이 담긴 지식관리시스템 서버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3명 중 1명이었다.
조사결과 엄씨는 퇴사 후 기술유출 논란을 피하기 위해 다른 업체를 거쳐 지난해 12월 중견 조선업체인 M사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은 이후 6개월동안 M사 퇴직자 등을 대상으로 회사의 영업동향, 회사에서의 엄씨 역할 등을 탐문하는 등 끈질긴 추적으로 벌였고, 여러 범증을 확보했다.
지난 1월 M사가 몰래 빼돌린 국내업체의 벌크선 완성도 파일을 중국의 선박업체가 설계업무에 참고도면으로 사용했다는 정황도 나왔고, M사가 중국과 합작 조선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확인됐다.
국내 굴지의 조선업체 기술자료 관리 총책임자였던 엄씨가 빼돌린 자료는 첨단 선박 설계도면 뿐 아니라 선박 공정도, 각종 실험 데이터, 경영자료 등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엄씨는 M사와 함께 인도ㆍ브라질ㆍ이란의 조선소 건설에도 참여하기로 하고 최근 브라질에도 다녀온 것으로 확인돼 광범위한 기술유출이 우려됐다.
국정원은 엄씨 등이 7월말 중국으로 완전히 이주해 설계도면 등을 사용하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 지난 7.9 사건을 검찰에 이첩했고, 검찰은 이를 토대로 M사를 압수수색하고 엄씨를 붙잡았다.
조사결과 엄씨는 재직시 회사 서버에 접속해 자신의 컴퓨터에 자료를 다운 받은 뒤 미리 준비한 외장형 하드디스크에 저장하는 방법을 사용해 대용량의 기술을 빼돌린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M사는 엄씨가 다니던 회사 외에 우리나라 대부분 조선업체의 기술 자료를 서버에 보관하고 있었고, 심지어 조선소 건설 설계도면까지 유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출된 설계도는 69척에 이르는 LNG선 등 첨단 선박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담고 있었으며, 이로인한 선박설계 비용ㆍ기술개발비 등 직접 피해액만 517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중국의 저가 경쟁선박 건조로 인한 수주 감소액 등을 합하면 향후 5년간 모두 35조원에 이르는 피해가 예상된다고 국정원과 검찰은 밝혔다.
이에대해 한국조선협회는 “세계 시장에서의 매출차질ㆍ가격하락 손실비용까지 감안하면 피해액은 77조원까지 늘어난다”면서 “중국에 기술력이 넘어갔다면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2~3년 앞당겨 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7.30 엄씨를 구속기소하고 M사의 협력업체 관계자 고모(44)씨 등 3명을 불구속기소했다.
◈ 급증하는 산업기술 유출 사건 = 국정원은 지난 2003년 1월부터 2007년 6월까지 모두 103건의 산업기술 해외유출 사건을 적발했다.
2003년 6건이던 기술 해외유출 적발 건수는 2004년 26건, 2005년 29건, 2006년 31건 등으로 매년 증가했으며 2007년에도 6월까지 모두 11건의 기술유출 사건이 적발됐다. 금액으로는 모두 133조 2000억원에 이르는 피해를 방지한 것으로 분석됐다.
유출자는 전직 직원이 62명으로 가장 많았고 현직 직원도 27명에 달했다. 또 협력업체가 7건, 외국인 초청ㆍ교환 과학자 3건, 투자업체 2건, 외국 유학생 2건 등 순이었다.
유출유형은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승진ㆍ연봉인상 등 금전적 유혹에 의한 매수가 73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무단 보관(10건) ▲기업차원의 공동연구(5건) ▲위장 합작(4건) ▲내부공모(3건) ▲기타(8건) 등을 통한 유출도 있었다.
유출동기는 개인 영리 목적이 44건으로 가장 많았고, 금전적 유혹에 넘어간 경우가 31건, 前 직장에서의 처우불만 14건, 인사불만 6건, 비리연루 4건, 기타 4건 순이었다.
국정원은 국경을 넘나들며 갈수록 지능적인 수법으로 기술을 팔아먹는 ‘국부유출 범죄자’들과 24시간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고 있다.
산업기술 유출 사건의 특성상 확실한 범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추적을 해야하고, 해외로 기술을 빼돌리기 직전에 범인을 붙잡아야 하기 때문에 타이밍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 관계자는 “사건 추적이 시작되면 매일 밤을 새는 게 일상사가 된다”면서 “특히 현행법상 기술 유출 범죄는 합법적인 감청 대상에서 빠져 있어 예방이나 적발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번 유출된 반도체, 자동차ㆍ조선 기술은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에 기술유출 사범을 잡는 것보다 기술이 새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국정원은 설명했다.
국정원 산업보안 요원들의 장점은 많은 해외정보망과 인적네트워크 그리고 전문성. 국정원 요원들은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기업, 벤처기업, 학계 등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고, 하루가 다르게 나오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 위해 전문가들로부터 항상 자문도 받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앞으로 산업스파이에 의한 첨단기술 유출행위 예방 정보활동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보안관리 시스템 정착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